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청와대=오경희 기자] 지난해 5월 4일 취임 인사차 국민의당을 방문한 정진석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안철수·천정배 공동대표에게 자신이 맨 녹색 넥타이를 들어보이며 "넥타이 색깔도 신경썼다"고 말했다. 녹색은 국민의당 상징색이었다. 당시 안 대표는 "협력이 잘 될 것 같다"고 화답했고, 천 대표는 "정 원내대표는 협치의 적임자"라고 덕담했다.
정 원내대표는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와 마주앉은 자리에서도 녹색 넥타이를 들어보이며 "일부러 넥타이도 이걸로 했어요"라며 친근감을 나타냈다.
정 원내대표는 국민의당을 방문한 다음 날인 5일,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를 만날 때는 노란색 넥타이를 착용했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자주 맸던 넥타이가 노란색이었다. 이날 우 원내대표는 민주당 상징색인 파란색과 새누리당 상징색인 빨간색이 교차한 넥타이를 맸다.'협치'의 메시지를 넥타이에 담아내는 이른바 '넥타이 정치'였다.
남성 정치인들은 '넥타이'를 '특정한'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도구로 활용한다. 넥타이 색깔에 배려·협치 등 다양한 메시지를 담을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도 예외는 아니다. 문 대통령은 취임 전후 넥타이로 정치적 의사 표현을 한다는 평가다. 시간(time)·상황(occasion)·장소(place)에 알맞은 'T·O·P' 방식으로 넥타이 색깔과 무늬를 바꾸거나 '노타이'를 한다.
지난 27일, 여야 4당 대표와 만찬 회동에서 나온 화두도 '넥타이'였다. 이날 만찬에는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 바른정당 주호영 원내대표 겸 대표권한 대행, 정의당 이정미 대표가 참석했다.
이날 문 대통령은 국민의당 상징색인 녹색 넥타이를 맸다. 여소야대 정국에서 캐스팅보트를 쥔 국민의당과 협치를 강조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지난 5월 대선 이후 첫 대면한 안 대표도 같은 색 넥타이였다.
김 현 민주당 대변인은 28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글쎄, '초록은 동색이다'라는 것 같은데, 지난 김명수 대법원장 인준 때도 본회의장에서 넥타이로 서로 공감대를 보여줬다. 이번에도 아마 그런 걸 고려한 것 아닐까"라고 했다.
김 대변인의 말처럼, 문 대통령은 지난 20일(현지 시각), 제72차 유엔총회 참석 차 미국 뉴욕을 방문 중이었지만, 녹색 넥타이를 맸다. 같은 시각 국내 국회에선 김명수 대법원장 인준 동의안 표결을 앞둔 상태였다.
여야 4당 대표와 회동이 있던 27일 오전 '10·4 남북정상선언 10주년 기념식' 자리에선 '노란색' 넥타이를 매 화제가 되기도 했다. 노란색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상징색'일 뿐만 아니라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 가장 좋아했던 색깔이다. 문 대통령은 축사 말미에 "고뇌 속에서 한반도 평화를 염원하던 노무현 대통령님이 그립습니다. 이 땅의 평화를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신 분입니다. 언제나 당당했고, 누구보다 따뜻한 마음을 가진 분이었습니다"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외교'에도 넥타이를 활용했다.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로 한·미 공조가 중요한 상황에서 지난 6월 말 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푸른색' 넥타이를 똑같이 착용했다. 이어 7월 초 주요 20개국 회의(G20) 참석 계기로 독일서 진행한 한·미·일 회담 때 두 대통령 모두 '붉은색' 넥타이를 맸다. 푸른색은 문 대통령, 붉은색은 트럼프 대통령의 상징색이다. 지난 21일(현지 시각) 유엔총회 기조연설 당시, 문 대통령은 파란색 넥타이를 맨 채 단상에 섰다.
색깔뿐만 아니라 '무늬'를 달리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취임 전 대선 기간 거리 유세, TV 토론회에서 '승리의 넥타이'로 불리는 줄무늬 넥타이를 선택했다.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이 주로 활용했던 스타일이다. 당선 후 지난 7월 여야 지도부와 회동할 때 주황색 '독도 강치 넥타이'를 매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도 했다.
넥타이에 프린팅된 강치는 독도를 상징하는 동물 가운데 하나로, 일본에 국권을 침략당했을 당시 일본인들이 마구잡이로 잡아가는 바람에 보기 힘들어진 희귀한 동물이다. 해당 넥타이는 아픈 역사를 잊지 말자는 교훈을 담고 있으며 독도의 주권을 상징하는 의미가 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며 넥타이를 사려는 국민이 늘었고, 온라인에서는 품절 사태까지 빚었다.
또 문 대통령은 청와대서 아침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할 땐 '노타이' 콘셉트를 보여줬다. 관례와 격식을 깨고 자유로운 소통을 하자는 의미로 해석됐다.
이미지 컨설턴트들은 "자신의 의사를 표시 할 수 있는 넥타이는 때로는 말보다 강한 메시지를 전달해 줄 수 있다"고 한다. '넥타이도 곧 정치'로 읽힌다는 얘기다. 문 대통령이 상황에 따라 '넥타이 정치'로 자신의 메시지를 전략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게 정치권 일각의 시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