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재곤의 세상토크] 북· 미 '말 폭탄'과 상하이의 '대동강 맥주'

북한이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하자 미국 중심으로 유엔안전보장이사회가 지난 6일 대북제재안을 채택했다. 이후 미국과 북한은 화염과 분노 괌 포위사격등 말 폭탄을 상대방에게 쏟아 부으면서 초 긴장 대치상태를 맞고 있다. / 더팩트DB

[더팩트ㅣ명재곤 기자] 중국 상하이에서 맥주 전문점을 하고 있는 지인에게서 지난 7일 SNS를 통해 하나의 질문을 받았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이슈로 중국 손님들이 줄어 가게 문을 닫는 걸 심각하게 고민하면서 의견을 주고받던 그가 이번에는 "대동강맥주를 팔아야 하나?"며 몇 장의 사진과 함께 의외의 물음표를 던졌다. ·

북한산 '대동강맥주'가 클로즈업돼 있는 사진을 보낸 그로서는 진지한 물음이었지만 필자는 처음엔 다소 의아했다. 맥주 전문점에서 대동강맥주를 파는 게, 그것도 중국인데 무슨 문제가 있을까 싶어 "왜 그러냐"고 되물었다. 그랬더니 바로 '북한 제재에 동참?'이라는 질문성 답변이 왔다. 그때서야 고개가 끄덕여졌다. 지인은 유엔안전보장이사회가 채택한 대북 제재결의안을 보면서 가게에서 대동강맥주를 판매해도 되는지, 그렇지 않은지 고민했던 것이다.

북한의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급 미사일 시험발사에 대응한 안보리차원의 대북제재의 골자는 북한의 주요 상품 수출 전면금지였다. 대동강맥주가 제재 목록에 포함됐는지 알 수 없는 지인은 "내가 대한민국 국민이니, 정부 정책이 어떤지..."라며 궁금해했다. 지인은 대동강맥주가 제재의 대상이라면 당장 진열장에서 그 맥주를 치워버릴 태세였다. "대북 제재가 시작되었으니 동참해야 하는지?"라는 메시지에서 그의 결심 일단을 읽었다. 북핵·미사일 문제는 이제 이렇듯 일상 생활의 '엄중한' 상수로 자리잡아가면서 다방면에서 행동양식을 은연중에 제어하고 구속하고 있다.

중국 상하이 한인 맥주 전문점에서 팔리고 있는 대동강맥주./ 더팩트DB

지난 6일 대북제재결의안 채택이후 미국과 북한간 '세기의 말 폭탄'이 오가면서 한반도 긴장국면이 세계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화염과 분노'의 초강경 발언에 북한이 '괌 포위사격'으로 한술 더 떠 응수하는 작태를 보면 '말 폭탄'은 바로 내일이라도 '주먹 폭탄'으로 돌변할 수 있다는 극도의 위기감을 품고있다.

"북한은 미국을 위협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껏 전 세계가 보지못한 '화염과 분노'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8일 (현지시간) 자신 소유의 골프장에서 초강경 대북 발언을 쏟아냈다. 북한이 핵 보유국 지위에 다가서려는 행동을 멈추지 않자 유례없는 고강도 경고 메시지를 던졌다. "'화염과 분노'에는 핵공격을 포함한 북한에 대한 선제타격 군사행동 가능성도 담겨있다"는 해석이 언론에 소개될 정도이다.

이를 되받아치는 북한의 '말 폭탄'은 더욱 경악스럽다. 북한은 10일 노동신문에 "골프장에 쳐박혀있던 미군 통수권자는 정세방향을 전혀 가늠하지 못한채 '화염과 분노'요, 뭐요하는 망령의사를 또 다시 늘어놓아 우리 화성포병들의 격양된 신경을 더욱 날카롭게 자극하고 있다"며 '화염과 분노' 경고를 트럼프 대통령의 '망령'으로 깍아내렸다. 그러면서 "조선인민군 전략군은 8월 중순까지 괌도 포위사격방안을 최종완성하여 공화국 핵무력의 총사령관 동지께 보고드리고 발사대기태세에서 명령을 기다릴 것이다"고 괌 타격 준비가 진행되고 있음을 주장했다.

미국과 북한의 강대강 '말 폭탄'만 놓고 보면 일각에서 제기되는 '8월말 9월초 한반도 위기설'을 그냥 귀흘려 들으며 무시하기에는 현 대치국면의 휘발성이 너무 예민하다. 북·미간 상호 위협이 말 그대로 '말 폭탄'으로 귀결된다면 다행이다. 그런데 오는 21일 시작되는 한·미간 연합훈련, 다음달 9일 북한 정권수립 기념일 등 한반도 군사적 긴장감을 자극할 잠복 요인들때문에 '8말9초 위기설'은 한동안 회자될 공산이 크다.

'괌 타격'이라는 북한의 벼랑 끝 전술이 어떻게 마무리될지는 예단하기 힘들다. '말 폭탄'으로 끝날지, 미국과의 물밑대화의 장을 만드는 실효성을 갖춘 엄포가 될지, 아니면 치유할 수없는 종말의 군사적 대결을 초래하는 불똥이 될지 누구도 모른다. 미국과 북한의 정책결정권자들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이길 바랄 뿐이다.

일반적으로 벼랑끝 전술은 상황을 어느 정도 통제불가능하게 흘러가도록 고의적으로 만들고 상대방이 그 같은 상황을 견딜수 없어 결국 백기를 들게 만드는 것이다. 만일 상대방이 자신의 의도와 다르게 움직일 경우 , 자신은 벼랑 끝까지 돌진하고, 벼랑 밑으로 떨어질 수도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상대방을 공포로 제압하려는 전술이다. 하지만 상대방의 힘이 절대적으로 우위라면 벼랑 끝 전술은 아무런 효과를 내지 못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9일 오전 청와대 본관 충무실에서 신임 군 수뇌부들로부터 진급 및 보직신고를 받은 뒤 환골탈대 수준의 국방개혁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청와대 제공

북한은 핵 및 대륙간탄도미사일 보유국 지위를 인정받으려 하고, 미국은 절대 인정할 수 없다는 원칙적 입장을 고수하는 상황에서 현 북·미간 초강경 대치국면을 해소할 방안을 찾기가 쉽지는 않다. 정전협정 체제를 수술하는 근원적인 처방을 내리는 게 간단치가 않다. 핵·미사일 이슈는 핵 보유국 지위를 둘러싼 북·미간 문제여서 우리 정부의 운신의 폭이 넓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는 한반도에서 다시는 전쟁이 일어지 않기 위해서는 '현 위기를 위기로 직시하고' 한·미협조를 바탕으로 보다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역할을 모색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미국에도 쓴 소리도 해야 한다. 즉흥적이고 돌발적인 '말 폭탄'이 돌이킬수 없는 물리적 충돌로 이어져서는 안된다. '말 폭탄'일지라도 경계하고 관리해야 한다. '말 폭탄'이 증권, 외환 등 금융시장을 흔들고, 중국 한인 가게의 대동강맥주 입·출고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전장에서 한번 뽑은 칼이 피를 묻히지 않고 칼집에 다시 들어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처음부터 칼을 뽑지 않게끔 북·미간, 남·북간의 대화채널 조성 등 정부의 주체적 노력이 현 시점에서는 적극 요구된다.

문재인 대통령의 오는 8·15 광복절 기념사에 한반도 긴장국면을 완화하고 평화 정착을 위한 어떤 내용과 제안이 담길지 주목된다.

sunmoon419@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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