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헌법재판소=변동진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유남석(60·사법연수원 13기) 광주고등법원장을 헌법재판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당시 김이수 헌재소장 권한대행 체제가 '위헌'이라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정치권 일각에선 '헌재소장과 재판관 동시 지명' 가능성을 점쳤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김이수 권한대행 체제를 당분간 유지키로 하면서 재판관만 지명했다.
문 대통령은 왜 '헌재소장·재판관 동시 지명'을 하지 않았을까. 법조계와 정계 안팎에서 그 배경에 대해 다양한 분석을 내놓았다. 김이수(64·9기) 헌재소장 권한대행과 이유정 변호사와 낙마한 만큼 고육지책으로 '9인 체제'를 복원하고, 향후 헌재소장 임기에 대한 입법 상황을 지켜보면서 소장 후보자를 지명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文 대통령, 이유정 사퇴 이후 47일만 헌법재판관 지명
문 대통령은 지난 18일 공석인 헌법재판관 한 자리에 유남석 광주 고등법원장을 후보자로 지명했다. 이유정 변호사가 '주식대박' 논란에 휩싸여 지난달 1일 자진사퇴한 이후 47일 만이다. 유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을 통과하면 헌재의 '9인 체제'가 완비된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유 후보자 지명 배경에 대해 "법관으로 재직하며 헌재 헌법연구관, 수석부장연구관으로 헌재에 4년간 파견 근무해 헌법재판에 정통하다"면서 "대법원 산하 헌법연구회 회장을 지내며 헌법이론 연구에도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박 대변인은 이어 "실력과 인품에서 높은 평가 받고 있어 대법관 후보추천위의 대법관 후보, 대한변협의 헌법재판관 후보로 추천되기도 했다"며 "대법원 선임 재판연구관으로 발탁되는 등 실력파 법관이자 이론과 경험이 풍부해 헌법 수호와 기본권 보장이라는 헌법재판관 임무를 가장 잘 수행할 적임자"라고 부연했다.
◆법조계·정치권 '헌재소장·재판관 동시 지명' 요구
앞서 법조계와 정계 일각에선 재판관 후보자 지명과 동시에 헌재소장 후보자를 지명할 것을 정부에 요구했다. 역대 헌재소장(조규광·김용준·윤영철·이강국)이 대부분 재판관 겸 소장으로 동시에 지명됐고, 더욱이 소장 공백을 신속히 메워야 할 상황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재판관 후보자만 지명했다. 이에 대해 법조·정계 관계자들은 '소장은 헌법재판관 중에 임명한다'는 헌법 111조 4항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물론 문 대통령은 유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하면, 헌재소장으로 지명할 수 있다. 하지만 유 후보자가 '우리법연구회' 출신인 데다, '양심적 병역거부' 찬성 입장 등 보수야권에 반하는 인사라는 점에서 '여소야대' 국회의 인사청문회 문턱을 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부담감을 가질 수도 있다.
유 후보자를 헌재소장으로 지명한다면 국회 법사위원회의 헌법재판관 인사청문회를 치른 이후 국회 인사청문특별위원회의 헌재소장 인사청문회를 또 거쳐야 한다.
차선으로 강일원(58·14기) 등 현직 재판관을 지명하는 방법도 있다. 문제는 임기다. 헌법과 헌법재판소법에는 '재판관 임기'가 6년으로 정해져 있을 뿐 소장 임기는 명시되지 않았다.
◆'차선책' 강일원, 임기 문제로 쉽지 않아
현재 김 권한대행을 제외한 7명의 헌법재판관 중 4명(이진성·김창종·안창호·강일원)의 임기는 내년 9월까지다. 소장 후보자로 지명을 받더라도 인사청문회 과정을 감안하면 사실상 임기가 1년도 되지 않는다. 서기석·조용호 재판관의 경우 임기는 2019년 4월로, 1년 이상 소장 직을 수행할 수 있지만, 박근혜 정부가 지명한 인사라는 점에서 여당과 일부 야당의 동의를 얻기 어렵다.
지난 3월 임명된 이선애 재판관도 '사법적폐' 눈총을 받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명한 인물이어서 이번 정부의 선택카드는 아니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아울러 청와대는 지난 10일 김이수 권한대행 체제 유지 방침을 밝히면서 "국회에서 헌재소장 임기를 명확히 하는 입법을 마치면 새 헌재소장을 바로 임명할 것"이라고 했다. 헌법재판소법을 개정해 헌재소장 임기(6년)를 법률에 못 박아 달라는 취지다.
이와 관련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은 전 정부 때 헌재소장 임기를 다룬 개정안 발의한 바 있다. 그러나 해당 법안은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의 반대로 처리되지 않았다. 즉, 청와대가 국회에 '헌재소장 임기에 대한 입법 미비'를 해소해 달라고 요구한 상황이나, 야당 시절 자신들이 뿌리쳤던 전력 때문에 모양새가 우스워진 셈이다.
결과적으로 문 대통령은 가장 시급한 문제인 '헌재 9인 체제'를 우선적으로 복원한 이후, 이 후보자의 청문회 분위기를 고려해 소장 후보자를 지명할 수밖에 없는 '사면초가'(四面楚歌)에 빠진 상황이다.
◆김현 대한변협 회장 "낙마에 대한 부담 때문에 9인 체제 이후 소장 임명할 것"
김현 대한변협 회장은 <더팩트>에 "유 후보자를 헌재소장으로 지명하고 싶겠지만, 김 권한대행 때처럼 낙마를 하면 정권에 부담이 갈 수 있다"며 "따라서 우선적으로 헌재 9인 체제를 만든 이후 유 후보자를 소장 후보자로 지명할 포석인 것 같다. 강 재판관을 헌재소장으로 임명하려는 속내도 있을 것이다"고 했다.
정치평론가 신율 명지대 교수는 "헌재소장은 국회 동의가 필요하다. 반면 재판관은 인사청문회만 거치면 된다"며 "인준 사안의 경우 문제가 복잡해지고, (재판관) 숫자마저 못 채울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고육지책으로 재판관만 지명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황태순 위즈덤센터 수석연구위원은 "헌재소장은 재판관만 할 수 있다. 유 후보자를 소장으로 지명하기 위해선 재판관 임명과 소장으로서 국회 동의 등 두 번의 일을 치뤄야 한다"며 "그렇다면 현재 김 권한대행을 제외하면 재판관 7명 중 한 명을 지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황 위원은 "일단 9인 체제를 완성하고, 이 가운데 한 사람을 지명해야 한다. 이후 헌재소장 임기 개정을 요구할 것"이라며 "이 때문에 청와대는 소장 임기와 관련해 '입법적 미비'라고 주장하는 것이다"고 강조했다.
한편 유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는 내달 초 열릴 것으로 보인다.
bdj@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