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프리즘] 안철수의 도보유세 '득'일까, '독'일까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는 4일 오후부터 걸어서 국민 속으로 도보유세를 시작했다. 하락하는 지지율 반등을 위한 안 후보의 승부수이다. 사진은 4일 오후 안 후보가 대구시 동대구역에서 도보 유세를 하는 모습. /대구=문병희 기자

[더팩트ㅣ익산·전주·대구=변동진 기자] 안철수는 여의도의 닳고 닳은 정치인일까, 아니면 진심만을 호소하는 순수한 사람일까.

필자는 지난 3~4일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의 전북·경북 유세를 일정을 소화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안 후보는 이틀간 전북 익산, 김제 새만금 간척지, 전주 한옥마을, 남원 춘향제, 안동 경북도청 및 하회마을, 구미, 대구 등을 도는 숨 막히는 일정을 소화했다. 이렇게 장시간을 후보를 따라다니다 보면 TV나 사진으로 볼 수 없는 다양한 모습을 보게 된다.

이날 1만 보 이상 걸으며 민심을 청취한 안 후보는 중간중간 물을 먹거나, 한 할머니가 건네준 요구르트를 벌컥벌컥 마셨다. 안 후보의 이런 모습때문일까. 현장에서 만난 대다수 시민은 "때묻지 않은 안 후보가 좋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 그는 시민이 건네준 아스크림 하나에 기뻐하고, 천진난만하게 "하하하"하고 웃었다. 또, 딸 설희 씨와 추억을 회상하며 아파트 상가에서 배맛이 나는 아이스크림도 먹었다. 안 후보는 아이스크림을 입에 대면서, "애(안설희)랑 같이 먹고 싶었는데"라며 '딸바보' 면모를 드러내기도 했다.

이런 안 후보의 모습에선 대한민국의 아버지, 그리고 순수한 사람이 느껴졌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가 뚜벅이 유세 중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다. /문병희 기자

그런데 안 후보가 냉정(?)한 '프로 정치인'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 계기가 있었다. 이는 4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게재한 글을 통해서다.

안 후보는 "문재인ㆍ홍준표 후보는 과거입니다"라며 "생각이 다른 국민을 적폐라 하고 궤멸시키겠다는 후보를 뽑으면 안 됩니다. 상대 후보를 북한의 인공기로 덮어씌우는 후보도 찍으면 절대 안 됩니다"고 일갈했다.

반면 "문재인 이기는 게 목표가 아니라 보수의 희망을 만드시는 게 목표라면 유승민 후보 찍어 주십시오. 유승민은 훌륭한 보수 후보입니다"라며 "제가 당선되면 유승민 후보와 꼭 함께 할 겁니다. 경제위기 함께 극복해 가자고 꼭 부탁하겠습니다"라고 최근 자신이 화두로 던진 '공동정부'를 언급한 것이다.

또 "진보의 목소리가 더 커지는 게 좋다는 분들은 심상정 후보 찍어주세요. 심상정은 진보의 자부심입니다. 제가 당선되면 심상정 후보에게도 개혁공동정부 참여 요청할 겁니다"고 덧붙였다.

언뜻 보면 안 후보가 입이 마르고 닳게 얘기하고 있는 '개혁공동정부'의 밑그림을 오픈한 것일 수도 있지만, 필자가 느끼기엔 다양한 계산이 깔린 글이었다.

현재 안 후보의 지지율은 20% 초반에 머물러 있다. 30% 후반에서 40% 초반을 달리고 있는 문 후보와 10%p가량 벌어져 있고, 밑에서는 홍 후보가 바짝 추격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을 고려하면 심 후보와 유 후보를 끌어안아 막판 뒤집기를 노리는 한 수로 해석된다.

심지어 '유 후보와 심 후보에게 투표하라'는 발언의 경우 '누굴 찍어도 어차피 대통령은 안철수'라고까지 느껴졌다. 결국, 보수와 진보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문 후보와 홍 후보의 표를 분산하기 위한 전략적 발언이기 때문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가 5일 오후 부산시 남포동 BIFF 거리에서 시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하던 중 갑자기 내린 소나기를 맞으며 이동을 하고 있다. /배정한 기자

안 후보는 이날 대구 유세에서도 대통령 당선 시 '연정 계획'을 밝혔다. 그는 "다음 정부는 개혁공동정부가 돼야 일자리 문제도 해결된다. 선거 과정에서 보니 유승민 바른정당 대선후보와 경제 문제에 대한 생각이 같았다. 당선되면 유 후보에게 부탁해서 경제를 맡아달라 말할 것이다. 그래야 나라가 발전한다. 옛날처럼 내가 권력 다 가질게 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뚜벅이 유세로 잘 알려진 '걸어서 국민속으로'를 보니, 정말 자신의 진심을 전하려는 '순수한 사람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선까지 불과 일주일도 남지 않은 시점에 걷는 유세라니…. 초심으로 돌아갔다는 평가도 있지만, 그 반대도 있다.

선거 막바지 상황을 고려할 때 수많은 시민이 응집한 곳을 한 번이라도 더 방문해야 한다. 오죽하면 당 내부에선 '메시지를 많이 전달해야 할 시기인데, 악수하다 끝나는 거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이다.

그러나 안 후보는 "저는 지금 굉장히 설렌다. 하하하"라며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그러면서 "시민들의 메시지를 전할 의무도 있다. 생생한 밑바닥 민심을 듣고, 기자들이나 유세차 올라 제 생각 밝힌다. 그게 제대로 민심을 담아 메시지를 전하는 방법이다"고 강조했다.

그의 대선 행보가 기존의 틀을 깨는 혁신인지, 아니면 수많은 복선이 깔린 술수인지는 진단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전자이길 바란다. 그래야 "때묻지 않은 안 후보가 좋다"고 입을 모으는 유권자들을 실망시키지 않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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