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국회=서민지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새 정부 출범 100일 만에 내홍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정당발전위원회 발족으로 불거진 추미애 대표 측과 친문(친문재인)계의 갈등은 심화하는 양상이다.
추 대표 측과 친문계가 대립하는 핵심 사안은 '내년 지방선거 공천권'이다. 친문계 의원 및 시도당 위원장들은 2015년 문재인 대통령(당시 당 대표)이 대표직까지 걸며 고군분투해서 만든 혁신안('선거일 1년 전까지 공천 규정, 절차 마무리' '시장과 지방의원에 대해 중앙당 개입 배제 및 시·도당 추천권 강화')을 추 대표가 바꾸려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추 대표는 '친문계'의 주장에 "소설 같은 허구와 왜곡"이라고 맞섰다. 또한, 21일 기자간담회에선 현 지방선거 공천 기준인 '김상곤 혁신안'은 "바이블이 아니다"면서 정발위에서 공천 규정을 손보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강 대 강으로 치닫는 상황에 '친문'이자 추 대표와 가까운 최재성 정당발전위원장이 양측간의 갈등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주목된다.
◆ "文이 만든 룰 왜 바꿔?" 친문의 집단 반발
지난 18일 정발위 구성을 논의하는 의총장에서 충돌한 추 대표와 친문 의원들은 주말에도 SNS에서 논쟁을 이어갔다. 추 대표가 19일 혁신안 변경 논란에 대해 "몸에 좋은 약이 입에는 쓰듯이 혁신과 개혁도 당장은 불편하지만 당을 건강하게 만들자는 것"이라고 해명하자, '친문계' 의원들은 각자 페이스북을 통해 반박에 나섰다.
대표적 친문계인 전해철 의원은 "당헌·당규에 반영시킨 혁신안조차 실천하지 않으면서 당원의 신뢰와 지지를 구하고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와 혁신을 이야기하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비판했고, 황희 의원은 "새로운 룰을 적용하더라도 다음 지방선거는 아니다. 이미 '1년 전 경선룰 발표'라는 당헌·당규를 어긴 상황에서 룰을 뒤집는다면 새롭게 만든 룰도 다음 지도부가 지키지 않을 수 있는 개연성을 남길 뿐"이라고 반발했다.
급기야 21일엔 시도당 위원장을 위주로 한 일부 민주당 의원들이 "연판장을 돌려서라도 추 대표의 공천룰 개정을 저지하겠다"며 "지방선거 문제는 정발위와 별도로 진행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당 내 17개 시도당 위원장은 경기도당위원장인 전해철 의원을 비롯해 대부분 '친문계'가 맡고 있는데, 이들은 추 대표의 정당 혁신 작업이 지방선거를 앞두고 시도당위원장의 공천 권한을 제한하려는 의도가 깔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표면적으론 정발위 때문에 빚어진 일시적 갈등으로 보이지만, 친문계의 집단 반발은 단순히 정발위 때문이 아니라 추 대표에게 쌓여온 불만이 이번 기회에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추 대표는 대선 때 선대위 종합상황본부장 인선을 놓고 임종석 비서실장과 충돌, 대선 후엔 당이 국무위원 공직자 인선 관련 추천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주장해 친문계와 갈등을 빚기도 했다.
◆ "왜곡하지 말라, 이미 최고위 통과" 추미애, 강행 의지
추 대표는 21일 기자들과 오찬 간담회에서 정발위 논란에 대해 "정발위는 이미 최고위원회를 통과한 것"이라면서 "의총은 대표가 의원들에게 좋은 의도로 설명하는 자리"라고 논란을 일축했다. 즉, 예정대로 정발위를 진행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재차 피력한 셈이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이 대표 시절 만든 김상곤 혁신안의 수정 필요성을 거론하며 '친문계'의 주장에 반박하기도 했다. 그는 "'김상곤 혁신안'은 최고위원회의 수정 의결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의결했다. 바이블이 아니다"면서 "'김상곤 혁신안'은 중앙당의 패권을 개선하려 만든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중앙당의 패권을 시도당에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지방선거 1년 전 공천규정을 확정 짓도록 한 혁신안을 지키지 못했다'는 친문계 반박에 대해선 "지난해 총선 때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혁신안의 취지와 달리 전략공천을 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한 뒤 "대선룰도 탄핵 때문에 2016년 12월 17일까지 정하지 못했다. 규정상 지난 6월까지 지방선거 룰을 만들어야 했지만, 의원들이나 당직자들이 국정기획자문위나 청와대로 빠져 논의할 여건이 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추 대표 측은 정발위에 대한 반발을 일부 시·도당 위원장의 기득권 지키기로 보고 있다. 추 대표 역시 지난 20일 페이스북에 "시·도당 공천권을 회수하겠다는 말은 한 적도 없고, 공천에서 청년과 여성 할당을 강화하기 위해 제도적 보완을 하려는 것뿐인데 이를 왜곡하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 "추미애 딴길? 블루투스 될 것" 최재성 중재자 자처
대표적인 '친문계'이면서도 추 대표와 가까운 최재성 위원장은 '중재자'를 자처하고 나섰다. 그는 지난 20일 페이스북에 "소위 친문 의원이 추 대표(를) 비판했다고 추 대표를 배척해서도 친문 의원을 배척해서도 안 된다. 이견이 있다면 해법을 내야 한다. 문 대통령도 잘 하고 계시고 국민이 지지하니 그릇 부딪히는 소리도 경계할 때"라고 말했다.
최 위원장은 "추미애 대표가 혁신하자면서 지방선거에 사심을 갖는다면 결별을 넘어 서서 맞서겠다"면서 "추 대표가 다른 길을 가면 추 대표는 트로이의 목마가 되고 저는 브루투스라도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친문계를 향해서는 "집권한다더니 배부른 짓 한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 가장 부끄러운 일이다. 소위 친문 누구라도 사심을 부린다면 그 또한 비켜서 있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최 위원장의 행보에 이목이 쏠리는 가운데 정치권 일각에선 최 위원장이 당내 '86그룹'(1980년대 학번·1960년대 생)이라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86그룹인 최 위원장이 결국 '친문계'의 손을 들어주지 않겠냐는 해석이다. 특히, 이번 사태를 계기로 최 위원장이 추 대표에게 자신과 견해차를 전달하며 당부의 말을 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 같은 분석에 힘이 실리고 있다.
대선 이후 당내에선 '친문계'와 '86그룹'이 손을 잡았으며,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들과 추 대표의 세 대결은 불가피하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돌았다. 86그룹의 선두주자로는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국 민정수석, 송영길·우상호·이인영·우원식 의원 등이 있는데, 대선 이후 이들을 중심으로 당이 돌아가자 추 대표가 김민석 민주연구원장과 최 위원장을 자신의 사람으로 들이면서 본격적인 권력 구도 재편에 나섰다는 이야기였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86그룹은 오는 2020년 21대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 후 정권 재창출을 하는 등 86그룹을 중심으로 한 그림을 그리고 있는 반면, 추 대표는 자기 정치를 시작했다"며 "결국 이번 논란은 양 측의 세 대결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최 위원장은 86그룹 핵심 중 핵심이다. 최 위원장이 추 대표의 뜻대로 손아귀 안에서 움직이진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각종 입법과 2016년도 결산안 처리 등 처리해야 할 정기국회 현안이 산적한 데 내홍이 격화되자, 당내에선 조속한 시일 내 갈등을 처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친문계'인 박범계 최고위원은 21일 비공개회의에서 추 대표에게 "이번 주 내로 봉합을 위한 논의를 하자"고 제안했다.
따라서, 오는 23일 최고위에서 정발위 활동 범위와 역할 등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본격화될 예정이다. 박완주 수석대변인은 이날 오후 정무직 당직자 간담회 후 브리핑에서 "정발위에 대해 의원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에 대해서 전략적 회의를 했다"며 "전략에 대해서 차츰차츰 행동으로, 실천으로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