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 대선'이 시작됐습니다. 5월 9일 국민은 대한민국의 새 대통령을 선출합니다. 이번 선거는 기간도 짧을 뿐만 아니라 후보도 많습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물론 정운찬 전 국무총리 등이 주요 대권주자입니다. 대선 레이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취재 기자들도 바빠집니다. 후보들과 함께 일정을 소화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후보들과 일정을 함께하는 기자를 '마크맨'이라고합니다. <더팩트> 기자들도 각 후보별 마크맨들이 낮밤없이 취재 중입니다. '마크맨 25시'는 취재 현장에서 보고 느꼈던 것들을 가감없이 풀어쓰는 코너입니다. 각 후보 일정을 취재하며 마크맨들은 무엇을 느끼고, 어떻게 취재를 했을까요? <편집자 주>
[더팩트 | 전주·광주·대구=서민지 기자] 17일 공식 선거운동 첫날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는 이날 0시 인천항 해상관제센터(VTS)에서 첫발을 내디딘 후, 17~18일 서울→전주→광주→대전→대구 등 전국을 종횡하며 광폭 행보를 이어갔다. 0시부터 쭉 안 후보와 동행을 하다 보니 대선에 임하는 안 후보의 '변화에 대한 의지'를 확연히 느끼게 됐다.
▶에피소드1. '변화 의지' 강조하고픈 안철수의 '동문서답'
안 후보는 요즘 자신의 '변화'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한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차별화된 자신의 정체성을 강조하고자 하는 게 목적이다. 이런 부분을 먼저 알아봐 주고, 물어봐 주길 원하는지 안 후보는 어떤 질문을 받든 관계없이 자신의 "변화하고자 하는 의지"에 대해 답하는 경우가 빈번해졌다.
첫 번째로, 지난 경선 당시 목소리가 바뀌었을 때다. 대중의 관심도가 높아졌지만, 공식적인 자리에서 질문이 나온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러자 안 후보는 '셀프 대답'에 나섰다. 지난 4일 공식적으로 대선후보로 선출된 직후, 그는 '반문(반문재인)심리 유권자가 모이며 지지율이 상승한 것으로 보인다'는 지적에 "질문엔 없지만 제 목소리가 바뀌었다고 말씀들을 많이 하신다. 사실 자기 자신도 못 바꾸면 나라를 바꿀 수 없다"고 강조했다. 사실상 동문서답이지만 '변화' 의지를 보여주고 싶어 했다.
두 번째로, 공식선거운동이 시작되면서 안 후보는 '선거 벽보(포스터)'로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 '광고 천재' 이제석 광고연구소 대표의 자문으로 만들어진 이 포스터는 연일 포털사이트 검색어에 오르며 안 후보 홍보 역할을 톡톡히 했다. 안 후보는 17일 오전 광화문광장 유세에서 기자들이 이 점을 질문하자 기다렸다는 듯 파격적인 벽보를 선택한 취지와 '변화에 대한 각오'를 밝은 목소리로 답했다.
"사실 사회가 변하지 않는 이유는 두 가지이다. 세계적인 전문가도 실력 있는 전문가에게 일을 맡기지 않아서이고, 두 번째는 아무리 창의적인 생각이 나오더라도 조직을 이끄는 리더가 그것을 받아주지 않는 닫힌 마음이 있으면 새로운 시도들은 무산되기 마련이다. 저는 이번 벽보를 통해 제 국정운영의 모습을 보여드리려고 했다. 반드시 저는 달라진 대한민국 만들 자신 있다. 아마 1번부터 5번까지 벽보를 보시면, 나머지 벽보들은 누가 되나 대한민국은 변함없이 똑같을 거라는 상징 아니겠냐. 3번 뽑아주시면 반드시 대한민국, 창의적으로 혁신적으로 변화할 것이다."
17일 광주 양동시장 유세 후 기자들이 '호남에서 변화의 열망을 좀 느꼈는가'라고 물었다. 그는 질문엔 "네"라고 짧게 답한 뒤 "선거 벽보 이야기 한 번 더 드리겠다"면서 "선거 벽보를 보시면 누가 집권하면 우리나라가 바뀔 것인지 알 수 있다. 예전에 해왔던 그 방식대로 벽보 모습을 보시면 그것은 집권해도 우리나라는 변함이 없다는 상징이다. 저는 우리나라 바꿀 자신 있다. 벽보를 보면 대한민국 미래가 보인다"고 말했다. 질문과 관계없이 또 한 번 먼저 벽보 이야기를 꺼내며 '변화 의지'를 강조한 것이다.
▶에피소드2. 안철수, 마크맨 카톡방 등장 "나 전주가는 길"
안 후보가 대선후보가 된 후 두드러지게 '변화'된 점이 또 한가지 있다. '기자들과 스킨십'이다. 당 대표 시절만 해도 기자들과 식사는 손에 꼽을 정도였고, 그러다 보니 대화할 일도 별로 없었다. 자칭 '프레스 프랜들리'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가 말진 기자들과 2~3주에 한번씩 '식사정치'를 하는 것과 비교되면서, '불통의 아이콘화' 되기도 했다.
바야흐로 '장미대선'이 오자, 안 후보도 변했다. 본의와 다르게 해석되는 기사들에 때로 "왜곡한다"며 불만을 내뿜었던 그는, 어느새 동행하는 기자들과 관계를 돈독히 하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당 대선 후보를 가리기 위한 경선 때부터 행사 직전 기자들에게 먼저 다가와 악수를 청하는가 하면, "네 수고 많아요~"라고 종종 말을 걸기 시작했고, 대선 후보로 선출된 첫날엔 기자간담회를 했다.
급기야, 공식 선거운동 첫날 오전 9시 16분. 광화문 일정을 마치고 전북 전주로 내려가는 버스 안이었다. '지이잉'. 휴대전화가 연속으로 울렸다. 0시 일정을 취재하면서 뜬눈으로 밤을 새운지라 눈 좀 붙이려고 했는데, 휴대전화는 자꾸만 울렸다. '안철수 마크맨방'으로 불리는 카톡방(한 매체당 최대 3명씩 들어와 있다. 후보의 일정이나 캠프 논평 등을 공유하는 소통창구다)이 근원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이렇게 울려대나. 'WHAT?' 안 후보가 등장했다.
"이제 시작입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지금까지도 수고해주셨는데, 앞으로 남은 3주 체력관리 잘하세요~ 아자아자 파이팅!!!^^"
뜻밖의 등장에 마크맨들의 응원과 격려가 이어졌다. "후보님 진짜 맞으시죠?"라며 확인하는 기자들이 있는가 하면, "파이팅!" "20일 동안 건강관리 잘하세요" 등 환영의 이모티콘이 연신 올라왔다. 특히 화제가 됐던 '광고천재' 이제석의 '선거 포스터' 사진도 응원 메시지로 올라왔다. 음성메시지, 인증샷 요청도 있었다.
진동이 뜸하던 찰나였다. 오전 9시 43분. 또 휴대전화가 울렸다. 이번엔 안 후보가 답변으로 인증샷을 올렸다. 에메랄드색 셔츠를 입었던 오전과 달리 하늘색 셔츠를 입은 안 후보가 창밖 고속도로를 배경으로 '셀카'를 찍어 "전주 가는 길"이란 글과 함께 올렸다.
기자들은 "뒷자리에서도 안전띠를 하셨네요" "오우 안캠, 이런 분위기군요" "그 사이 셔츠를 갈아입으셨네요"라며 대화창에선 쉴 새 없이 물음표가 달렸다. 그 가운데, "5월 9일 승리 뒤에도 늘 국민을 대표해 먼저 만나는 기자들과 자주 소통해주세요"라는 말이 올라왔다. "물론, 그땐 이 방에 없겠지만"이란 말과 함께.
▶에피소드3. '1197억 소유' 안철수는 '검소의 아이콘'?
안 후보가 기자들의 질문에 어떤 답변을 할까 은근히 기다렸지만, 셀카를 올리고선 더는 답변이 없었다. 다음 일정인 전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에 도착한 안 후보는 하늘색 셔츠에서 다시 광화문 일정에서 입었던 에메랄드색 셔츠로 갈아입고 있었다.
때마침 안 후보의 일정에 동행한 김경록 선대위 대변인을 만나 물었다. "카톡 셀카에서 옷이 바뀌었던데요. 차 안에서 같이 있는데 갈아입어요?" (안 후보의 거의 모든 일정에 동행하는 김 대변인은 안 후보와 함께 기아자동차의 올 뉴 은색카니발 9인승(3300cc가솔린)을 타고 다닌다. 차량은 안 후보에게 이동 수단이자 회의실이자, 휴게실이다. 맨 뒷자리(3열)는 넥타이와 양복이 걸려 있다. 그 아래로는 책, 서류 등이 쌓여 있다. 조수석엔 주로 경호원이 탑승하고, 맨 뒷자리와 운전석(1열) 사이인 2열에 안 후보와 김 대변인이 나란히 착석한다.)
김 대변인에게 카니발 속 다소 '수수한(?)' 안 후보의 이야기를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차 안에서 편한 옷으로 갈아입어요. 하의도 편한 면바지를 입고 있어요. 근데, 러닝셔츠가 너무 낡았어요. 누렇고 다 늘어나고. 내가 찍어서 다 공개할 거라고, 구멍이라도 난 것 아니냐고 그랬어요. 그럼 김미경 교수님 곤란하게 하는 거라고 말하니까 '구멍? 안 났어요! 떨어질 때까지 입어도 괜찮아요. 편하면 됐죠, 뭐. 헤헤'라고 웃으셔요. 아이고~"
김 대변인의 농담 반 진담 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이날 입었던 에메랄드색 셔츠는 지난해 4·13 총선 노원구 출마선언 당시 입었던 옷이었다. 대선후보 재산 1위(1196억 9000만 원)를 기록한 그는 누런 러닝셔츠와 한해 이상 묵은 에메랄드 셔츠를 착용하는 '검소한 패션의 아이콘'이었던 거다. 안 후보는 18일 유세엔 국민의당에서 배포한 초록색 바람막이를, 강의 혹은 토론 땐 평소 즐겨 입는 감색 양복에 초록색 넥타이를 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