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철영 기자]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는 27일 오후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와 전격 회동했습니다. 급격하게 떨어진 지지율 회복을 위한 반전 카드로 김 전 대표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안 후보와 김 대표는 이날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났습니다. 두 사람은 배석자 없이 독대했고, 안 후보가 김 전 대표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안 후보는 김 전 대표에게 통합정부추진위원회 구상과 관련한 의견을 나눈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김 전 대표는 안 후보가 내민 손을 사실상 잡은 것으로 보입니다. 안 후보는 오늘(28일) 오전 집권 후 국정운영 방향인 통합정부와 관련해 발표할 계획입니다. 또, 이 자리에서 김 후보 영입을 공식 발표할 것이란 전망입니다.
사실 김 전 대표가 안 후보의 손을 잡을 것으로 이미 예견됐습니다. 김 전 대표의 측근인 최명길 의원이 국민의당에 입당했기 때문입니다. 최 의원은 국민의당에 입당하며 김 전 대표가 안 후보와 함께할 것을 시사했습니다.
최 의원은 기자회견에서 '최 의원 입당이 김 전 대표의 지지선언으로 볼 수 있느냐'는 질문에 "일부 그렇게 해석할 수 있다. 김 전 대표도 저의 입당이 안 후보 지지라고 해석될 것이라는 걸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김 전 대표가 국민의당에 입당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최 의원도 김 전 대표의 입당 가능성은 작게 보았습니다. 그는 "또다시 당적을 갖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한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김 전 대표가 안 후보의 손을 잡은 데는 '반문연대' 혹은 '통합정부'가 결정적 이유로 해석됩니다. 김 전 대표는 지난 12일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습니다. 대선 출마를 선언한 지 일주일만의 포기였습니다. 김 전 대표가 일주일 만에 대선 출마를 포기는 표면적으로 "국민의 마음을 얻기에는 힘이 부족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김 전 대표의 대선 출마 포기의 이면에는 본인이 구상했던 정운찬 전 국무총리, 홍석현 전 중앙일보 회장 등과의 연대가 생각처럼 안 됐기 때문입니다. 김 전 대표는 정 전 총리나 홍 전 회장 등을 포함한 통합정부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피력했습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국민적 호응은 없었고, 의견도 모으지 못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김 전 대표는 불출마 선언 당시 "통합정부 구성을 통해서만 지금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저의 생각은 역량 있는 후보가 앞장서 실현해 국민을 편안하게 해드릴 수 있기를 소망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김 전 대표는 "통합정부 구성 후보"로 안 후보를 선택한 것입니다.
안 후보와 김 전 대표는 지난 2016년 4·13 총선에서 후보단일화를 놓고 격돌한 바 있습니다. 당시 두 사람이 주고받았던 발언들만 놓고 보면 대선 앞에서 손을 잡았다는 것이 의아할 정도입니다. 김 전 대표는 총선을 앞두고 듣기 민망할 정도로 안 후보를 평가절하했습니다.
"자신에 대한 국민의 여론에 대해 환상이 끊임없이 계속되는 사람." "10년 전인 2011년부터 누차 만났는데, 정치적 경험이 너무 없어서 엉뚱한 생각을 하면 곤란할 것 같아 국회에 가라고 했다. 그랬더니 '국회의원은 아무 것도 하는 게 없는 사람인데 날더러 의원을 하라고 하느냐'고 답변했다. 그 후 이 사람과 이야기하지 않겠다고 생각해 안 만났다."
"2014년 하도 좀 보자고 해서 다시 만났는데 여전히 변화가 보이지 않았다." "탈당하기 일주일 전에 또 만나자고 했고,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물었다. 그래서 '일단 정당 내에 있으니 당신이 앞장서서 정당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해결하라'고 했다. 그런데 일주일 후 '도저히 이 당에서 있을 수 없다. 패권주의 문제가 심하고, 문재인 전 대표가 안 물러난다'고 하면서 나간다고 하더라. 사실 그런 사람(안 대표)을 데리고 통합이 이뤄질 수 있겠느냐."
안 후보도 당시 김 전 대표를 향해 거친 말로 응수했습니다. "김종인 위원장은 통합은 하겠지만 연대는 없다고 여러 차례 공언했다. 참 무례한 이야기다." "5공식 발상." 민주당의 김종인 영입에 대해선 "김종인 위원장의 영입은 원칙 없는 승리라도 하겠다는 것"이라고 비난했습니다.
그렇게 물고 물어뜯던 두 사람은 1년 후 대선 앞에서 다시 손을 잡았습니다. 안 후보가 지난해 총선 전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김 전 대표에게 손을 내밀었던 것과 같습니다. 김 전 대표는 총선에서 제1당을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 모습을 지켜본 안 후보가 이제 지지율이 떨어지자 문 후보가 그랬던 것처럼 김 전 대표에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안 후보의 김 전 대표 영입이 대선에 큰 영향을 미치진 못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수도권 중진의 한 야권 의원은 안 후보와 김 전 대표의 회동이 대선에 미칠 영향에 관해 "지금 상황은 문 후보의 지지율이 흔들릴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인다. 콘크리트 지지율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번 대선이 가지는 의미, 문 후보를 향한 공격이 거세지면 거세질수록 오히려 더 뭉치는 지지세 등을 볼 때 안 후보에게 김 전 대표 영입은 큰 효과를 보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대선을 불과 11일 앞두고 안 후보가 김 전 대표와 손을 잡으면서 다시 한번 주목을 받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김 전 대표가 어떤 역할을 할지도 관심이 모아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김 전 대표는 과거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경제민주화'를 만들었다면, 이번에는 통합정부를 위해 분주히 움직일 것 같습니다. 다만, 통합정부에 최근 논의되고 있는 자유한국당, 바른정당까지 김 전 대표의 구상에 포함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안 후보와 김 전 대표의 회동을 보면서 다시 한번 '정치에는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다'는 것을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