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 대선'이 시작됐습니다. 5월 9일 국민은 대한민국의 새 대통령을 선출합니다. 이번 선거는 기간도 짧을 뿐만 아니라 후보도 많습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물론 김종인 전 대표, 정운찬 전 국무총리 등이 주요 대권주자입니다. 대선 레이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취재 기자들도 바빠집니다. 후보들과 함께 일정을 소화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후보들과 일정을 함께하는 기자를 '마크맨'이라고합니다. <더팩트> 기자들도 각 후보별 마크맨들이 낮밤없이 취재 중입니다. '마크맨 25시'는 취재 현장에서 보고 느꼈던 것들을 가감없이 풀어쓰는 코너입니다. 각 후보 일정을 취재하며 마크맨들은 무엇을 느끼고, 어떻게 취재를 했을까요? <편집자 주>
[더팩트 | 서민지 기자] 5일 아침.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가 공식적으로 당 후보 일정을 소화하는 첫날이다. 안 후보의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잠자리 유혹을 떨쳐내고 뻐근한 몸을 일으켰다. 전날(4일) 마지막 경선 일정을 마치고 대전에서 새벽 무렵 서울 숙소에 도착한지라 몸이 물 먹은 솜처럼 무거웠다. 오전 8시 현충원 일정부터 오후 7시 30분 중진 의원들과 만찬 일정까지 빼곡히 찬 일정에 동료 기자들과 '카카오톡 대화'를 하며 한숨을 쉬었다.
"아, 죽음의 일정 완전 빡세."
지난해 4·13 총선 당시가 떠오르면서 어깨가 더 무겁다. 안 후보는 한번 작정하면, 전국을 돌아다니며 하루 최대 18개 일정을 소화할 만큼 빡빡한 스케줄을 잡기로 유명하다. 정신없이 쫓아다니다 보면 하루가 끝나기 일쑤다. 올해라고 그 성격이 어디 가겠는가. 본인도 이를 아는지 오전 11시 기자간담회에서는 기자들에게 웃으며 일일이 악수를 나눈 후 엄포를 놓았다.
"반갑습니다. 익숙하고 낯익은 얼굴도 참 많아서 마음이 굉장히 편합니다. 그동안 저 때문에 고생 많으셨을 것입니다. 회사에서 아마 구박도 많이 받으셨을 겁니다. 이제는 데스크 앞에서 목에 힘주실 때가 왔습니다. 저도 열심히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제가 조금 걱정되는 건 지난해 총선 때 보니까 저 따라다니는 많은 기자분들이 몸살이 나셨습니다. 건강 조심하십쇼. 체력관리 잘 하시길 바랍니다."
안 후보는 기자간담회에서 경선 때 들려줬던 이른바 '루이 안스트롱' 발성은 접어두고, 평소 조곤조곤 읊조리는 화법으로 돌아왔다. '회사에서 구박도 많이 받았다'는 대목에서 한 번, '건강 조심하라'는 예고의 말에 지난 1년이 떠오르면서 또 한번 '피식' 웃음이 나왔다.
필자는 지난해 창당 때부터 올해 대선까지 쭉 안 후보 '마크맨'이다. 총선에서 38석을 얻어 '마크맨'으로 열심히 활동하려는 시기에 국민의당은 '리베이트 의혹'으로 '기사 폭주'의 폭격을 맞았고, 이후 낮은 지지율로 주목받지 못하는 안 후보를 취재하느라 최근까지 힘들었던 게 사실이다.
우선, 대부분의 언론사는 '팔릴 기사를 쓰는', 즉, '독자가 읽어주는 뉴스'를 우선하기 때문에 그동안 안 후보의 일정은 '주요 일정'이 아니라는 이유로 주목받지 못했다. 더 중요한 외부 일정을 '땜빵'(지원)하러 가는 일이 많았다. 또, 안 후보가 공식 일정을 자제하는 경우가 많아 '발제'할 뉴스거리가 없을 때도 많았고, 발제한 것 마저도 데스크에 '킬' 당하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때문에 동병상련인 동료 기자들은 모여서 자주 푸념을 하기도 했다. 아침 회의 후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와 티타임이나 당직자들과 대화에서 "오늘 발제 킬 당했어요"라든지, 신문 기자들은 "1면 톱을 써본 지가 언제입니까" 등의 말도 나왔다. 그런데 안 후보의 지지율이 급상승하면서, 내외부에서 시선이 달라진 건 사실이다.
5일 오후 2시 일산 킨텍스 '2017 모터쇼' 일정에선 본격적으로 '대선 일정'이라는 게 실감났다. '4차 산업혁명'에 일가견이 있는 안 후보는 자율주행차를 시승하고, 킨텍스 관장의 설명을 듣는 등 '물 만난 고기'처럼 이곳저곳을 살폈다. 안 후보의 일거수일투족, 표정 하나하나까지 취재를 해야하는데, 취재진과 시민들이 몰려 따라가기 힘들 만큼 평소보다 열기가 뜨거웠다.
시민들은 사진과 동영상을 찍는 건 물론, "어? 안철수다!", "안철수 후보님 응원합니다! 꼭 대통령 되길 바랍니다"라고 외쳤다. '모터쇼' 참가 업체들은 너도나도 "여기 좀 와달라"며 안 후보 쟁탈전을 벌이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안 후보는 "네, 파이팅 하겠습니다. 파이팅!"하며 포즈를 취했다.
뭐지? 오랜만의 이 풍경은. 지난해 총선만큼 높아진 관심도에 마크맨들은 "와, 달라졌네. 예전엔 우리만 따라다니고, 약간 반응이 시큰둥했는데. 바뀌었어 분위기가"라고 말하기도 했다.
안 후보는 모터쇼 감상 후 '지지율 상승세를 실감했느냐'고 묻자, "예전부터 이런 기술현장, 젊음의 현장에 오면 항상 많은 사람들과 반갑게 만나고 그분들에게 여러가지 당부의 말 듣고 있다. 아까도 여기 들어오기 직전에 어린아이를 데리고 온 젊은 아버지를 만났다. 그 아버님 말씀도 '우리아이들이 살아갈 세상, 좋은 세상을 만들어달라. 바꿔달라'는 말씀이었다"고 했다. 자신감 넘치는 안 후보의 모습에서, 상승세는 상승세라는 점을 실감했다.
오후 3시. 정신없이 일정을 소화하고 나오는 길. 부슬부슬 내리던 빗줄기가 거세졌다. 국회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급하게 기사를 처리하고 데스크에 보고를 했다. 막상 앞으로 30일 동안 이렇게 바쁠 일정을 생각하니 정신이 아득했지만, 어느새 "숙명인가 보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건강식품'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창밖으로 들리는 빗소리와 함께 문득 안 후보가 기자간담회에서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오전에 현충원 일정에서 비가 왔잖아요. 문득 제가 대선 출마할 때 했던 말이 생각나더라고요. 3월의 바람과 4월의 비가 5월의 꽃을 불러온다고요. 그런데 대선 후보 첫날 비가오더라고요. 4월의 비를 맞으며, 5월의 꽃을 피울 수 있겠나 이런 희망을 가졌어요."
안 후보의 별칭 중 하나가 떠오른다. '안스트라다무스.' 맞는 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제 일정이 끝나나 했는데 또 남았다. 오후 7시 30분 안 후보는 중진들과 만찬이 있다. 아~. 다시 또 대기다. 안 후보와 당 중진들은 여의도 한 한식당에서 만찬을 했다. '마크맨'은 대기하면서 굶었다. 배가 고프다. 그렇게 1시간 30분을 넘긴 오후 9시께 드디어 만찬이 끝났다.
안에서 무슨 대화를 했을까. 이제는 '백블(백 브리핑)'이다. 예상은 했다. 안 후보가 '도와달라. 열심히 하겠다' 정도일 것으로 말이다. 역시나였다. 그래도 대기할 수밖에 없는 게 '마크맨의 숙명'이다. 안 후보의 6일 일정이 공지됐다. 아침 10시부터 거침없는 일정이다. 인기가 높아진 것은 좋고 톱 기삿거리도 좋은데, 힘든 것도 사실이다. '강철수' 맞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