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마크맨 '25시'] "마, 수그리라" 경남 센 언니와 '귓속말' 토크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3일 경남 마산과 진주를 찾아 압도적인 지지로 정권교체에 힘을 실어달라고 호소했다. 진주시 촉석로 차 없는 거리에서 열린 문 후보의 집중유세 장면./진주=임영무 기자

'장미 대선'이 시작됐습니다. 5월 9일 국민은 대한민국의 새 대통령을 선출합니다. 이번 선거는 기간도 짧을 뿐만 아니라 후보도 많습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물론 정운찬 전 국무총리 등이 주요 대권주자입니다. 대선 레이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취재 기자들도 바빠집니다. 후보들과 함께 일정을 소화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후보들과 일정을 함께하는 기자를 '마크맨'이라고합니다. <더팩트> 기자들도 각 후보별 마크맨들이 낮밤없이 취재 중입니다. '마크맨 25시'는 취재 현장에서 보고 느꼈던 것들을 가감없이 풀어쓰는 코너입니다. 각 후보 일정을 취재하며 마크맨들은 무엇을 느끼고, 어떻게 취재를 했을까요? <편집자 주>

[더팩트 | 마산·진주=오경희 기자] 3일, 다시 김포국제공항이다. 전날 '마지막 TV토론'을 마친 문재인 대선후보의 첫 지방일정은 '경남'으로 잡혔다. 장거리 이동인 탓에 일정은 선(先)공지됐고, 비행기 티켓 구매로 한바탕 전쟁을 치렀다. 석가탄신일에 어린이날 등 황금연휴인 터라 항공편은 금세 매진됐다. 온갖 PC와 모바일을 동시 활용해 각 인터넷 사이트를 뒤져 겨우 예매에 성공했다. 한 석이 나서 결제를 하려면 누군가 선점해 채 갔고, 정말 '뚜껑 열릴 뻔'했다. 하지만 항공편 구매난(難)으로 상행(진주-서울)은 취재 버스로 움직이는 것으로 재공지됐다. 허탈했다. 뭐, 어쩌겠는가.

석가탄신일인 이날 오후 2시, 공항은 가족과 연인들의 설렘으로 가득했다. 대선을 치르느라 피곤에 찌든 필자도 어딘가로 떠난다는 것에 위안을 삼았다. 하필 올해 최고 기온(서울 오후 2시 기준 29.6도)을 기록한 무더위 속으로 들어가야 했지만 말이다. 문 후보의 유세지는 경남 마산과 진주. 부산행 비행기 안에는 공교롭게도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후보의 마크맨들도 함께였다. 홍 후보의 유세지는 'PK(부산·울산·경남)'였다.

최근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후보가 급부상하면서 문 후보 측은 홍 후보 견제에 나섰다. 이날 경남 유세에 앞서 오전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에서 열린 불기 2561년 부처님오신날 봉축 법요식에 참석한 문 후보(왼쪽)와 홍 후보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종로=임세준 기자

기내 풍경을 보고, 곧 대선의 미묘한 판세 변화를 감지할 수 있게 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 이후 대선은 문 후보의 독주에서 중도 보수층의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 지지로 '문-안' 양강구도로 재편됐다. 그리고 최근 안 후보에서 이탈한 보수층이 다시 홍 후보에게로 결집하며 '1강 2중 2약' 구도로 짜였다. 여기에 2일 바른정당 탈당파 의원들이 홍 후보를 지지하자 문 후보 측은 주 견제 타깃을 안 후보에서 홍 후보로 바꾸며 바짝 긴장한 분위기다. 다음 날(3일) 행선지를 홍 후보의 고향이자 도지사를 지낸 경남으로 선택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였다.

기내 풍경 때문에 '야마(내부 용어로 취재 과정에서 미리 짜 놓는 스토리, 즉 골자)'는 대강 잡혔다. 보수 성향이 강해 새누리당을 지지해온 경남 민심이 어느 쪽으로 '디비졌나(뒤집히다)'다. 문 후보는 거제, 홍 후보는 창녕 출신으로 두 사람 모두 경남이 '안방'이다.

오후 3시 20분, 착륙 후 취재 버스에 탑승했다. 30분 여를 달려 창원시 마산합포구 오동동 문화광장에 도착했고, 이미 많은 인파가 광장을 메웠다. 유세차량 옆 틈새로 마크맨들은 진입한 뒤 좌우로 앉는다. '투대문(투표해야 문재인이 대통령)' 열기는 경남에서도 유효했다. '투대문'과 사전투표(4~5일)를 독려하는 피켓을 든 열혈 지지자들이 문 후보를 애타게 기다렸다.

문 후보가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오동동 문화광장에 등장하자 지지자들이 그에게로 몰려들어 대열이 흐트러졌고, 바닥에 앉아 대기하던 취재진도 뒤섞였다./마산=오경희 기자

'웅성웅성.' 잠시 후 광장이 술렁인다. 문 후보가 도착했음을 직감했다. 멀리서 걸어오며 지지자들과 스킨십을 하는 게 문 후보의 유세 방식이다. 그리고 차량에 오르면 꽃다발을 받아 두 팔 벌려 인사하고, 허리를 숙여 지지자들의 손을 하나하나 잡는다. 이런 패턴을 지지자들 역시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문 후보가 등장하자 반원을 그리며 앉아있던 인파가 일어서서 '우르르' 차량 앞으로 몰려 나갔다. 워딩(발언)을 받아치기 위해 노트북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대기하던 취재진은 사방으로 포위되며 점점 난감한 상황으로 빠져들었다. '어쩌지…'. 버텨봤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발길에 차여 취재진들도 일어섰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무너졌던 대열은 환영 세리머니 이후 안정을 찾았다. 뒤쪽에서 한 여성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마~수그리라(고개 숙이고 앉아라)." 강렬한 음성에 필자도 주춤주춤 앉았다. 한정된 공간에 앉기는 해야겠고, 앞쪽으로 몰렸던 사람들은 쪼그려 앉기 자세를 감수해야 했다. "마산 디비진 거 맞습니까~~~아" 문 후보의 외침 속에 정신을 차려 보니 그 여성이 옆에 있다. 30대로 보이는 '센 언니'에게 말을 걸었다. '귓속말'로. 촉박한 다음 일정 이동 시간 탓에 '틈새 취재'로, 연설에 나선 문 후보의 마이크 음성과 지지자들의 함성을 이겨내기 위한 자구책이었다.

"왜, 문 후보를 지지하세요?"

"검찰개혁해야 한다. 우병우 잡아넣어야 한다."

"경남은 보수 성향이 강하지 않나요?"

"20대에서 50대까진 바뀌었다. 60대 이상은 대 놓고 홍(준표 후보)을 지지한다고 몬하니까. (투표) 하지 마라 한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랑 유(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는요?"

"아이고, 문-홍 얘기는 해도 안 얘기는 안 한다. 유는 짠하다."

문 후보 지지자들의 문 후보를 향한 취재(?) 열기와 쪼그려 앉은 자세로 등판에 사전투표 독려 스티커를 붙은 한 남성./오경희 기자

짧고 힘겨운(?) 대화를 하면서도 이 여성의 눈은 문 후보에게 고정돼 있다. 양팔을 움직이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바로 옆 40대 남성이 눈에 들어왔다. 쪼그려 앉기 자세로 "문재인"을 연호하는 이 남성은 등판에 사전투표 홍보 스티커를 붙이고 있었다. 조심스레 "선생님~"하고 귓속말을 하자 "뭐지?"하는 표정이던 남성도 기자임을 알아채고, 고개를 끄덕인다. "홍 후보 지사하면서 (무상급식 폐지해) 부모들한테 돈 걷어서 솔직히 경남 빚 갚고 있는 거다. 새누리당한테 맡겨놨더니 이 지경 아니냐"며 분노를 표출했다. 귓가는 어느새 울분과 아밀라아제로 흥건한 듯했다.

문 후보의 연설이 끝날 무렵 일정공지 카톡방엔 '마산-진주 이동상 바로 이동하겠습니다'라고 떴다. 인파를 뚫고 오후 6시, 진주는 취재진의 진입 자체가 불가했다. 좁은 길목 입구에 놓인 유세차량을 시민과 지지자들이 촘촘히 에워싸 틈을 파고들 수 없었다. 일부 취재진은 마이크로 전해지는 음성에 의지해 워딩을 받아적었고, 필자는 유세 연설은 포기하고 민심을 취재하기로 했다. 같은 지역의 유세일 경우 어차피 문 후보뿐만 아니라 각당 후보의 연설 내용은 '복붙(복사해서 붙여넣기)' 수준으로 거의 같다.

'경남이 정말 디비졌나?' 마산 유세 현장 참여 인원이 주최 측 추산 1만 명, 진주가 1만 5000명이었다. 민심의 변화는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젊은 층뿐만 아니라 60대 이상 어르신들도 다수 유세 현장을 찾았다. 유독 문 후보 유세 현장엔 부모와 함께온 어린이들이 눈에 띈다. 엄마 손을 잡고 온 한 여자 어린이는 직접 스케치북에 크레파스로 문 후보를 그린 그림을 들고 나왔다. "직접 그렸어?"라고 묻자 수줍게 미소를 지으며 "네~"라고 말했다. 대신 전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또 다른 아이는 고사리 손으로 '엄지 척'을 해 보인다. 중장년층과 노년층들도 "이번에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경남 진주 유세 현장에서 문 후보를 직접 그린 여자 어린아이가 수줍게 미소 짓고 있으며, 다른 아이는 엄지 척을 따라하고 있다. 문 후보의 차량을 에워싼 지지자들과 경찰./오경희 기자

하지만 '샤이 보수'도 분명 존재했다. 멀찌기 떨어져 있던 한 80대 어르신은 '대놓고 홍 후보를 지지한다'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문(문재인)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와 손잡았던 인물인 게 마음에 걸린다. 햇볕정책 이런 거 해가지고. 대북 정책이나 외교 안보는 폭이 넓게 가야 한다"고 말했다. 전국에서 고른 지지를 받는 문 후보는 경남에서도 선두를 달리고 있다. 그러나 선거는 '뚜껑을 열어봐야 한다'고 했기에 막판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다는 것을 문 후보도 알고 있었다.

"'어대문(어차피 대통령은 문재인)' 아십니까?(네~) 그런데 어대문 맞는 말입니까?(아니요.) 어대문하면 큰일납니다. 투대문(투표해야 대통령은 문재인)이죠? 하늘이 두 쪽나도 땅이 두 쪽나도 투표 맞습니까?(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닙니다. 앞으로 5일,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란 문 후보의 말처럼 공식 일정은 끝났지만, 상경하는 취재 버스 안에서 그리고 자정께 귀가 후에도 노트북 화면 불빛은 꺼질 줄 모른다.

ar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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