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국회=서민지 기자] 2017년 하반기 채용의 트렌드는 '블라인드 채용'이다. 공공기관에서 시작된 블라인드 채용이 일반 민간기업까지 자연스럽게 확대되면서 문재인 정부의 청년 공약이 실현된 셈이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최근 하반기 대졸 신입 공채에 도전하는 취준생 577명을 대상으로 올 하반기 대기업 및 공기업 신입사원 공개채용의 가장 두드러진 핫이슈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를 물은 결과, 취준생들의 64.5%(복수응답)는 '블라인드 채용의 확대'를 꼽았다.
지난 7월 정부 관계부처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 방침에 따라 블라인드 채용 추진방안을 발표하고 전국 332개 공공기관에 적용할 가이드라인을 배포한 뒤 전면 시행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민간기업도 도입하는 곳이 잇따른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 4일 209개사를 대상으로 올해 채용 계획을 설문한 결과, 62개사(약 30%)가 '블라인드 채용'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해당 민간기업들은 입사 지원자의 '스펙'을 보지 못하면서, 지원자의 다른 능력을 검증하기 위한 묘안을 짜내고 있다.
◆ 일단 시도는 하지만…입맛대로 채용에 취준생 '골머리'
하반기 공공기관과 지방공기업 채용 규모는 약 1만 명으로, 공공기관 332곳은 7월부터, 지방공기업 149곳은 8월부터 블라인드 채용 제도를 전면 도입했다. 관련 지침을 배포하면서 일부 민간기업도 발 빠르게 적용하고 있다.
대기업들은 올해 하반기 채용 시즌에 블라인드 전형을 앞다퉈 신설하고 있다. CJ그룹이 하반기 채용 인원의 20% 정도를 학교 학점 등을 기재하지 않는 '리스펙트 전형'으로 뽑는다. 현대모비스는 학력·학점·영어점수 없이 뽑는 '미래전략전형'을 도입했다. 신한카드도 디지털 역량만을 평가하는 '디지털 패스' 전형을 선보인다. 서류나 면접 등을 블라인드 방식으로 평가하거나 이력서 항목을 최소화하는 경우도 늘었다. 국민은행은 하반기 채용에 자격증 어학점수 항목을 없애고, 블라인드 면접으로 지원자를 평가한다.
이처럼 블라인드 채용 확대 자체는 성공한 듯하나, 아직 구체화·정착화되지 않은 탓에 당초 블라인드 채용 도입 취지와 다르게 곳곳에서 구멍이 발생하고 있다. 학벌·스펙을 보지 않고 능력만으로 뽑는 블라인드 채용의 취지를 실현하려면 모든 항목을 100%가리면서 채용을 진행해야 한다.
하지만 블라인드 도입 초창기인 만큼 민간기업은 '무엇'을 가리느냐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어 혼란을 겪고 있다. 보통 서류전형, 필기시험, 면접 단계를 거치는데, 회사 판단에 따라 서류를 블라인드로 할지, 면접을 블라인드로 할지 등 회사별로 다른 기준을 적용해 채용을 진행하고 있다.
불확실성이 확대되면 학원가가 성행하는 등 불가피한 측면이 있기 때문에 불확실성을 줄이는 것이 급선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블라인드 채용이 다른 스펙을 더 강하게 요구하는 일종의 '풍선 효과'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하반기 채용시장이 열리면서 벌써 자기소개서보다 상대적으로 면접의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스피치 학원을 찾는 취업준비생이 늘어나는 등 취업 사교육 시장에서 '풍선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 민주당, '블라인드 채용' 법안 속속 발의
국회는 이 같은 미비점을 보완하고, 확실성을 높이기 위해 블라인드 채용을 명문화하는 입법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특히 민주당은 문재인 정부의 블라인드 채용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해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에 대한 개정안을 7건 발의했다. 민주당 민병두·신창현·박광온 의원의 발의안은 블라인드 채용을 의무화하는 데 방점을 찍고 있다.
민 의원은 지난 6월 23일 채용 절차에서 차별을 막기 위해 '구인자는 채용과정에 있어서 구직자에 대하여 불합리한 처우를 해서는 안 된다'는 조항은 신설했다. 또한, '구인자는 구직자에게 채용대상 업무에 대한 적격 여부와 관련되지 아니한 사항을 채용서류로 작성 또는 제출하게 하거나 필기·면접시험 등에서 질문하여서는 안 된다'는 조항도 새로 만들었다.
신 의원의 법안은 좀 더 구체적이다. 신 의원은 '구인자는 구직자에게 채용 예정 분야의 업무수행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개인신상정보를 기초심사자료에 기재하도록 요구하거나 입증자료로 수집하면 안 된다'고 명시했다.
특히 신 의원은 '신체적 조건이나 사회적 신분' 등을 이유로 인권을 침해하거나 구직자에게 성희롱이나 모욕적인 언행을 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신체적 조건'에는 포괄적으로 성별은 물론 장애 여부, 연령, 외모 등이 포함될 수 있다. '사회적 신분'이라는 표현으로는 학벌과 출신 지역, 심지어는 다문화가정 같은 가정사 등까지 차별 금지 대상을 확대할 수 있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소속이었던 박광온 의원은 더욱 구체화했다. 박 의원이 대표 발의한 채용절차법이 통과되면 앞으로 공공기관은 채용 과정에서 학력과 출신지, 신체조건 등이 적힌 서류를 제출받지 못한다. 박 의원은 지난 7월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에 공공기관에 해당하는 구인자는 정당한 사유 없이 구직자에게 학력, 출신지, 신체조건 등이 기재된 서류를 제출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못 박았다. 다만, 고용노동부령으로 정하는 직종의 경우 달리 정할 수 있다.
박 의원은 법안 마련 취지에 대해 "학력, 출신지, 신체조건 등 실력과 상관없는 요인으로 인한 차별은 우리 사회에 지나친 경쟁 구도를 초래했고, 이로 인해 사회구성원의 획일화, 인력수급의 불균형, 개인의 심리적 박탈감 등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에 공공기관부터 채용과정에서 차별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는 학력, 출신지, 신체조건 등이 기재된 서류의 제출을 금지해, 사회 전반적으로 확산시키고자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