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서울중앙지검=변동진·김소희 기자] "국정원 직원들은 이 나라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마지막 보루이자 최후의 전사이다."
박근혜 정부 초대 국가정보원장을 지낸 남재준(73) 전 원장이 8일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소환되며 이같이 밝혔다.
'국정원 상납'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부장검사 양석조)는 이날 오후 남 전 원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했다. 남 전 원장은 2013년 3월부터 2014년 5월까지 국정원장으로 재직했다.
남 전 원장은 오후 12시 55분께 서울중앙지검 청사 앞에서 취재진에게 "국정원 직원들은 이 나라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마지막 보루이자 최후의 전사"라며 "그들의 헌신과 희생에 대해 찬사 받지 못할 망정 수사 받다가 스스로 목숨 끊는 이러한 참담한 현실에 가슴 찢어지는 고통을 느낀다"고 말했다.
남 전 원장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변창훈 검사와 국정원 직원 정모 씨 등에 대해 "이 자리 빌어서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고 애도를 표하기도 했다.
취재진은 '왜 청와대에 상납했냐' '특활비 청와대에 보낸 거 맞나' '댓글수사 지시했나' '박근혜 전 대통령 지시 있었나' '국정원 직원들이 수사를 방해하고, 재판을 방해하는 게 국가를 위한 건가' '수사를 방해한 게 국정원 본연 업무인가' '현안 TF 꾸리니는 거 보고 받았나' 등의 질문을 쏟아냈다.
그러나 남 전 원장은 "검찰에 가서 얘기할 것"이라며 취재진을 향해 짜증내며 조사실로 향했다.
검찰은 이날 남 전 원장을 상대로 국정원의 특수활동비가 청와대에 상납된 과정에서 청와대로부터 별도의 지시가 있었는지, 상납 과정을 보고 받은 사실이 있는지 등을 집중 추궁할 계획이다.
검찰은 이헌수 전 기획조정실장 등 국정원 간부를 통해 40~50억 원가량의 특수활동비가 청와대에 상납되는 과정에 남 전 원장이 개입한 것으로 보고 있다. 수사팀은 이미 이재만(51) 전 총무비서관으로부터 박 전 대통령 지시가 있었다는 진술을 확보한 상태다.
검찰은 지난달 31일 남 전 원장 등 전직 국정원장 3명의 주거지 등을 압수수색하기도 했다.
앞서 검찰은 박근혜 정부 국정원이 2013년부터 지난해 국정농단 사건이 불거지기 전까지 국가 예산인 특수활동비에서 매달 5000만 원 또는 1억원씩 모두 수십억 원의 현금을 청와대에 건넨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
지난 3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 및 국고손실 혐의로 구속된 안봉근(51) 전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과 이 전 비서관은 청와대에 재직 중인 남 전 원장 시절엔 5000만 원, 남 전 원장 이후부터는 매달 1억 원씩 번갈아가며 모두 40억 원 안팎의 특수활동비를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정호성(48) 전 부속비서관이 국정원의 특수활동비를 수수한 사실도 확인됐다. 이들 '문고리 3인방'은 검찰 조사에서 관련 사실관계를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 전 원장은 '박근혜 국정원'이 대기업을 동원해 보수단체를 지원했다는 이른바 '화이트리스트' 혐의도 함께 받고 있다. 또 지난 2013년 국정원이 검찰의 댓글 수사 및 재판을 방해한 혐의도 받는다.
검찰은 남 전 원장 재직시절인 2013년 4월 댓글공작 등 선거·정치 개입 의혹과 관련한 검찰의 압수수색에 대비해 국정원이 현안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위장 사무실을 만들어 가짜 서류 등을 가져다 놓고 직원들에게는 수사·재판에서 허위 진술을 시킨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검찰은 남 전 원장을 상대로 TF 관련 활동을 보고받았는지, 이를 청와대 등 윗선에 보고했는지 등을 추궁할 방침이다.
당시 현안 TF에는 6일 투신해 사망한 변창훈 서울고검 검사(당시 법률보좌관)와 장호중 법무연수원 연구위원(당시 감찰실장), 이제영 대전고검 검사 등 현직검사 3명과 국정원 서천호 전 2차장, 고모 전 종합분석국장, 문모 전 국익정보국장, 하모 전 대변인 등이 소속돼 있었다.
검찰은 남 전 원장 후임인 이병기 전 원장(2014년 7월~2015년 3월)과 이병호 전 원장(2015년 3월~2017년 6월) 소환 조사를 검토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