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종로=신진환 기자] "차 벽 치워. XXX들아!"
박근혜 대통령이 파면당한 10일 오전 서울 중구 헌법재판소 인근에서 박 박 대통령의 탄핵을 반대하는 '태극기 집회'가 열렸다. 태극기와 '탄핵 기각' 피켓을 들고 박 대통령을 응원했다.
이날 오전 11시 정각. 일부 참여자들이 휴대전화를 꺼내 들고 헌재의 탄핵 심판을 시청했다.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운동본부'(탄기국)은 박 대통령 탄핵의 부당함을 주장하는 연설을 이어가면서 탄핵심판 중계가 이뤄지지 않아 휴대전화로 박 대통령의 파면을 본 것이다.
21분 뒤 헌재가 8인의 재판관 전원 일치로 박 대통령을 파면하자 곳곳에서 탄식과 울음소리가 들렸다. 헌재의 결정을 전해 들은 참여자들은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으며 주저앉기도 했다.
감정에 격분한 일부 참여자들은 "당장 계엄령을 선포하라" "헌재로 쳐들어가서 재판관을 모조리 다 죽여버리자"는 등 섬뜩한 얘기를 내뱉었고,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진격하자"라고 동조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분위기가 심각해지자 주최 측 관계자는 마이크를 잡고 "질서를 유지해달라"고 자제를 당부했다. 들끓었던 분위기가 잠시 수그러드는 듯했으나 군복을 입은 몇몇이 헌재로 가는 길목에 세워둔 폴리스라인(경찰통제선)을 발로 차며 "이거 열어!"라고 소리쳤다. 경찰이 확성기로 물러설 것을 명령했지만, 분위기는 더 험악해졌다.
결국,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한 참여자는 폴리스라인을 넘기 위해 한 남성의 도움을 받아 경찰 버스에 올랐고 월담을 시도했다. 방패와 보호구를 착용한 경찰을 급히 버스 위로 투입해 제지했다. 이 과정에서 한 남성이 취재진들에게 욕설과 함께 "사진 찍지 마"라며 목발을 휘저었다. 근처에 있던 중년 남녀들도 가세해 들고 있던 태극기봉으로 때리려고도 했다.
오후 12시께 경찰과 맞붙는 참여자가 급속히 늘었다. 이때부터 '무법천지'를 방불케 했다. 분노를 주체하지 못한 일부 남성들은 주변에 있던 돌을 경찰에게 던졌다. 이 때문에 언제 어디서 돌이 날아올지 몰라 이곳을 지나가던 시민은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문제는 차 벽들로 가로막혀 꼼짝하지 못했다. 한 남성은 "길을 다 막아버리면 시민들은 어쩌라는 거야.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는데, 언제 어디서 날아온 돌을 맞으면 경찰이 책임질 거냐"고 경찰을 향해 분통을 터트렸다. 여성 시민들은 몸을 잔뜩 웅크리고 지하철 출입구로 빠져나갔다.
취재진도 공격대상이었다. 인터뷰를 요청하면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이 날아오거나 때리려고 위협했다. 실제로 취재진이 다치는 불상사도 일어났다. 대만의 모 방송국 카메라기자는 정체 불명의 누군가로부터 돌로 뒤통수를 가격당했다. 그는 급히 경찰이 있는 쪽으로 자리를 옮겼고, 통역사가 경찰에게 상황을 설명하는 동안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두피가 찢어져 출혈이 상당했다.
격분한 참여자들을 말리는 '태극기' 시민도 있었다. 가방을 멘 한 중년남성은 깨진 보도블록이나 돌, 페트병 등을 치우며 "이러지들 마세요. 경찰들도 위에서 시켜서 하는 것이지 무슨 죄가 있느냐"고 설득했다. 또, 곁에서 돌을 던지는 노인을 막으며 "당신 아들이 돌을 맞고 있다면 좋겠냐"고 거칠게 항의하기도 했다.
집회가 열리는 곳과 가까운 안국역 4번 출구에는 뿌연 연기가 가득했다. 매캐한 연기가 코끝을 찔렀다. 시민들은 손과 옷 등으로 입을 가리고 빠른 걸음으로 발길을 옮겼다. 지하철 관계자는 "외부에서 무언가를 태워서 나온 연기가 역으로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며 "다른 시민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평화적인 집회를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