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서울중앙지검=김소희 기자] 최승호 전 MBC PD가 26일 검찰에 출석했다. MBC 대표 시사고발 프로그램 'PD수첩' 제작진이었던 최 전 PD는 '4대강 사업' 의혹 보도를 준비하던 중 비제작 부서로 발령이 났고, 2012년 해고 통보를 받았다.
최 전 PD는 이날 오전 10시쯤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면서 "'PD수첩'에서 쫓겨나고 이해되지 않는 이유로 해고되는 과정 속에 단순히 김재철 전 사장 같은 경영진 뜻만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배경에 뭐가 있을지 항상 굼금했다"며 "이제 검찰에서 저를 부르는 걸 보니 국정원 혹은 그 배후에 있는 진실이 드러나고 있는 게 아닐까 한다"고 말했다.
검찰에 피해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는 이는 최 전 PD뿐만이 아니다. MBC·KBS 등 공영방송 관계자들이 줄줄이 검찰 조사를 앞두고 있다. 이들은 하나같이 공영방송 장악 시나리오 최종 작성자로 이명박 전 대통령을 지목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당시 국가정보원(국정원)이 주요 공영방송 장악을 위해 PD·기자 등을 대상으로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관리했다는 게 이들의 핵심 주장이다.
이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검 댓글전담수사팀(공안 2부·공공형사수사부)은 'PD수첩' 제작진 등 피해자들을 상대로 국정원이 직권을 남용해 공영방송에 외압을 행사했는지, 국정원 측과 경영진 사이 부적절한 공모 관계의 정황이 있는지 등을 확인할 방침이다.
◆ 국정원 '언론장악 문건'…무엇이 담겼나
'국정원 공영방송 장악' 의혹 사건은 지난 14일 국정원 적폐청산TF로부터 이명박 정부 시절 작성된 '언론장악 문건'이 검찰에 전달되면서 본격화됐다. 이 문건에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 시절 국정원이 방송사 간부와 프로그램 제작 일선 PD 등의 성향을 광범위하게 파악하고 정부 비판 성향이 있다고 판단되면 구체적으로 인사에 개입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특히, 해당 문건에는 KBS·MBC의 특정 프로그램 폐지와 노조탄압, 경영진 교체 등을 주문한 내용이 구체적으로 포함됐다. 예를 들어 지난 2010년 국정원은 'MBC 정상화 전략 및 추진방안'이라는 문건을 통해 MBC 'PD수첩'을 편파방송으로 간주하고, 책임자를 문책해 공정성을 확보하겠다는 내용을 계획했다. 이 문건의 골자는 ▲노영(勞營) 방송 잔재 청산 ▲고강도 인적 쇄신 ▲편파 프로 퇴출에 초점을 맞춰 근본적 체질개선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같은 해 6월에는 'KBS 조직개편 이후 인적 쇄신 추진방안' 보고서를 만들어 "KBS가 6월 4일 조직개편을 단행하고 곧바로 후속 인사에 착수할 계획인데, 면밀한 인사검증을 통해 부적격자를 퇴출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의 문건을 만들었다.
국정원은 퇴출 대상으로 ▲좌편향 간부 ▲무능·무소신 간부 ▲비리연루 간부로 분류했다. 특히 좌편향 간부에 대해서는 '반드시 퇴출, 좌파세력의 재기 음모 분쇄'라고 적었다.
검찰은 피해자 조사 등을 통해 국정원 고위층과 방송사 경영진 또는 방송사 담당 정보관과 간부들 간에 부적절한 의사 교환이 있었는지, 국정원의 언론장악 계획이 실제 실행됐는지 등을 확인할 계획이다.
◆ 檢, MBC 'PD수첩' 관계자 피해자 조사…몸통 밝혀낼까
이날 최 전 PD는 "국민의 사랑을 받던 공영방송을 권력이, 자신이 원하는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고 해서 완전히 망가뜨린 역사가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발본색원 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최 전 PD는 이명박 전 대통령 고소 의지도 드러냈다. 그는 "자료를 보고 자료 내용에 따라 MBC 구성원들과 논의를 해서 판단하겠다"면서도 "저희들은 진실을 가급적 밝혀야 하고 처벌을 해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그런 문제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했다.
검찰은 최 전 PD를 시작으로 이날 이우환 MBC PD, 정재홍 전 'PD수첩' 작가를 불러 조사했고, 27일에는 김환균 MBC PD를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키로 했다.
이 PD와 김 PD도 MB정부 시절 갑작스럽게 인사조치를 받았다. 이 PD는 'PD수첩' 근무 중 저성과자로 분류돼 농군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이후 2014년 신사업개발센터로 발령받아 스케이트장을 관리했다. 이후 대법원의 부당전보 판결로 제작부서에 복귀했지만, 다큐멘터리부로 전보됐고 세월호 관련 다큐멘터리 제작을 두고 또 다시 경연진과 갈등을 빚었다.
김 PD는 MBC 언론노조 위원장이었다. 그는 'PD수첩' 팀장을 지냈지만 특별한 이유 없이 팀에서 배제돼 비제작 부서로 발령받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처럼 'PD수첩' 제작진들이 연이어 인사조치를 당하면서 MBC 안팎으로 "MBC 경영진에 의해 이 지시가 실행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국정원은 이른바 '언론장악 문건'에서 'PD수첩'에 대해 "대외적 신뢰도가 높아 당장 폐지가 어렵다"고 판단하고 사전심의 제작진 교체 등을 순차적으로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PD수첩' 제작진은 광우병 보도 당시 검찰에 소환되기도 했다.
◆ KBS도 피해자 조사 '코앞'?…"'좌편향 리스트'에 내 이름 확인"
지난 18일 언론노조 KBS본부(새노조)는 기자회견을 열고 국정원이 작성한 'KBS 조직개편 이후 인적쇄신 추진방안' 보고서 내용 일부를 공개했다.
노조가 공개한 보고서는 ▲KBS 기자·PD들을 이념 성향과 정부 동조 정도에 따라 낙인 찍어 퇴출 ▲언론노조 KBS본부 조합원들을 배제 ▲김인규 당시 KBS 사장과 협의해 부사장, 본부장 인사를 처리하도록 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노조 측은 해당 보고서가 이명박 정권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실의 지시에 따라 국정원이 작성해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작성일자는 조직개편 바로 전날인 2010년 6월 3일이었다.
공개된 국정원 보고서에는 KBS 기자·PD들의 실명과 자체 분석한 정치 성향 등을 담았고, "면밀한 인사검증 통해 부적격자 퇴출해야 한다", "좌편향 간부 반드시 퇴출"이라고 적시됐다.
이에 대해 KBS 라디오국 소상윤 PD는 "나름대로 합리적, 상식적으로 일을 처리하려고 해왔던 나까지 리스트에 올렸다"며 "공영방송 KBS의 인사를 개인의 역량이나 국민에 대한 봉사의식이 아닌 권력기관이 작성한 리스트에 따라 실행했다면, 자괴감이 들고 참담한 심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공영방송 장악 문건과 관련,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이날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출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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