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서울중앙지법=김소희 기자] 법원과 검찰이 '영장 기각' 문제로 파열음을 내고 있다. 검찰은 법원 내 일부 세력이 교묘하게 수사를 방해하는 것이라고 보고 있는 반면, 법원은 검찰이 향후 다른 사건에 영향을 미치려는 저의가 포함된 것으로 오인될 우려가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국민적 관심은 전례 없는 '법원과 검찰의 갈등'의 배경에 쏠려 있다.
사건의 발단은 '국정원 댓글부대' 관련자와 방산비리에 연루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관계자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이었다. 지난 8일 서울중앙지법은 민간인 댓글부대 활동을 통해 여론 조작 활동에 가담한 혐의를 받는 전 국가정보원 퇴직자 모임 '양지회' 관계자 2명에 대한 구속영장을 모두 기각했다. 또 같은 날 유력인사 청탁을 받고 사원을 부당 채용한 혐의를 받은 KAI의 이모 본부장의 영장도 기각했다.
특히, 서울중앙지법은 증거인멸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양지회 박모 씨에 대해 "증거은닉 우려가 없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이유로 영장이 기각된 셈이다.
눈여겨 볼 대목은 영장 전담 판사다. 양지회 관계자의 영장을 기각한 오민석(48·사법연수원 26기) 판사는 권순호(47·26기) 판사, 강부영(43·32기) 판사와 함께 지난 2월 말 법원 인사로 서울중앙지법에 새롭게 배치된 영장 전담 판사다. 지난 2월은 국정농단 수사가 한창일 무렵으로, 당시 양승태 대법원장이 영장 전담 판사를 새롭게 임명했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이들을 '양승태 키즈'라고 부른다. 이들을 임명한 양승태 대법원장은 이명박 정부 3년차인 2011년 9월 25일 임명된 후 지난 6년 동안 끊임없이 이념과 개혁 논란을 불러일으켰으며 오는 24일 임기를 마치게 된다.
특히, 오민석 부장판사는 과거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구속영장을 기각했던 판사이기도 하다. 오 부장판사는 당시 우 전 수석에 대해 "구속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지난 4월에 우 전 수석의 영장을 재청구했지만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오 부장판사의 '적폐청산' 관련 수사에 대한 영장기각은 이뿐만이 아니다. 그는 지난 4일 부하 직원이 협력업체에 받은 뒷돈 일부를 상납받은 혐의를 받는 KAI 전 생산본부장 윤 모씨에게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도 기각했다. 오 부장판사는 윤 씨의 영장실질심사에서 "일부 범죄 혐의에 대한 다툼의 여지, 도망 및 증거인멸의 가능성 등에 비추어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 타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기각 사유를 밝혔다.
종합하면 검찰이 "'증거 은닉'을 우려한다"며 구속영장을 청구한 국정원 '댓글 부대' 관계자를 오 부장판사는 "'증거 은닉' 우려가 없다"며 기각했고, 검찰이 대규모 압수수색을 시작으로 공을 들였던 KAI 경영비리 강제수사 이후 첫 구속영장 청구를 오 부장판사는 "구속 사유와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기각했다.
법원이 구속영장 기각을 결정하더라도 검찰이 이에 대해 이의가 있으면 상급 법원에 재심사를 요청할 수 있다. 검찰은 현재 증거인멸 혐의를 받고 있는 박모 씨에 대한 영장 재청구를 검토 중이며, 증거 보강에 한창이다.
그러나 그보다 검찰이 공식 입장문을 통해, 그것도 원색적인 표현을 담으면서까지 말하고 싶었던 건 '사법 개혁'일 것이다. 우리나라는 '영장주의'를 따르고 있는 만큼 수사기관이 청구한 구속영장의 요건 적합 여부는 전담 판사의 몫이다. 법원이 원고의 청구를 '이유 없다'며 물리치면 검찰은 새로운 증거를 찾아 영장을 재청구해야 한다.
결국 검찰이 지난 8일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최순실 씨 딸 정유라 씨, 이영선 전 청와대 행정관, 국정원 댓글 관련자, KAI 관련자 등 국민이익과 사회정의에 직결되는 핵심 수사의 영장들이 거의 예외없이 기각되고 있다"며 2월 말 영장 전담 판사 교체 후 누적된 불만을 쏟아낸 배경을 들여다 보면 그 기저에는 양승태 대법원장이 있다. '양승태 키즈' 때문에 수사가 차질을 빚고 있다는 게 검찰의 견해다.
검찰이 법원의 판단을 존중하지 않고 인신공격성 비난을 한 것은 결코 칭찬받을 일은 아니다. 그러나 국민들은 상식에서 벗어난 법원의 판단에 대해 더욱 의심스런 눈초리를 보내고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