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재곤의 세상토크] 문재인 정부는 '프로크루스테스 침대'를 치워라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가 국회 인사 청문회장에서 다소 긴장한 가운데 생각에 잠겨 있다. 사진은 지난 24일 청문회 모습./더팩트DB

[더팩트ㅣ명재곤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25일 청와대에서 자신과 가족의 식비를 대통령의 봉급으로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청와대 반려묘 '찡찡이'와 곧 입양할 유기견 '토리'의 사료 값도 사비로 부담하겠다고 한다. 청와대 특수 활동비를 투명하고 당당하게 사용하겠다는 상징적이며 선도적 조치다. '사이다 맛'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국민 참모론'도 역설했다. "대통령의 지시사항에 대해서도 이견을 말해야 할 의무가 참모들에게 있다"고 수석·보좌관들에게 주문했다. 대통령을 쳐다보고 일하는 게 아니라 국민을 바라보고 복무하라는 민주정부 3기의 당연한 지시다.

이러니 문재인 정부에 대한 국민 평가는 더 이상 좋을 수 없을 수준이다. "대통령 한 명 바뀌었는데 이렇게..."라는 호평과 기대감이 지지층 외부에서도 나온다. 일부 야권 인사들은 새 정부의 인사 정책 등을 두고 "무섭다"고 경계한다. 긍정적 차원의 평가다. "진보정권이 20년을 집권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보수진영에서 나온다.

대선 득표율의 두 배를 넘는 국정수행 지지도가 '젠틀 문'의 현 성적표이다. 국민 10사람 중 8명이 출범 갓 보름이 넘은 새 정부에 흔쾌히 박수를 친다. 허니문 효과가 없지는 않겠지만 '나라를 나라답게' 만들려는 문재인 정부의 소명의식이 국민적 환영을 받은 결과라고 봐도 무방하겠다. 문 대통령의 적폐청산을 위한 국정운영 원칙과 기준, 신념이 국민들을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시골의 모친께선 이번 대선에서 유난히 고민을 하셨다. 두 후보를 놓고 누구를 선택해야 할 지 살짝 물으셨다. 아마 지역적 특성 때문이라는 걸 짐작하면서 "어머님 마음 가시는 데로 찍으세요"라고 첫 대화는 마쳤다. 재차 물으시길래 조기대선이 왜 치러지는 지를 두고 일반적 얘기를 나눴다. 일반성에는 상식적 원칙이 담겨 있다.

지지계층에는 절대적 사랑을 발산하는 이들도 있지만 비판적 사랑을 보내는 이들도 적지 않을 게다. 정치는 현실의 선택이다. 정권교체 열망으로 가슴(소신투표)보다는 머리(전략투표)로 큰 공복을 선택한 고민어린 국민들이 지난 대선에 분명 있었을 게다.

세월호 진상규명, 사드 철수, 적폐청산... 정권 교체의 목소리는 높았고 이제 문재인 정부가 그 짐을 짊어졌다. 사진은 지난해 12월 서울 광화문 촛불집회 모습./더팩트DB

성급한 질문을 하나 던진다. 문재인 정부는 개혁의 꽃길을 계속 걸을 수 있다고 보는가. 오늘의 인기 고공행진이 임기 5년 동안 계속될 것이라고 보는가. 완장을 찼든지, 차지 않았든지 간에 지지자들 대답은 한결같을 것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이 상식화되는 개혁정부의 성공을 바란다고.

그렇다면 무엇보다도 현 시점에서 문재인 정부와 지지층이 스스로의 원칙과 기준을 재차 확인하고 가다듬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국무총리 인사 청문회를 지켜보면서 진영을 떠나 아마 많은 이들이 정부의 원칙에 대해 다시 생각했을 법 해서다.

총리 인사 청문회는 문재인 정부의 개혁 동력을 가늠할 수 있는 첫 시험대라 볼수 있다. 적폐 청산과 공정, 협치를 위한 대통령 1호 인사이기에 국회 통과는 절실하다.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의 정치역정과 능력, 품성 등을 감안할 때 무난히 절차를 밟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런데 청문회 안팎에서 변수가 발생했다.

이 후보자가 청문회에서 부인의 위장전입을 시인하자 문 대통령의 인사원칙이 생채기가 났다. 문 대통령이 후보 시절에 강조한 이른바 '5대 비리 고위공직자 배제원칙'중 하나인 위장전입건이 불거졌다. 청와대측은 "대통령이 당선되고 총리 지명을 빠른 시일 내에 해 이 후보자 본인도 문제확인을 미처 못했다"며 뒷 설명을 하고 있지만 야권은 '내로남불'을 앞세우면서 공세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원칙을 최대한 지키려고 노력하겠지만 예외적 경우가 발생할 때는 국민들께 먼저 말씀드리겠다"는 게 현재까지의 청와대 입장이다. 원칙과 기준의 문제라 청와대도 고민하고 있다. 어떤 해법을 찾아 야권은 물론 국민들을 이해시킬 지가 문재인 정부의 당면 과제다.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의 인사청문회가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가운데,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청문회장을 찾아 청문위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이새롬 기자

열성 지지자들의 이른바 '문자폭탄'논란도 원칙과 기준의 문제에서 보면 청와대측에 무작정 호재는 아니다.

야권 청문회 위원들에게 "다음 선거에 두고 보자" "밤길 조심하라" "당신 아들은 어떠냐" 등의 내용으로 수 백 통, 수 천 통씩 문자폭탄을 보내는 행위는 자신의 잣대만 세상의 잣대로 적용하려는 패권적 사고라는 비난을 초래할 수 있어서다. 이들은 " '문자폭탄'이 아니라 '문자항의'이다. 국민의 문자를 국민의 소리로 받아들이라"며 행위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청문회 심사대상은 후보이지 청문위원은 아니다. 의혹과 혐의의 팩트검증은 청문위원의 의무이다.

그리고 잘못한 것은 내 편, 네 편이 따로 없어야 한다. 자기의 기준만 맞다면서 다른 이의 생각을 부정하고 공격하는 것은 패권의 세속물일 뿐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우리는 '프로크루스테스 침대'의 교훈을 익히 들었다. 자신만이 아는 침대 길이를 조절하는 장치를 만들어 놓고 지나가는 행인을 붙잡아 침대에 누이고 키가 침대보다 크면 그만큼 잘라 죽이고, 키가 작으면 억지로 늘려서 죽였다. 일방적인 기준에 다른 사람을 억지로 맞추려는 아집과 편견을 비유할 때 자주 인용한다.

기준과 원칙이 자기 입맛대로 들쭉날쭉하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

문재인 개혁정부의 성공은 누구에게나 적용되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원칙과 기준이 정립될 때 가능성이 더 크다. 프로크루스테스는 결국 자신의 침대에서 키를 늘리고 줄이는 그 방식으로 테세우스에게 죽었다는 걸 잊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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