[더팩트ㅣ대법원=변동진 기자] 자신보다 27살 어린 여중생을 수차례 성폭행하고 임신시킨 연예기획사 대표인 40대 남성에게 대법원이 '무죄'를 확정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 남성은 1심과 2심에서 각각 징역 12년, 9년형을 선고받았다.
1·2심과 대법원이 다른 판결을 내린 것은 같은 증거에 대한 해석을 달리 했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사건 당시 피해자가 미성년(15세)임에도 불구하고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을 통해 주고 받은 대화 내용을 근거로 "서로 사랑하는 사이"로 봤다.
이 때문에 법조계 안팎에서 현행 '미성년자의제강간죄'에서 성적 자기결정권 기준을 '13세 미만'으로 지정한 부분에 대한 법개정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대법원 2부(주심 조희대 대법관)는 9일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강간), 미성년자유인, 성폭력범죄의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조모(48) 씨에 대해 무죄를 확정했다.
조 씨는 2011년 아들이 입원한 병원에서 당시 15세인 A양을 만나 수차례 성관계를 맺었다. 이로 인해 임신한 A양은 가출을 했고, 조 씨의 집에서 한 달 가까이 동거했다.
그런데 A양은 출산 후 "성폭행을 당했다"며 경찰에 신고했으며, 지난 2014년 재판에 넘겨진 조 씨는 "순사한 사랑이었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1심은 조 씨에게 징역 12년을, 2심은 징역 9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15세 중학생이 부모 또래이자 우연히 알게 된 사람과 며칠 만에 이성으로 좋아해 관계를 맺었다는 점을 수긍하기 어렵다"는 점을 들어 유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지난해 11월 "유일한 직접 증거인 A양의 진술을 선뜻 믿기 어렵다"며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A양이 다른 사건으로 구속된 조 씨를 매일같이 면회한 것과 "사랑한다" "많이 보고 싶다" "함께 살고 싶다" 등의 내용의 접견 및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낸 점을 근거로 들었다.
특히 재판부는 상호 주고 받은 카카오톡 대화에서 '자기' '남편'이라고 호칭한 것을 두고도 "의사에 반한 성폭행은 없었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러나 일각에선 "국민 법감정에 어긋난 판결"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미성년자의제강간죄'에서 성적 자기결정권 기준이 '만 13세'라는 이유 때문이다.
현행 미성년자의제강간죄는 13세 미만의 사람을 간음하면, 폭행·협박 등이 없어도 범죄가 성립한다고 돼 있다. 또한 피해자의 동의가 있어도 범죄 성립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하지만 범행 당시 A양은 15세였고, '연인관계에서 맺은 성관계'라는 부분이 인정돼 간음이 성립되지 않은 것이다.
반면 해외의 경우 성적 자기결정권 기준은 독일과 이탈리아, 중국은 '만 14세', 프랑스와 스웨덴은 '만 15세', 미국 대부분의 주와 영국, 호주 등은 '만 16세'이다. 이 같은 배경 때문에 지난해 대법원이 원심을 깼을 당시, 일부 시민단체는 '조 씨 처벌 촉구' 서명운동을 벌인 바 있다.
게다가 정치권에서는 현행 '미성년자의제강간죄' 성립 기준 연령을 만 13세 미만에서 16세로 고치는 내용의 개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도 13세는 올바른 판단이 형성된다고 볼 나이로는 지나치게 어리다는 점을 고려해 16세로 상향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정서적으로 취약한 아이들이 성적 자기결정권을 성인에 의해 악용 당할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다.
김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은 <더팩트> 취재진에 "13세는 올바른 성적 자기결정 판단이 형성됐다고 보기 어린 측면이 있다"면서 "미성년자의제강간 기준 연령의 상향이 필요할 것 같다"고 강조했다.
반면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청소년의 신체적 성숙이 빨라지는 추세"라면서 "의제강간의 기준 연령을 높이는 것이 현실과 맞지 않다"고 반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