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비하인드] '오락가락' 중소벤처기업부 명칭, 힘겨루기 결과?…막전막후

교섭단체 여야 4당 원내수석부대표(왼쪽부터 바른정당 정양석, 국민의당 이언주,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자유한국당 김선동)가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조직법 개정안 합의사항을 발표하고 있다. /국회=배정한 기자

[더팩트 | 국회=서민지 기자] '중소벤처기업부→창업중소기업부→중소창업기업부→중소벤처기업부.'

20일 국회가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면서 신설된 문재인 정부의 부처명이 결정된 과정이다. 그런데 국회에서 부처 명칭이 '중소벤처기업부'로 확정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바로 한글학회와 벤처업계의 힘겨루기 때문이다. 한글학회는 부처 명칭에 '벤처'라는 외국어가 들어가는 것은 처음이라며 강하게 반발한 반면, 벤처업계는 '벤처'의 중요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막판까지 양 측의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결과적으로 국회가 벤처업계의 '손'을 들어 준 셈이지만, 부처 명칭이 '중소벤처기업부'로 확정된 이날 오후까지 벤처업계 관계자들은 가슴을 졸였다는 후문이다.

부서 명칭을 두고 한글학회와 벤처업계가 대립한 배경은 뭘까.

중소벤처기업부는 중소·벤처기업과 소상공인 정책을 총괄하는 부처로,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에 따라 중소기업청을 승격해 만들어졌다. 부처명은 당시 사용된 중소벤처기업부로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반영됐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고 중소벤처기업부가 신설되는 것이 확실시되자, 한글 관련 단체들 사이에서 반발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중소기업을 키우고 일자리를 늘리고 우리 경제를 발전시키려는 새 정부의 뜻에 공감하지만 '벤처'라는 외국어를 넣은 행정부처 이름에는 반대한다"는 게 이들의 반대 이유였다.

한글학회를 비롯한 한글 관련 단체 70여 개가 모인 '한글문화단체모두모임'은 정부가 중소벤처기업부를 신설하는 조직개편안을 발표한 지난 5일 서울 종로구 한글회관 앞에 '중소벤처기업부'라니? 정부 조직에 외국어 사용을 반대한다'는 내용의 현수막을 붙였다.

지난 8일에는 여당을 비롯해 각당 원내대표와 국회 관련 상임위원회, 중소기업청 등에 "중소기업부, 중소기업진흥(지원)부 등과 같은 '우리말'에 새 정부의 뜻을 담아달라"고 명칭 정정을 요청하는 건의서를 보내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이 지난 4월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차기정부 중소기업 정책 관련 강연회에 참석해 강연을 하고 있다. /임영무 기자

정치권도 한글 단체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줬다. 지난 17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안행위) 간사는 '4+4 회동'에서 부처 명칭을 '창업중소기업부'로 바꾸기로 합의했다. 국어기본법의 공공기관이 일반 국민이 알기쉬운 용어와 문장, 어문규범에 맞춘 한글을 쓰라는 규정에 따르기로 한 것이다.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벤처'는 외국어, '벤처기업'은 외래어에 해당한다.

'벤처'라는 단어가 빠지자 이번엔 벤처업계가 들고 일어났다. 새 정부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 벤처기업의 중요성을 부각한 상징적인 부처 명칭이 반드시 관철돼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벤처기업협회·코스닥협회·한국벤처캐피탈협회·한국여성벤처협회 등 6개 벤처관련협회는 성명서를 내고, "정부가 혁신벤처창업 생태계를 조성해 국가경제성장 동력으로 삼겠다는 계획을 밝혔다"면서 "때문에 이를 담당할 부처는 '중소벤처기업부'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창업'이라는 단어는 창업·혁신·성장·성공·회수·재투자로 이어지는 벤처생태계의 일부분일 뿐"이라며 "신설 부처가 혁신 벤처생태계 조성을 위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려면 '벤처'라는 단어가 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벤처업계는 '벤처'라는 단어가 부처명에 포함되도록 하기 위해 국회로 출퇴근하며 안행위 소속 여야 의원과 보좌진, 정부 관계자 등을 상대로 설득작업을 벌이는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날 오전 여야 원내수석부대표의 합의 과정에선 벤처업계의 목소리는 반영되지 않았다. 오히려 신설 부처 명칭은 '중소창업기업부'로 변경됐다. 중소기업 정책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부처인 만큼, '중소'라는 단어를 앞에 둬 강조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여야 원내수석부대표가 정론관 발표를 마치고, 정부조직법 개정안 소관 부처인 안행위로 넘기자 급기야 안행위 전체회의에서 중소창업기업부라는 명칭을 반대하는 의견이 부딪혔다. 장제원 자유한국당 의원은 "'벤처'라는 용어는 법률안에도 사용되는 상용어"라면서 "부처의 상징성을 감안할 때 중소창업기업부보다는 중소벤처기업부가 더 적합하다"고 밝혔다. 백재현 더불어민주당 의원 역시 "오히려 중소창업기업부가 더 어색하지 않나"라면서 "벤처를 넣는 게 핵심을 넣는 것"고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차기정부 중소기업 정책 관련 강연회에 참석했다. /임영무 기자

때문에 안행위는 부처의 명칭을 다시 처음대로 '중소벤처기업부'로 바꾸게 됐다. 안행위 절차 후 상임위 마지막 단계인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도 명칭을 둘러싸고 공방이 오갔지만 결국 안행위 의결안대로 처리됐고, 이는 그대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중소벤처기업부'로 최종 확정됐다.

벤처업계의 환영은 물론 중기중앙회는 논평에서 "중소기업청이 중소벤처기업부로 승격된 것을 환영한다"면서 "중소벤처기업부는 중소기업 중심의 경제구조 개편으로 중소기업의 좋은 일자리 창출, 기울어진 운동장 바로 잡기와 포용적 성장을 추진하려는 문재인 대통령의 의지를 강력하게 실천하는 정부 조직이 될 것으로 중소기업계는 큰 기대를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글문화단체모두모임'은 갑자기 뒤바뀐 '중소벤처기업부' 명칭에 대해 심한 우려를 표했다. 차재경 한글문화단체모두모임 회장은 <더팩트>와 통화에서 "말도 안 되는 소리고 있을 수 없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차 회장은 2002년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하이 서울'이라는 서울시 브랜드를 만든 것, 2015년 박원순 서울시장이 새로운 서울시의 브랜드로 'I.SEOUL.U(나와 너의 서울)'를 선정한 것, 동사무소를 주민센터로 바꾼 것 등을 거론하며, "나라에서 앞장서서 외래어를 사용하고 있으니 답답할 따름이다. 이게 바로 우리 문자에 대한 자긍심이 없고, 개념이 없어 정신이 헤이해지는 것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한글문화단체모두모임' 소속 단체들은 빠른시일 내 모여 '중소벤처기업부' 명칭에 대해 향후 어떻게 대응할지 논의할 방침이다.

mj79@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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