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광화문=서민지 기자] 촛불이 가득했던 광화문은 어느새 문재인 대통령과 국민의 '소통 공간'이 됐습니다. 26일 따스한 햇볕 아래, 평화로운 광화문 인근 공원에 시민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국민인수위원'이 되고자 광화문 1번가를 찾는 사람들입니다.
전날(25일) 오후 2시부터 서울 광화문 세종로공원에서 국정기획자문위원회의 국민참여기구인 국민인수위원회의 '광화문 1번가 열린광장'에서 정책 제안 접수를 시작했기 때문이지요.
필자도 이날 오후 광화문 1번가에 들러 '직접' 국민인수위원이 돼 봤습니다. 국민인수위원이 되려면 뭐 대단한 게 필요하냐고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고민의 무게는 각자 다르겠지만, 중고등학생부터 머리가 희끗희끗한 70대 노인까지 다양한 시민들이 평소 애로사항과 고민을 들고 '광화문 1번가'를 찾습니다.
일단, '광화문 1번가'는 어떻게 가냐고요.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8번 출구로 나와서 세종문화회관만 찾으면 금방입니다. 여기서부턴 '광화문 1번가'라며 공원까지 안내판이 줄이어 있습니다. 안내판을 보며 따라가면 됩니다. 공원에 들어서면, 이미 많은 시민이 파라솔이 펼쳐진 테이블 아래서 열심히 정책 제안 접수카드를 작성 중입니다. '광화문 1번가 국민인수위원회 접수카드'는 '환영센터' 우측 배부처에서 받을 수 있습니다.
접수카드는 A4용지 크기인데요. '회색 표시 부분'인 △제안자 △소속 △휴대전화 △이메일 △주소 △참석인원 등을 기재하고, 제안 내용을 작성합니다. 작성하면서 궁금한 점은 행정자치부 공무원들에게 자문을 구할 수도 있습니다. 정책제안 카드를 접수하면 접수증에 '면담자'를 지정해줍니다. 면담자는 대부분 행자부 소속으로, 각 부서에서 자원한 사무관들입니다.
접수증을 받은 뒤 통로를 지나 면담 부스로 이동합니다. 야외 테이블이 가득 설치돼 있으며, 전광판에는 'O번 국민인수원님 O제안 테이블로 오세요'라고 알려줍니다. 필자처럼 잘 몰라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면, 청년 자원봉사자들이 눈치를 채고 친히 데려다줍니다.
면담자에게 정책을 설명하기엔 부담스러우시다고요? 전혀 그럴 필요 없습니다. 필자도 처음에 비루한 정책을 설명하려니 부끄러웠습니다. 횡설수설하며 이야기를 했지요. 중구난방으로 일단 털어놓았는데 면담자께서 너무나 잘 들어주시는 겁니다. 마치 '고민 상담소' 같이 말이죠.
긴장의 풀고 주변을 둘러봤습니다. 이곳저곳에서 성토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자신의 '인생사'부터 '가정사', '장사 이야기' 등 사연의 종류도 다양합니다. '생활 밀착형' 이야기로 해당 정책 꼭 필요한 이유에 대해 모두 열심히 설명하는 듯합니다. 접수카드 뒤에 뒷받침할 수 있는 논문 수준의 자료를 준비해 온 이들이 있는 가하면, 판넬을 만들어와 보여주는 분들도 있습니다. 면담자들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동감은 물론, 향후 정책 반영 과정도 맞춤형으로 설명해줍니다.
때마침 면담을 마치고 나오는 현직 간호사인 서슬기(26·여) 씨와 만났습니다. 간호사 인권에 대한 정책을 제안한 서 씨 역시 초반엔 정책을 설명하는데 부담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그는 "말을 잘하는 편도, 많이 아는 것도 아니라서 초반에는 솔직히 무서웠다. 그러나 (면담자가) 편하게 해주셔서 이야기 잘했다"면서 "문 대통령이 당선된 지 얼마 안 돼서 보여주기식으로 한다 하더라도, 이런 부분들은 정말 잘하고 있는 것 같다. 앞으로도 지금처럼만 계속 잘하길 응원한다"고 밝혔습니다.
정부세종청사에서 자원해 면담자로 나선 지대현 사무관(50대)은 "해결하지 못했던 어려운 부분, 애로사항을 하소연하는 분들도 있고 건전한 정책을 제시해 주시는 분들도 있다. 분류해서 각 부처에서 해결할 문제는 각 부처에 보내고 검토할 민원사항은 지자체에서 바로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지 사무관은 시민들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것에 대해 "정말 의미 있는 일이다. 가슴 뭉클한 사연을 듣고, 느끼고, 공감하고. 과거에 국민과 소통하며 절절한 사연을 듣는 시간이 없었잖나. 어떤 정책이건 시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드리고, 신청을 받아서 문 대통령과 함께 살펴보고 정책적으로 관리한다는 건 큰 의미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광화문 1번가'에는 문 대통령에게 전하는 말을 포스트잇에 써서 붙이는 판넬과 국민이 만드는 문 대통령의 서재 코너도 마련돼 있습니다.
'새 정부에서 하고 싶은 말을 붙여주세요'라는 판넬은 말 그대로 문재인 정부에 하고 싶은 말을 포스트잇에 적어 붙이면 됩니다. 이곳에 붙여진 포스트잇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하라' 'MB 구속' '비정규직 직원 고용 안정 및 최저시급 인상으로 기초생활보장 부탁드려요' '포괄임금제 폐지' '공원을 많이 만들어주세요' '완전히 새로운 우리의 대한민국 꼭 만들어주세요' '성 소수자 차별 금지' 등 다양한 국민 목소리가 담겼습니다.
또, 서재엔 여러 권의 책이 꽂혀 있는데요. 문 대통령과 함께 읽고 싶은 문구에 밑줄을 긋고 그 이유를 적어 제출하면 문 대통령에게 전달해 준다고 합니다.
로스쿨 준비생인 장인화(28·여) 씨는 '해방의 비극 중국 혁명의 역사' '감성과 신뢰의 스피치 기법' 두 권의 책을 준비했습니다. 장 씨는 "오픈된 공간에 부스도 만드는 등 국민이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진 것 같다. 어느 정도 격식도 필요하겠지만, 소통하려 노력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말했습니다.
'광화문 1번가'는 7월 12일까지 온·오프라인에 열려 있습니다. 이후 8월 말까지 문 대통령이 살펴본 뒤 직접 국민에게 보고할 계획입니다. 또, 국민인수위 출범 100일이 되는 날 문 대통령과 인수위는 타운홀 미팅을 엽니다. 고민을 털어놓고, 대안을 제안하면 모두가 국민인수위원이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