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한 달을 넘어섰다. 1기 내각 인선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현재까지 보여준 '파격', '소통'에 국민들은 환호한다. 문 대통령은 대선과정에서 200개가 넘는 공약을 국민에게 약속했다. 공약의 핵심 키워드는 '개혁', '국민'에 맞춰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더팩트>는 ▲경제 ▲언론 ▲방송 ▲사법 ▲소비자 ▲여성 등 6대 분야를 선정, 관련 분야 시민단체, 학계, 직능단체 등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전문가들의 제언을 통해 시대적 과제를 짚어보는 기획 시리즈를 마련했다. 이 연재를 통해 문재인 정부의 개혁 정책에 대한 전망과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 <편집자주>
[더팩트ㅣ오경희 기자] #사례1. 30대 직장인 김주희 씨는 올해 결혼 2년 차로 최근 퇴사를 고민 중이다. 김 씨는 결혼 이후 임신까지 미루며 열심히 일했지만 미혼인 여성 후배와 승진 경쟁에서 밀렸다. 나이 때문에 더는 임신을 미룰 수 없어 휴직도 고민했지만, 같은 이유로 일을 쉬었던 선배들을 다시 보지 못했다.
#사례 2. 결혼 후 간호사 일을 그만 둔 30대 현혜주 씨는 재취업하기로 마음먹었지만, 녹록지 않다. 네 살 딸아이를 돌봐 줄 곳(사람)이 없어서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있을 동안 짬을 내서 일을 하고 싶지만, 현 씨의 사정에 맞는 직장을 찾지 못했다. 늘어가는 보육비와 생활비를 볼 때마다 한숨을 내쉰다.
한국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선진국에 비해 낮은 가장 큰 이유는 30대 여성의 '경력단절'이다. 이들은 결혼과 임신, 출산과 자녀 양육 등의 부담으로 '취업-휴직-퇴직-재취업'의 전철을 밟으며 'OTL(머리를 수그리고 무릎을 꿇은 사람의 모습, 좌절의 상황)'을 경험한다.
통계청이 지난 2월 발표한 2015년 '인구총주택조사'에 따르면 30대 여성의 절반 이상(30~34세 56.5%, 35~39세 62.9%)이 경력단절여성(경단녀)으로 나타났다. 임신·출산에 따른 경력 단절 비중이 각각 47.6%, 43.4%로 다른 사유보다 컸다(이하 자세한 사항은 통계청 홈페이지 참조).
그러나 '경력단절여성' 문제는 30대 여성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이는 곧 '노동 시장에 여전히 성 불평등이 존재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사회 문제라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여성들이 배우자나 가족에 의지하지 않고 경제적 독립이 가능하도록 일할 기회가 충분히 제공되는가?''노동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 주어지는가(동일가치 동일노동 임금)?'에 대한 물음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때문에 여성계와 시민사회단체 등은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공언한 문재인 정부에 거는 기대가 크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경력단절여성'의 재출발을 위한 다양한 직종 발굴 및 일자리 매칭 등 지원책을 포함해 성평등 임금공시제, 남녀동수 내각 실현 및 공공부문 여성 대표성 제고 등 '성평등 정책'을 공언했다.
◆ 여성경제활동참가율 10년째 제자리…취업여성 '절반 이상' 비정규직, 임금은 男 '절반 이하'
'53.0%.' 통계청이 지난달 발표한 4월 기준 여성경제활동참가율이다. 이는 1999년 6월 통계 작성을 시작한 이래 가장 높은 수치다. 여성경제활동참가율은 2005년 처음 50%대를 넘어섰으나 사실상 10년 넘게(50%대) 정체중이며, 여전히 남성경제활동 참가율 76.1%에 크게 못 미친다.
또한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 50% 정도라는 통계는 생애 과정에서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여성들이 50% 정도임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남성들은 통계적으로 취업자와 실업자의 지위를 번갈아가며 경제활동인구로 살아가지만, 여성들은 생애과정에서 경제활동인구와 비경제활동인구로의 지위 변동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남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30대부터 대체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며 완만한 '역U자형'을 그리는 반면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20대 후반 최고점을 보인 이후 30대 후반 최저점을 보이고 40대 들어서며 다소 증가하지만 이내 다시 감소하는 'M자 곡선'으로 나타난다. 여성인 경우 최저점에서 경력단절이 발생한 것이다.
무엇보다 여성경제활동참가율이 증가했지만, 일하는 여성의 55.2%(고용노동부 2015년 3월 기준, 남성 44.9%)가 비정규직이다. 남녀 임금 격차도 뚜렷했다. 여성 비정규직은 남성 정규직의 35.8%의 임금을 받고 있다(2016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비정규직 규모와 실태'). 남성 정규직 임금을 100만 원이라고 했을 때 여성 정규직 임금은 64 만원, 여성 비정규직 임금은 이보다 못한 35.8만 원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여성의 고용률이 낮고 성별임금격차 현상의 주요 원인으로 여성의 경력단절이 지목돼왔다. 장지연 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노동시장과 성불평등' 보고서에서 "여성이 근속 기간이 짧고 육아기에 일정 기간 미취업자 상태로 들어가는 경향이 있어, 직장이동이 임금을 낮추는 방식으로 작동한다"고 설명했다.
유리벽이나 유리천장과 같은 차별 또한 제3의 요인으로 꼽힌다. 지난해 일반직 지방공무원 공개채용 합격자 가운데 여성이 58.2%로 크게 늘었지만, 현재까지 가장 상위직인 여성 공무원은 2급으로 모두 4명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 지방공무원들에게 유리천장은 존재하는 것을 보여준다.
장 연구위원은 "노동시장에서 유리천장과 유리벽의 형태로 나타나는 차별이 있고, 이에 대한 대응으로 인적자본이 높은 여성들이 노동시장에 진출하기를 주저하는 경향이 있다"며 "또 가족 안에서 돌봄 책임이 여성에게 집중돼 노동시장에서 (남성과) 대등한 경쟁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 '경단녀' 사회적 손실 연 15조원…"맞돌봄 시대로"
경력단절로 인한 낮은 여성 고용은 고스란히 사회적 손실로 전이된다. 여성가족부의 '2016년 경력단절여성 등의 경제활동 실태조사'에 따르면, 이들 여성이 다시 일자리를 얻기까지 평균 8.4년이 걸렸다. 바로 이 기간 수백조 원의 사회적 손실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2014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여성 경력 단절의 사회적 비용 조사' 보고서를 통해 2000년 이후 여성의 경력 단절을 막지 못해 195조 원(연 15조 원)의 손실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국내에서 여성의 경력 단절과 관련한 구체적 비용이 추산되기는 처음이다. 앞서 2013년 LG경제연구원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경력단절로 인한 우리나라의 잠재소득 손실은 GDP 대비 4.9%로 추정된다. 미국의 경우 0.1%였다.
경력 단절 이후 여성이 재취업에 실패해 발생한 손실액이 120조 원으로 가장 컸다. 다시 취업하는 데 성공했더라도 재취업까지의 임금 손실액과 재취업 이후 감소한 임금 손실액을 합치면 64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난주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16일 <더팩트>와 통화에서 "허공에 날아간 돈이니까 우리 국가적으로 어디에도 남겨지지 않은 돈이라고 할 수 있다. 경력단절 여성들이 일터에서 일을 했다면 번 돈은 내수에 소비에 진작이 됐을 것이다"고 꼬집었다.
또 경력이 단절됐던 여성은 기존의 일자리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임금이 적은 대부분 단순노무나 판매직 등에서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력단절 전까지만 해도 많은 이들이 제조업(23.1%)에서 상용직 근로자(81.7%)로서 안정적으로 일했지만, 경력단절 이후에는 상용직(45.4%)은 줄고 임시직(24.5%)과 자영업(15.2%) 형태가 늘었다(여가부 '2016년 경력단절여성 등의 경제활동 실태조사' 결과).
전문가들은 보다 근본적으로 '경력단절'이라는 문제설정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여성의 경력단절을 결혼과 임신, 출산, 자녀양육 등에 한정해 모성보호 정책과 일·가정 양립 지원책으로 한정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2015년 펴낸 '서울시 여성가족재단 연구사업보고서'는 남녀와 정규직·비정규직 등 양극화된 노동시장 구조 속에서 고용단절과 고용불안 양상이 생애주기별로 어떻게 나타나고, 다양한 고용형태와 고용지위를 구분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김난주 부연구위원은 "경력단절여성으로의 진입 이전에 최근 청년실업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면서 20대 여성들은 경력 자체를 생성할 기회를 갖기 어려운 불안정한 일자리로 진입하고, 평균 8.4년을 쉰 여성들이 재취업하는 일자리는 돌봄 등 저임금의 비정규직 일자리이고, 취업한 여성들은 또 육아 때문에 경력단절여성이 되는 악순환 구조다"며 국가적 차원의 적극적인 개입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 위원은 또 기존 여성정책과 대책 등에 있어 여성의 책임으로 한정한 측면과 사회적 시각을 짚으며, "맞돌봄이 원칙이다. 국가적으로는 국공립 어린이집을 늘리는 등 맞벌이 가정의 육아 부담을 해소하고, '양질의 노동시간'에 대한 고민과 함께 다양한 재취업 직종 발굴로 여성의 경력 유지에 초점을 맞추는 동시에 근로시간 단축, 최저임금, 비정규직 고용규제 등 성평등에 영향을 미치는 일자리 정책 등을 국가적으로 모니터링하고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40년 간 여성 분야에서 활동해온 이명혜 한국YWCA 연합회 회장은 16일 <더팩트>와 인터뷰에서 "맞벌이시대는 왔지만 맞돌봄시대는 오지 않았다"며 "여성 혼자 뒤집어쓰는 '독박 출산'과 '독박 육아'를 기꺼이 받아들였던 슈퍼우먼의 시대가 아니다. 출산과 육아는 부모, 사회, 국가 모두의 책임이다"며 "문재인 정부의 개혁 의지에 거는 기대가 크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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