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서울고법=김소희 기자] "남궁곤 전 입학처장이 정윤회 씨 딸이 지원했다는 걸 보고했다는 거죠. 그외 다른 말은 없었습니까?"(특검)
"저도 왜 보고를 하는지 의아했습니다. 나중에 설명을 듣고 보니 워낙 정계에 영향력이 있는 분의 딸이 지원했으니…"(박선기 전 기획처장)
"남궁 전 처장이 보고서를 만들어서 보고했습니까. 구두로 했습니까?"(특검)
"저는 보고서는 없었다고 분명히 기억합니다. 남궁 전 처장이 노트 한 권 들고와서 구두로 보고했습니다."(박 전 처장)
"남궁 전 처장이 '정윤회 딸'이라고 정유라를 소개하면서 최태원 목사의 사위라 말을 한 것을 들었습니까?"(특검)
"말씀하시니까 그랬던 거 같기도 합니다."(박 전 처장)
"당시 남궁 전 처장이 정윤회가 정권 실세와 맞닿았다는 말을 했는지 기억이 납니까?"(특검)
"정황은 기억이 나는데 그런 말씀은 하셨던 것 같습니다."(박 전 처장)
5일 서울고등법원 형사3부(부장판사 조영철) 심리로 진행된 '정유라 이대 특혜' 최경희(55) 전 이화여대 총장, 남궁곤(56) 전 이대 입학처장 항소심 3차 공판에서 박영수 특별검사팀과 증인으로 출석한 박선기 전 이대 기획처장의 증인 신문을 재구성한 것이다.
이날 재판의 핵심은 '비선실세'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가 이대에 입학하는 과정에서 최경희 전 총장이 정 씨가 최 씨의 남편인 정윤회 씨의 딸인지를 인지했는지 여부였다.
박 전 처장은 남궁 전 처장 측 변호인이 "남궁 전 처장이 2014년 9월 22일 정윤회 딸인 정유라 씨가 체육특기자 전형으로 지원했다는 사실을 최 전 총장에게 보고할 당시 함께 들었는가"라고 묻자, "그렇다"고 답했다.
최 전 총장이 정유라 씨가 정윤회 씨의 딸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당사자 증언이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다.
박 전 처장은 김경숙 신산업융합대학장, 이인성 교수와 함께 '최경희 3인방'으로 지칭되는 인물이다. 최 전 총장을 도와 이대 총장 선거캠프에 참여했으며, 최 전 총장이 취임한 후인 2014년 8월 1일 처장으로 임명됐지만 2016년 8월, '미래라이프대' 문제에 대해 이대 학생들이 대학 본관을 점거하는 학내사태가 불거지자 책임을 지고 같은 달 31일 사임했다.
박 전 처장은 당시 동석했던 배경에 대해 "당시 저는 총장실에 가서 간단한 보고를 한 후 가벼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며 "그때 남궁 전 처장이 평소 들고다니는 노트 한 권을 들고 총장실로 들어와서 총장에게 구두로 '정윤회 씨 딸이 지원했다'고 보고했다"고 말했다.
박 전 처장은 이어 "남궁 전 처장의 보고를 듣고 최 전 총장은 '정윤회 씨가 누구냐'고 질문했고, 남궁 전 처장은 정윤회가 누군지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했다"며 "이를 듣고 최 전 총장은 '특혜를 줄 것도 불이익을 줄 것도 없다. 다른 학생처럼 공정하게 처리하면 되지 않겠나'라고 했다"고 말했다.
박 전 처장의 증언을 종합하면, 최 전 총장은 남궁 전 처장의 보고 당시에는 정윤회 씨가 누군지 정확히 인지하지 못했다. 다만 보고받은 시점이 2015년 이화여대 수시모집 체육특기자전형 면접 이전이라는 점에서 정유라 씨는 물론, 정윤회·최순실 씨 등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총장이 학생에게 특혜를 주거나 불이익을 줄 수 있는 것인가"라는 특검의 질문에 박 전 처장이 "권력자의 딸이라고 해서 특별하게 할 것 없지 않냐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답한 것도 정 씨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었던 것을 방증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특검은 또 남궁 전 처장이 최 전 총장에게 정 씨가 '정윤회 딸'이라는 사실을 보고를 한 시점을 캐물으면서 박 전 처장이 10시간 넘게 진행된 특검 조사, 교육부 감사 동안 해당 증언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이유 등을 지적했다.
박 전 처장은 남궁 전 처장이 최 전 총장에게 보고한 시점에 대해 "당시 세 사람이 동석했던 시간이 오전인지 오후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으나 처장회의 전이라는 것은 확실하기 때문에 오전이라고 추측할 뿐"이라고 말했다. 10시간 넘게 진행된 특검 조사, 교육부 감사기간 동안 해당 사실에 대해 증언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선 "그간 조사 과정에서 아무도 묻지 않았기 때문에 말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던 것 뿐"이라고 해명했다.
재판부도 박 전 처장의 해당 발언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재차 질문했다. 재판부는 "박 전 처장이 교육부 감사를 받고 특검 조사를 받을 때도 언론에서는 정유라의 이대 입학에 관해 특혜가 있다고 보도하고 있었는데 9월 22일 동석한 일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는가"라고 질문했다.
이에 박 전 처장은 "저는 특검에 10시간 있었지만 특검 조사도 처음이고, 교육부 감사도 처음 받아본다"면서 "저한테 쏟아지는 질문에 대해서만 답변하기에도 정신이 없었다"고 답했다.
박 전 처장의 이날 증언은 최 전 총장과 남궁 전 총장의 항소심 선고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박 전 처장의 발언이 사실일 경우 최 전 총장이 남궁 전 처장으로부터 '정윤회 딸'인 정씨가 이대에 지원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는 점이 입증되기 때문이다.
최 전 총장은 그간 "정씨에게 특혜를 줄 것을 지시한 적이 없다"며 "정씨가 '정윤회 딸'인 줄 몰랐다"고 주장해왔다.
특히 최 전 총장은 관련 진술이나 물증 확보가 어려워서 특검이 한 차례 구속기소에 실패했던 인물이다.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를 맡은 법원은 입학전형과 학사관리에서 최 전 총장의 위법한 지시나 공모가 있었다는 점과 국회 국정조사에서 위증한 혐의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고 판단해 영장을 기각했다.
그 뒤 최 전 총장의 '특혜 지원 지시'를 받은 혐의를 받고 있는 김경숙(62) 전 체육대학장, 류철균(51·필명 이인화), 이인성(54) 교수, 남궁 전 처장 등은 구속기소됐고, 특검은 혐의를 입증할 추가 증거를 확보해 최 전 총장을 구속하는 데 성공했다. 사실상 최 전 총장이 정씨의 이대 입학과 학사 특혜를 진두지휘했다고 판단하고, 구속 수사가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한편 '이대 입시 비리'와 관련, 지난 6월 2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9부(부장판사 김수정)는 업무 방해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최순실 씨에게 징역 3년, 최 전 총장에게 징역 2년을, 남궁 전 처장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최 전 총장은 대학 최고 책임자임에도 사회 유력인사 딸이 지원한 것을 알고는 공명정대한 학사 관리를 해야 할 책임과 의무를 저버렸다"고 선고 이유를 밝혔다. 최 전 총장은 이에 불복해 항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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