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오경희 기자] 바야흐로 '7말 8초', 여름휴가 시즌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달 30일부터 약 일주일 간 휴식한다. 정치권에선 '대통령의 독서 리스트'를 주목했다. 대통령의 의중을 읽을 수 있어서다. 휴가철 판매량도 크게 늘어 출판계에선 '대통령 로또'라 불린다. 실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휴가 때 읽은 '파인만의 여섯가지 물리 이야기', '코끼리를 춤추게 하라'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선택한 '미래와의 대화', '비전2010 한국경제' 등은 당시 화제가 됐다.
문 대통령의 첫 휴가 짐 가방엔 어떤 책이 담겼을까. 공교롭게도 청와대는 의례적으로 공개해온 대통령의 도서 목록을 밝히지 않았다. 이는 과도한 관심을 피하기 위한 것이란 관측이다. 문 대통령은 <운명>, <대한민국이 묻는다> 등 여러 저서를 펴냈고, 평소 책을 즐겨 읽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쉬는 동안에도 독서 중인 모습을 상상해 본다.
'정치 1번지' 여의도 역시 휴지기다. 이 시기엔 통상 국회가 열리지 않는다. 여야 지도부를 비롯해 국회의원들도 7월 임시국회가 끝나자마자 올해도 어김없이 여름휴가를 떠났다. 다만, 어느 때보다 몸을 사리는 분위기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특별한 외부 일정 없이 정국 구상을,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경남 고향에 머물며 민심을 살피기로 했다. 최근 충북 청주 지역의 물난리에도 외유성(외국으로 여행함) 연수를 떠난 충북도의원, '효도 관광' 등의 이유로 추가경정예산안 처리에 불참한 여당 국회의원들에 대한 국민들의 공분을 의식해서다.
그러나, 옛말에 '제 버릇 개 못준다'고 했던가. 일부 의원들은 여전히 해외시찰과 연수를 명분으로 국제선 비행기에 몸을 싣거나 실을 예정이다. 물론 의원들의 해외출장 자체를 무조건 평가절하할 이유는 없다. 문제는 의원들의 휴가철 외유성 해외출장에 대한 비판이 해마다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출장비 내역을 공개하지 않으며, 활동결과보고서를 제출하지 않거나, 제출된 결과보고서도 출장 결과와 무관한 내용들로 채워져온 관행 때문이다. 휴가철, 국회를 비우는 의원들을 향한 시선이 고울리 없다.
외유성 연수로 지탄을 받자 김학철 충북 도의원은 국민을 '레밍(Lemming)'에 비유했다. 집단 설치류과인 들쥐(나그네쥐)로 매도해 화를 더 키웠다. 지도자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우매한 동물로 묘사했다. 하지만 정작 그는 '중요한 사실'은 간과했다. 사상 최대의 폭우 현장을 외면한 채 다녀온 해외 연수 비용은 어디서 나왔을까. 바로 자신이 비판한 레밍의 혈세다. 지금 외유를 떠난 의원들 또한 마찬가지다.
차제에 외유 제도를 손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표창원 민주당 의원은 지난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엄격한 출장비 사용 내역 공개로 필요한 출장은 살리고 외유는 자비로 가는 정상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그는 "오래 전부터 유독 한국 공무원들만 업무 협의 등 공무보다 관광과 사적 일정에 치중하는 작태에 대해 뒷말이 많았다"고 지적했다.
이 와중에도 몇몇 의원들은 삼삼오오 출장(여행)가방을 싼다. 역대 대통령들처럼 출장지(휴가지)에서 독서 삼매경은 어떨까. 국회 수장인 정세균 국회의장은 지난 3일 '내 인생의 책'으로 <소명으로서의 정치>를 꼽았다. 독일의 사상가 막스 베버의 저서로, 원래 '직업으로서의 정치'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하다. 베버는 이 책에서 '정치가의 자질'로 열정, 책임감, 균형적 판단을 꼽는다.
정 의장은 "정치는 어떤 대의에 대한 헌신 없이 개인적 영달을 위한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렇다고 순결한 신념만을 추구한다면 정치영역에서 발생하는 많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 결국 지도자의 자질은 신념과 책임 가운데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양자의 균형을 찾는 데 달려있다"고 추천 사유를 밝혔다. '의원님들, 앞으로 짐 가방엔 외유 대신 소명을 꼭 챙기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