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청와대=오경희 기자] 청와대가 12일 박근혜 정부의 세월호 사고 관련 문서 조작 의혹을 제기했다. 2014년 사고 당시 상황보고 일지를 사후 조작하고, 국가위기관리지침을 불법 변경했다는 것이다.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은 이날 춘추관에서 긴급 브리핑을 갖고 이 같은 정황을 담은 문건을 공개했다. 청와대는 지난 9월 27일 국가위기관리지침 불법 변경, 지난 11일 세월호 사고 당시 대통령 보고 시점을 사후 조작한 문건을 발견했다. 해당 문건들은 각각 국가위기관리센터 내 캐비닛과 국가안보실 공유폴더 안에 들어있었다.
청와대가 제기한 의혹의 핵심은 우선 전임 정부 청와대에서 박 전 대통령에게 최초 보고한 시점을 사고 발생 6개월 뒤인 2014년 10월 23일, 9시30분→10시로 '30분' 늦춰 수정했다는 점이다. 또 '청와대 안보실장이 국가위기상황을 종합관리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한다'고 명시한 국가위기관리지침을 같은 해 7월 말께 '안보분야는 국가안보실, 재난분야는 안전행정부가 관리한다'고 빨간 볼펜으로 원본에 줄을 그어 필사로 수정했다는 게 요지다.
청와대는 해당 문건에 대해 "가장 참담한 국정농단의 표본적 사례"라고 규정했다. 임 실장은 "반드시 관련 진실을 밝히고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해 수사기관에 수사 의뢰할 예정이다"고 했다. 그러나 일각에선 이번 청와대의 '세월호 문건' 공개와 관련해 몇 가지 의문점을 제기했다.
우선 문서 발견과 언론 공개 ①시점이다. 국가위기관리지침 문건을 발견한 지 15일이 지나서야 공개했다. 지난 7월 청와대 내 캐비닛에 있던 전 정권 문건 역시 발견(7월 3일) 시점보다 늦춰 발표(7월 14일)됐다. 당시 청와대는 박근혜정부 청와대 민정수석실 직원이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삼성 관련 자필메모 두 장, 이메일 출력물, 국민연금 의결권 보고서, 2014년도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지침 등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임 실장은 발표 시점에 대해 "(국가위기관리지침 문건 발견 이후) 긴 연휴가 있었고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 있어 관련 사실을 확인하는 데에 최소한의 시간이 걸렸다"며 "관련 사실이 발견되는 대로 정치적 고려를 하지 않고 필요한 내용을 공개한다는 원칙에 따라 발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두 번째는 이미 석달 전, '전임 정부의 캐비닛 문건' 발견을 계기로 전수조사를 했는데도 ②'왜' 세월호 문건은 이번에 발견됐는지다. 청와대는 7월 14일 민정수석비서관실 캐비닛에서 300건을 발견한 사실을 발표한 데 이어 정무수석실에서 1361건을, 18일 국가안보실과 국정상황실(20일 발표 504건)에서 수백건을 확보했다. 관련 문건은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됐고, 총 17박스 1290건 분량이다. 또 8월 28엔 이전 청와대 제2부속실 공유파일에서 '문화계 블랙리스트' 등 국정농단 관련을 포함한 9308건의 문건을 발견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전에 발견한 캐비닛 문건과 서버는 이관했지만, 복사본을 가지고 있다. 파일인 경우 250만개 정도인데, 저희가 전체 다 뒤질 수 없고, 업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공유폴더들이 노출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발견한 폴더 내에서 '세월호'로 검색했을 땐 나오지 않았고 이번에는 '진도' 등 검색어를 달리 해서 발견했다"고 언급했다.
또 ③ 국가위기관리지침과 세월호 상황보고 조작 문건은 별개의 건인데 함께 묶어 발표됐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임 실장은 "최근 국가위기관리 상황을 종합적·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기본지침 개정 작업 과정에서 국가위기관리 기본지침 내용이 임의로 빨간 줄을 긋고 변경한 사실을 보게 됐고, 이를 쫓는 과정에서 파일(세월호 상황보고 일지)을 다시 확인하면서 알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맹점은 ④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구속연장을 하루 앞두고 이번 발표가 이뤄졌다는 데 있다. 박 전 대통령의 1심 구속만기일은 오는 16일 밤 12시까지인만큼 구속 연장 여부가 금요일인 13일 결정될 전망이다. 정치권 일각에선 청와대가 이를 염두에 두고 '세월호 문서 조작'을 공개했다고 봤다.
그러나 임 실장은 "발표 시점은 아마 어느 날 했어도 저는 비슷한 정치적 의문 제기할 수 있다고 보지만, 일관된 것은 관련 자료가 저희가 예상하지 못한 자료로 확인되면 최소한 절차를 거쳐 이관하고 발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가장 빠른 시점에 하고 있다. 아침 8시에 제가 보고 받았고 관련 사실이 저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라며 "제가 가장 빠른 시간 안에 발표를 드린 것으로 이해해달라"고 선을 그었다.
이번 청와대의 발표를 앞두고 일각에선 ⑤박 전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의혹' 관련 문건을 발견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었다. 하지만 해당 문건들에서 이는 확인되지 않았다. 청와대 관계자는 "현재 그 부분(세월호 7시간)은 나온 게 없다"고 언급했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 세월호 문서 조작 공개와 관련해 "모든 국민적 의혹이 해소될 수 있도록 공개하는 게 좋다"고 밝혔다. 그러나 문건 공개까지 청와대의 고민도 컸던 모양새다. 그동안 박근혜 정부의 문건을 공개한 것은 여러차례이지만, 비서실장이 직접 브리핑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임 실장도 브리핑을 하면서 "(공개까지) 정말 고민 많이 했다. 그러나 관련 사실이 갖는 성격이 국정농단의 참담한 상황이 너무 지나치다고 봤다"며 "국가에 중요한 사항을 임의로 변경하고 조작할 수 있었는지,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어선 안된다는 경계로 삼고자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