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국회=이원석 기자] 이혜훈 바른정당 전 대표의 '금품 수수 의혹' 논란 때부터 불거진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의 보수 통합론이 점차 힘을 얻고 있는 모양새다. 11월 전대를 앞뒀지만 물밑에선 통합논의가 활발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한국당과 바른정당의 일부 중진 의원들이 27일 만나 '보수우파 통합추진위원회'를 만들기로 결정하면서 통합을 위한 움직임이 본격화됐다고 정치권 안팎에선 보고 있다.
통합의 구체적 시기에 대한 이야기도 솔솔 나오고 있다. 바른정당 통합파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는 입장인 데, 이르면 추석 이후 10월, 11월 중 보수야당 발 정계개편이 이뤄질 수도 있다는 게 정치권의 관측이다.
이 같은 한국당과 바른정당의 행보는 이혜훈 전 대표의 금품수수 의혹이 터지면서 예상된 수순으로 볼 수 있다. 당내 대표적 자강론자였던 이 전 대표가 물러나면서 힘의 무게추는 김무성 의원을 중심으로 한 통합론자에게 쏠렸다. 김 의원은 지난달 30일 정진석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와 함께 '열린토론 미래'라는 이름의 보수당 중심 초당적 스터디 모임을 공식 출범하기도 했다. 김 의원은 '이 모임이 결국 양당 통합의 기초가 되는 것 아니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그런 고민도 하고 있다. (통합)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며 통합이 구체화되고 있음을 내비쳤다.
한국당도 '통합'을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한국당 혁신위는 3차 혁신안 발표에서 박근혜 전 대표와 친박계의 좌장급인 서청원, 최경환 의원의 자진 탈당을 권고했다. '친박 청산'을 통해 바른정당 의원들의 복당에 명분을 만들어주는 모습이었다. 홍준표 대표 역시 바른정당 의원들이 돌아오면 조건 없이 받아주라고 당부했다.
바른정당과 한국당의 통합 논의가 일시적으로 미뤄지는 듯 보일 때도 있었다. 바른정당이 11월 13일 전당대회를 통해 새 지도부를 선출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이 나올 때였다.
그러나 최근 조기 전대와 상관없이 물밑에선 여전히 통합론의 움직임이 활발한 것으로 전해졌다. 통합파 의원들은 지속적으로 한국당과의 접촉을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바른정당 통합파 의원은 <더팩트>에 "통합 논의는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면서 "시간문제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확한 시기는 말하기 어려워도 조만간 통합이 있을 거라고 내다본다"며 "다만 당 의원들이 분열되는 사태는 없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또 다른 바른정당 관계자 역시 "추석 이후 무슨 일이 있을 지도 모른다는 소리가 나온다"며 "통합이라는 게 쉽게 이뤄지는 게 아니지만 현재도 계속 접촉과 논의들이 진행되고 있다고 들었다"고 했다.
통합파 의원들이 '빠른' 통합을 원하는 것은 내년 6월에 있을 지방선거 때문이다. 추석 이후 10월, 11월 정계개편설이 나도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무너진 보수가 내년 지선에서 이기는 것이 정말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면서 "한국당과 바른정당의 통합파 의원들은 그때 가서 통합이든 뭐든 하는 것은 늦다는 생각에 굉장히 서두르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한국당과 바른정당의 3선 중진 의원들은 27일 만찬을 하면서 '보수우파 통합추진위원회'를 만들기로 잠정 합의했다. 모임에 참석한 이철우 한국당 의원은 이날 오후 서울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만찬 회동 뒤 기자들과 만나 "보수우파 통합추진위를 만들자는 공감대에 함께했다"며 "각 당 지도부에 이야기하고 오는 10월11일 한 번 더 국회에서 만나 논의하기로 했다"고 했다.
김영우 바른정당 의원도 "문재인 정부가 포퓰리즘으로 독주하고 있는데 이를 힘있게 견제해야 대한민국이 제대로 갈 수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며 "대한민국 보수가 하나로 뭉쳐야 하는 것 아니냐, 한국당과 바른정당이 건강한 수권 이미지가 약하니 뭉치면서 다시 태어나는 계기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바른정당 내에선 여전히 한국당과의 통합에 반대하는 자강론자들이 있어 당 분열의 조짐도 보인다. 지난 김명수 대법원장 인준 표결 당시 반대 당론에도 불구하고 하태경 의원이 찬성표를 던지자 주호영 원내대표는 "별난 사람하고는 당을 같이하기 어렵지 않겠느냐"고 공개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하 의원은 대표적인 자강론자이고, 주 원내대표는 통합론자로 분류된다.
당 분열 조짐은 자강론자들이 국민의당과 연대를 추진한다는 점에서도 느낄 수 있다. 통합론자들이 떠나면 소수당으로 남아 있기 보다 국민의당과 연대를 통해 '존재감'을 키우겠다는 의도로 분석된다. 실제 지난 20일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몇몇 의원들은 정책 연대 모임인 '국민통합포럼'을 출범했다. 자강론파 하태경·정운천·오신환·김세연 의원 등이 참석했다. 이들은 국민의당과의 정책 연대를 넘어 선거 연대까지도 내다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당과 바른정당의 통합이 이뤄진다면 일부 의원들은 국민의당으로 이탈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바른정당 내에선 '전대 무용론'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한 바른정당 당직자는 <더팩트>에 "요즘 통합, 통합 하는 소리들 때문에 전대가 묻히고 있는 느낌"이라며 "일할 맛이 나질 않는다"고 성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