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청와대=오경희 기자] 취임 100일을 맞은 문재인 대통령이 20일 '국민' 앞에 섰다. 석달 간 국민들로부터 제안받은 정책 추진 과정과 국정 운영 성과를 직접 설명하기 위해서다. 문 대통령은 "국민들께서 정책 제안을 해주셨는데, 어떻게 반영되고 있는지 보고드리는 게 도리다"라고 말했다. 이날 '대국민 보고대회'를 연 이유다.
문재인 정부의 '국민과의 대화'는 형식부터 이전 정부와 달랐다. 청와대 영빈관에서 국민 인수위원 280여명과 수석·장관들이 참석한 가운데 오후 8시부터 한 시간 동안 '토크쇼' 방식으로 진행했고, 생중계됐다. 남녀와 연령, 지위고하를 막론해 질의응답했고, 참석자들은 연단과 방청석에 한 데 뒤섞여 앉는 등 '소통의 장'을 열었다.
◆ 장하성의 '아재개그'…"대통령 주머니 채우느라 못 자"
'대국민 보고'는 시작부터 시선을 사로잡았다. 밴드 데이브레이크의 히트곡 '꽃길만 걷게 해줄게' 공연으로 막이 올랐다. 장내 무대와 좌석 배치도 콘서트 무대처럼 꾸몄다. '국정 보고'라는 딱딱한 이미지를 벗었다. 본격적인 행사에 앞서 배성재 아나운서와 고민정 청와대 부대변인은 수석·장관들을 대상으로 '미니 토크'를 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안경과 백발, 카리스마 미소 때문에 문 대통령 여동생이 아니냐는 반응이 있다'는 질문에 "영광이다. 늘 감사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고 있다"고 웃었다. 건강 관리 비법에 대해서는 "수영을 한다"고 말했다.
장하성 정책실장은 '아재 개그(아저씨의 썰렁한 개그)'란 별명에 대해 "국가의 어려운 문제를 갖고 회의를 자주하는데 다들 심각하게 회의를 하더라"면서 "조금 아재개그를 했는데 그게 잘 통했다. 대통령도 처음에는 '이 분 왜 이래'란 표정이었는데 요즘은 제 개그를 기다리시는 것 같다"고 농담을 건넸다. 그러면서 "대통령이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정말 부동산은 확실히 잡겠다. 주머니에 남아있는 부동산 정책이 많다'고 말씀했는데, 요즘도 매일 대통령 주머니를 채워드리느라 잠을 이루기 어렵다"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 초등학교 3학년의 '당찬 질문'…도종환 "박수 주세요"
이어 국민 인수위원들이 수석·장관들에게 부처 성격별로 질문을 던졌다. 나이와 성별을 고르게 안배했다. 개중 초등학교 3학년 황찬우 군이 눈길을 끌었다. 황 군은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저는 역사공부를 좋아하는데, 가끔 뉴스를 보면 건물을 지을 때 유물이 발견된다고 한다. 역사 유물이 발견된 곳은 건물 짓지 못하도록 해달라"고 말했다. 이에 방청석에 앉아 있던 도 장관은 의자에서 일어나 "좋은 질문을 해줘서 고맙다"며 장내 참석자들에게 "박수를 보내달라"고 칭찬했다.
황 군 외에도 인수위원들은 장애인 시설의 유니버셜 디자인 법제화 ▲ 자살 유가족 지원 방안 ▲라오스에서 30대 여성 관광객 실종사건 등 해외 안전망 구축 ▲ 문화재 관리 제도와 불공정한 음원 수익 구조 ▲ 불편한 본인인증 시스템 ▲ 신도시 주민들의 차별없는 편의시설 이용 등에 대해 질문했다.
각 질문들에 대해 김수현 사회수석은 "반드시 이 정부가 마치기 전까지 (장애인들이) 체감할만한 변화를 느끼실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고 약속했으며,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내년에 (보건복지부에) 자살 예방 전담부서를 설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국민 안전을 위해 해외안전지킴이센터를 준비하고 있다"고 답했으며, 도 장관은 "음원료 배분문제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또 하승찬 사회혁신수석은 "엑티브X를 없애달라는 요청에 공감한다"며 "보안산업과 국민편익을 위해 제거하겠다"고 말했으며,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은 "신도시와 혁신도시 등 지역별 협력 차원의 무게감을 더 실을 수 있도록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 '소통' 강조한 文 대통령, 김정숙 여사의 말에 '미소'
하이라이트는 '국민이 묻고 대통령이 답하다' 순서였다. 문 대통령은 국민제안 '베스트 TOP2'에 대해 직접 구상과 대응책을 설명했다. 바로 '일자리'와 '저출산' 대책이었다. 이는 국민인수위에 접수된 의견과 질문 중 가장 많은 것을 토대로 선정됐다.
문 대통령은 "좋은 일자리 늘리기는 문재인 정부의 가장 중요한 국정 목표이고 국민 세금을 가장 보람 있게 사용하는 것이다"고 강조했다. 이어 "아이를 기르는 것이 엄마의 부담으로만 돼 있는데 아빠도 육아휴직을 해야 한다"면서 "근원적으로는 노동시간을, 연장 노동을 포함해 주당 52시간 확립하고 연차 휴가를 모두 사용하도록 해서 일하는 부모, 아빠와 엄마가 아이를 키우는 여유를 갖도록 하는 것이 근본적 해법이다"고 말했다.
행사 말미에 김정숙 여사가 '깜짝' 등장하기도 했다. 고 부대변인은 문 대통령에게 "옆이 허전하지 않으시냐" 물었고, 메인 무대가 아닌 방청석 한쪽에 앉아있던 한복 차림의 김 여사가 앞으로 걸어나왔다. 그간의 소회를 묻자 "벌써 100일이라고 하는데, 저는 몇년 지난 것 같다. 애써주신 청와대 직원과 국민 여러분께 정말로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김 여사는 또 '지난달 21일 충북 청주 수해 복구 현장에서 손가락 투혼'에 대한 질문을 받자 "너무 처참하고 상처가 깊어서 봉사를 안 할 수가 없었다"며 "손이 1000개가 있었으면 그걸 다 쓰고 싶었다"라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옆에서 김 여사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문 대통령은 순간적으로 감탄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김 여사는 '부부이니 요즘 (문 대통령에게) 하는 잔소리가 무엇이냐'란 질문에 "100일이 끝나고 나면 국민 평가가 좋아서 느슨해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서요. 오늘 처음 취임해서 일을 시작하는 마음으로 초심을 잃지 말라는 말을 했다"며 "꼭 그렇게 하시라고 하겠다. 당신을 지키겠다. 나 자신도 지키고…."라고 답했다. 김 여사의 말을 듣는 내내 문 대통령은 '미소'를 지었다.
한편, 국민인수위원회는 지난 5월 출범한 인수위원회 격인 국정기획자문위원회의 국민참여기구로, 국민 모두가 인수위원이 돼 새 정부에 정책을 제안한다는 취지로 꾸려졌다. 출범 당일부터 국민이 직접 정책을 제안하는 프로그램인 '광화문 1번가' 홍보사이트를 운영하는 등 온·오프라인에서 정책 제안을 받아 왔다. 지난달 12일까지 50일 동안 모두 18만705건의 정책 제안이 올라왔다. 국정기획위는 이런 제안들을 국민인수위와 부처 등의 검토를 거쳐 99건으로 선별해 국정과제에 반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