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청와대=오경희 기자] "북한은 한·미연합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훈련을 빌미로 도발적인 행동을 해선 안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한·미연합 을지훈련 첫날인 21일 내놓은 '대북 메시지'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과 괌 포위사격 위협 속에서 시작한 이번 훈련은 한반도 위기 상황의 중대 분수령이 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됐다. 북한이 그동안 UFG 연습 전후로 도발을 일삼아왔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청와대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주재한 뒤 정례 국무회의를 겸한 첫 을지국무회의를 잇따라 열었다. '방어적 성격의 연례훈련'이라고 강조했지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할 것을 주문했다. 오는 31일까지 진행할 이번 UFG는 문 대통령 취임 후 처음으로 열리는 한미 합동훈련이다.
◆ 北, 도발 명분 사전제거…'대화의 끈' 유지
문 대통령은 첫 을지국무회의와 다음 날 예정된 정례 국무회의를 하루 앞당겨 직접 주재했다. 이는 최근 한반도 안보정세를 어느 때보다 엄중히 인식해서란 분석이다. 문 대통령은 을지국무회의에서 "북한은 핵미사일 고도화를 위한 행보를 멈추지 않고 있으며, 국제사회는 이를 제재하기 위해 제재와 압박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며 "이를 바라보는 우리 국민들의 마음은 한층 무거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번 훈련에 대해 '방어적 성격의 연례훈련'이란 점을 분명히 했다. 이는 북한으로 하여금 추가 도발 명분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이다. 문 대통령은 "이번 을지훈련은 우리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민관군의 방어태세를 점검하기 위한 것이다"며 "북한은 평화를 지키기 위한 우리의 노력을 왜곡해서는 안 될 것이며, 오히려 북한은 북한의 계속되는 도발 때문에 한미 합동 방어훈련을 하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강경 메시지 속에 '대화의 끈' 또한 놓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평화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의 문은 항상 열려있다"며 "북한은 추가적인 도발과 위협적 언행을 중단하고, 북한이 용기 있는 선택을 한다면 한반도를 둘러싼 군사적 대립이 완화되고 우리 스스로 한반도 평화를 지켜낼 수 있으며 국제사회와 협력해 안정과 번영의 미래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고 제시했다.
최근 '강대강' 대치 국면이던 미국과 북한 간 대화 모색 분위기가 감지되자, '한반도 운전대론'을 강조해온 문 대통령이 유화적인 메시지를 전한 것이란 분석이다. 북한의 도발로 국제사회에서 입지가 좁아졌던 과거의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뜻도 담겨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국무회의 직후 "문 대통령의 발언은 북한의 추가 도발을 경고하고 올바른 선택을 촉구하는 것이며, 최종 테이블에선 평화적인 방법으로 해야 한다는 기존의 기조와 같은 맥락이다"며 '베를린 구상'과 일치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북·미 간 대치 수위가 높아진 시점 이후 지난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한반도에 전쟁은 없다"고 못 박았다. 또 "한반도 내 군사행동은 대한민국만이 정할 수 있다"고 하면서 대화의 문 역시 열어뒀다. 이른바 '채찍과 당근' 기조다.
◆ 미국 수뇌부 이례적 집결…北 도발 가능성은?
미국 역시 '대북 제재와 압박'의 투트랙 전략을 펴고 있다. 우선 UFG 연습에 맞춰 미군 수뇌부가 이례적으로 대거 방한했다. 해리 해리스 미 태평양사령관(해군 대장)과 존 하이튼 미 전략사령관(공군 대장)은 19~20일 방한했고, 새뮤얼 그리브스 미 국방부 미사일방어국장(공군 중장)도 방한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한반도 유사시 작전 및 증원, 전략 무기 전개, 미사일 방어라는 3대 축을 관장할 지휘관들로, 수일간 한국에 머물며 UFG 연습을 참관할 예정이다. 특히 북한에 대한 강력한 경고 메시지 발신을 위해 22일 합동 기자회견을 열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한편에선 북·미 간 대화 기류가 감지된다. '한미연합 훈련 인원 축소'가 시그널이란 것이다. 이번 UFG 연습에는 국군 5만여명과 미국군 1만7500명(증원군 3000명 포함)이 참가한다. 미군 참가 인원은 지난해보다 7500명 줄었다.
20일(현지 시각) 미 <CNBC>에 따르면, 트로이 스탠가론 한미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훈련에 참여하는 병력 수를 줄이는 것은 핵심 훈련을 희생하지 않으면서 최근 고조된 한반도 긴장 상황을 단계적으로 줄여나가는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도 21일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훈련 규모 축소와 전략자산 미전개를 북미대화의 시그널로 삼아 북한도 비난만 하지말고 대화에 응해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미 연합훈련 진행으로 북한의 도발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는 게 군 안팎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북한의 국지도발이나 탄도미사일 발사 등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북한은 2015년 UFG 연습기간 경기도 연천 지역에 포탄 1발을 발사했고, 지난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1기를 기습적으로 시험 발사했다.
일단 청와대 관계자는 "북한의 도발 징후는 없다"고 전했다. 북한 노동신문은 20일 '자멸을 재촉하는 어리석은 행태'라는 제목의 논평에서 UFG 연습을 거론하며 "붙는 불에 기름을 끼얹는 격으로 정세를 더욱 악화시키게 될 것"이라고 비난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