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분석] '사실상 재판 보이콧' 박근혜, 정치적 승부수? 메시지?

재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 16일 박 전 대통령 측 대리인단이 전원 사임 의사를 밝히면서 17일 진행될 81차 공판이 연기됐다. /배정한 기자

[더팩트 | 서울중앙지법=김소희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 측 변호인단이 재판부의 구속영장 재발부 결정에 반발하며 전원 사퇴 의사를 밝혔다. 이를 두고 박 전 대통령 측이 이번 재판에 대해 '정치 보복'의 프레임을 씌움으로써 사실상 재판부를 압박하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박 전 대통령의 변호인단 7명은 1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김세윤) 심리로 열린 박 전 대통령의 80차 공판에 출석해 전원 사임계를 제출했다. 이날 공판은 지난 13일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추가 구속영장이 발부된 후 처음 진행된 재판이다.

지금까지 재판에서 인정신문 외엔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던 박 전 대통령은 작심한 듯 재판 '보이콧'이라는 승부수를 띄웠다. 구속영장 재발부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게 골자다.

박 전 대통령은 "정치적 외풍과 여론의 압력에도 오직 헌법과 양심에 따른 재판을 할 것이라는 재판부에 대한 믿음이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며 "향후 재판은 재판부의 뜻에 맡기겠다"고 했다.

변호인단도 가세했다. 유영하 변호사는 재판부를 향해 "치욕적인 흑역사와 한 페이지를 장식할 것"이라고 비난했다.

유영하 변호사는 "무죄추정의 원칙과 불구속 재판이라는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이 힘없이 무너지는 현실을 목도하면서 저희 변호인들은 더이상 본 재판부에 진행할 향후 재판절차에 관여해야 할 어떠한 당위성도 느끼지 못한다"며 사임 의사를 밝혔다.

재판부는 변호인단 전원사퇴 의사에 대해 "외적인 고려 없이 구속사유를 심리해 결정했다"며 "필요적(필수적) 변론(을 해야 하는 사건이라서 변호인이 전부 사퇴하면 공판 자체를 진행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검찰 측도 유감을 표명하며 "적절한 재판 진행을 위해 협조해주길 요청한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 재판은 변호인 없이 심리가 진행될 수 없는 '필요적 변호사건'에 해당하는 재판이다. 박 전 대통령은 구속돼 있고, 법정형이 10년 이상인 특정범죄가중처벌법위반(뇌물)죄 혐의를 받고 있다. 형사소송법 33조 1항은 '피고인이 구속된 때, 미성년자인 때, 70세 이상인 때, 사형, 무기 또는 단기 3년 이상의 사건으로 기소된 때' 등에 있어 변호인이 없으면 재판부가 직권으로 국선 변호인을 선정하도록 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변호인단 7명 전원이 사임계를 제출했다. 유영하 변호사가 법원으로 향하고 있다. /문병희 기자

박 전 대통령이 이날 "재판부 판단에 맡기겠다"고 분명한 의사 표시를 한 만큼 사선 변호인을 새로 선임할 가능성은 낮아보인다. 사선 변호인이 없으면 재판부가 직권으로 국선 변호인을 선정해야 한다. 형소법 33조 3항에는 '재판부가 권리보호를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국선 변호인을 선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있다.

또 사선 변호인, 국선 변호인 어느 쪽이 박 전 대통령의 새 변호인이 되더라도 재판의 지연은 불가피하다. 10만 쪽이 넘는 기록과 80차까지 이어진 재판 진행 상황을 총체적으로 검토해야 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즉, 연내 선고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더욱이 지금까지 가족 면회도 거부한 채 유영하 변호사와만 접견해온 박 전 대통령이 국선 변호인 접견 자체를 거부할 가능성도 있다. 급기야 박 전 대통령이 법정에 나오는 것을 아예 거부하면 피고인이 없는 상태로 재판이 진행되는 '궐석재판(闕席裁判)'이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재판부는 "누구보다 사건 내용과 진행 상황을 잘 알고 있는 변호사들이 사퇴하면 고스란히 피해가 피고인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면서 "국민에 대한 실체 규명도 상당히 지체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해 사임 여부를 신중히 재고해달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재판 중단 위기와 심리 일정에 상당한 차질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현 시점에 변호인이 집단 사퇴한 것과 박 전 대통령이 재판부의 판단 자체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을 두고 다양한 해석을 내놓고 있다. 특히 변호인단과 박 전 대통령의 작심 발언 배경에 주목하고 있다.

정치 전문가들은 이날 박 전 대통령 변호인단의 '총사퇴 카드'와 정치적 계산이 무관하지 않다는 평을 내놨다.

조원진 대한애국당 공동대표가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석방을 촉구하며 단식투쟁을 벌였다. 일부 지지자들은 국회 본청 앞 잔디에 태극기를 펼쳐놓았다. /이새롬 기자

황태순 정치평론과는 이날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박 전 대통령은 16일 24시 구속 만기일을 기해 본인이 풀려날 것이라 생각한 것 같다"며 "(박 전 대통령은) 6개월 버티면 구속 기한 만기일이 돼서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을 거라 생각하다가 매우 실망한 것으로 보인다. 그 실망하고 좌절한 느낌이 자기 소명서 형태로 나온 것"이라고 해석했다.

황 평론가는 이어 "현재 구속 기간 연장은 불가피하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도주나 증거인멸 우려가 없다는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받는 게 맞다는 사람이 충돌하고 있다"면서 "박 전 대통령은 재판부를 인정하지 못하겠다며, 자신이 '정치보복'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이들에게) 굉장히 크게 강조하고 싶어한다. 혼재된 범보수에게 보내는 일종의 '정치적 메시지'"라고 설명했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 역시 "재판 절차에 대해 정치적 판단으로 생각해서 내린 결정"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홍 소장은 "지금 박 전 대통령은 '청와대에 앉아있는 박근혜'가 아닌 '감옥에 있는 박근혜'이다. 더 이상 잃을 게 없는 상황"이라며 "이날 발언은 박 전 대통령이 정치적 대응을 한 것으로 봐야 한다. 이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재판은 더욱 복잡해지고 지지자들 역시 거기에 정치적인 반응을 보이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현재 진보진영에게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박 전 대통령이 재판을 받고 그에 따른 형을 받는 것인데, 박 전 대통령에 국선 변호인이 붙어 재판이 진행되면 강제로 끌고 들어가는 뉘앙스로 비춰질 수 있다. 변론권까지 무시하고 몰아붙이는 꼴이 돼버릴 수 있다"면서 "정부여당에 결코 좋은 모양새를 만들어주지 않겠다는 박 전 대통령 측의 정치적 계산"이라고 말했다.

ks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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