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청와대=오경희 기자]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로서 역할을 못한다고 규정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최근 '역사관 논란'으로 진보야당 등으로부터 지명철회를 요구 받는 박성진(49) 중소벤처기업부(중기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청와대 관계자의 말이다. 박 후보자는 발탁 직후 한국창조과학회 활동과 '1948년 건국절' '이승만 독재 미화' 등 뉴라이트 역사관 논란에 휩싸였다. 야권은 물론 여권 일각에서도 사퇴와 지명철회를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청와대는 사실상 '정면돌파' 의지를 내비쳤다.
논란은 인선 직후 곧바로 불거졌다. 지난달 24일 문재인 대통령은 '장고 끝'에 중기부 장관 후보자로 포항공대 기계공학과 교수인 박 후보자를 발탁했다. 지난 7월 20일 정부조직법 개정으로 중소벤처기업부가 신설된 지 34일, 새 정부 출범 107일 만이었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박 후보자는 기계공학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공학자이자, 2012년부터 포스텍 기술지주 대표이사를 맡아 새 정부의 스타트업과 중소·벤처기업 정책을 이끌어나갈 적임자"라고 인선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나 같은 날 박 후보자가 진화론을 부정하는 기독교 근본주의 단체로 알려진 '한국창조과학회' 이사로 활동해온 것으로 확인돼 논란이 일었다. 8월 25일 박 후보자는 이사직을 사임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장관 후보자 검증에는 종교 활동과 관련된 부분이 안 들어가는 만큼 이 단체의 이사로 활동한 사실을 미리 알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당시 청와대 내부에서 '신앙과 중기부 장관 후보자로서 자질은 별개의 문제로 본다'는 분위기가 우세했다.
박 후보자의 논란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닷새 후인 8월 30일, 박 후보자가 "1948년(8월 15일) 정부 수립을 '건국'으로 봤다"는 등 뉴라이트 역사관 의혹이 제기됐다. 교수 시절인 2015년 2월 27일 작성, 발표한 '미래를 위한 새로운 대학교 연구 및 교육 모델 창출'이란 연구보고서에서다.
박 후보자는 해당 보고서에서 "이승만 정부 당시 자유민주주의 체제 수립을 위해 독재가 불가피했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박정희 정부의 새마을운동은 "진정한 신분 계층 제도의 타파"라고 평가했다. 이는 뉴라이트 사관과 유사한 시각으로, 상해 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 4월 13일을 건국으로 명시한 현행 헌법과도 배치된다.
이 같은 논란이 불거지자,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등 야권은 '창조론 신봉'과 '독재 미화' 논란에 휘말린 박 후보자를 비판하며 '지명철회'를 촉구했다. 여당에 '협조적인' 정의당조차 등을 돌렸다. 추혜선 대변인은 지난달 30일 논평을 내고 "박 후보자의 역사관은 문재인 정부의 철학에도 부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헌법 정신에도 완전히 어긋난다"며 "개혁을 주도해야 할 자리에 적폐를 가져다 앉히려 한 셈"이라고 비판했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청문회까지 지켜보자"는 입장이었다. 지난달 31일 청와대 관계자는 "후보자 지명 절차까지 추천을 하게 되는데, '언론과 국회와 국민이 함께 검증해주시는 기간이고 그 내용에 따라서 청문회에서 소명해야 한다'는 원칙적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고 했다. 박 후보자도 같은 날 오후 기자간담회를 열어 "부끄러운 일이지만 건국과 정부 수립의 개념이 다르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됐다. 국가에 공헌할 일이 있다"며 자진사퇴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박 후보자에 대한 지명 철회를 요구하는 여론은 잦아들지 않고 있다. 지난 1일 이유정(47·사법연수원 23기) 전 헌법재판관 후보자가 지명 24일 만에 '주식 투자 불법 의혹'으로 스스로 물러나자, 박 후보자의 거취 문제도 함께 도마에 올랐다. 이날 청와대는 다시 한 번 박 후보자를 변호하고 나섰다.
청와대가 박 후보자를 '비호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해석된다. 우선 중기부 장관 후보자 물색 과정에서 난항을 겪은 만큼 낙마 이후 후속 인선에 대한 부담감을 떠안아야 한다는 점이다. '통합 정부'를 내건 만큼 법적·도덕적 흠결이 아닌 '사상과 이념'을 국무위원의 자격 기준으로 삼지 않겠다는 것으로도 보인다. 특히 새 정부 출범 이후 유지하고 있는 70%대 높은 지지율을 위해 지지층의 범위를 한정해선 안된다는 포석도 깔려 있다는 게 정치권 일각의 시각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지난 1일 "실제 중기장관 후보자를 찾기 위해서 상당히 노력했다"며 "후보자 리스트 30여 명을 검토했고, 직접 만났고 설득을 했다. 정말 저희가 '(중기부 장관 후보자를) 했으면 좋겠다' 한 분들은 모두 백지신탁에 대한 부담감으로 고사했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기업인이 1급 이상 고위 공직에 등용하려면 본인과 배우자·자녀가 보유한 3000만 원 초과 주식을 임명일로부터 한 달이내 매각하거나 금융회사에 백지신탁해야 한다.
이 관계자는 박 후보자의 '신앙' 논란에 대해 "기본적으로 신앙은 검증 대상이 아니다. 창조과학은 과학영역에서 연구의 한 목적과 과제로서 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신앙으로서 믿을 수 있지만 과학이나 주된 영역에 끌어들인 증거가 없다"고 말했다.
'역사관 논란'과 관련해선 "공대 출신으로서 그 일에만 전념해온 분들이 건국절을 깊이있게 파악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에서 일을 하는 데 있어 진보와 보수의 견해를 가진다고 해서 그 역할을 하지 못하는 건 아니라고 본다. 우리 국무위원 내에서도 생각을 가진 분들의 다양성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청와대의 '적극적 비호'에도 불구하고 박 후보자가 오는 11일로 예정된 인사청문회 이전에 '자진사퇴'할지 또는 '지명철회'가 이뤄질지, 아니면 '버티기'에 들어갈지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한편 문재인 정부 들어 낙마한 고위직 인사는 이유정 전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비롯해 모두 5명이다. 김기정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은 부적절한 품행 구설에 휘말려 사퇴했고, 안경환 전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여성비하 저서 및 강제결혼 논란, 조대엽 전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는 음주운전 및 사외이사 불법 겸직 논란, 박기영 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은 '황우석 사태' 연루 논란으로 각각 사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