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올보르(덴마크)=이철영·배정한 기자] 덴마크 북부 올보르 시내 모처의 구금소 앞에서 지난 13일 대한민국 애국가가 울렸다. 머나먼 타국에서 들린 애국가는 취재진의 가슴도 뜨겁게 했다. 정유라(21) 씨가 구금된 건물 앞으로 북유럽 교민들 수십 명은 촛불을 켜고 조속한 국내 송환을 외쳤다.
지난 4일 덴마크 워홀 모임 SNS에 정 씨 구금소 앞 촛불집회 관련 내용이 올라온 이후 10일도 안돼 이뤄진 올보르 집회였다. 그동안 유럽 교민들은 다양한 도시의 촛불집회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61) 씨의 국정 농단을 규탄하며 철저한 진상조사를 촉구해왔다. 다른 유럽 국가들보다 상대적으로 교민 수가 적은 북유럽의 촛불집회는 참가 인원 수의 많고 적음을 떠나 그 자체로 커다란 울림을 줬다.
촛불집회를 기획한 스웨덴 남부 도시 룬드에 거주 중인 임지애(34) 씨와 연락했다. 임 씨는 취재진에게 촛불집회를 기획한 이유에 관해 "정 씨의 조속한 국내 송환"을 꼽았다. 그는 정 씨가 자진 귀국을 거부하며 덴마크에서 버티기에 나선 것에 분노했고, 교민으로서 부끄럽다고 했다.
13일 올보르의 구금소 앞. 스웨덴과 덴마크 여러 도시에 살던 교민들이 정 씨의 국내 송환 촉구를 위해 한 자리에 모였다. 약 20여 명의 참가자들은 조국 대한민국이 있는 방향으로 몸을 돌린 후 애국가를 제창했다. 촛불과 애국가. 어둠이 내린 거리에 촛불 민심이 타올랐다. 합창은 구금소 인근에 울려 퍼졌다.
다음 날 촛불집회에는 주말을 맞아 가족 단위의 교민들이 아이와 손을 잡고 참석했다. 멀리 영국에서도 날아온 청년도 있었다. 이들은 정 씨의 국내 송환을 촉구하며 목소리를 높였고, 그 마음은 국내 취재진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됐다.
덴마크 여행 중 촛불집회에 참석한 전연수(22) 씨는 "정유라의 현재 상황을 보면 꼭 부모를 잘 만났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정유라가 그동안 받을 거 다 받았지만, 지금은 구금소에 있다. 어린 나이에 아이를 낳았는데 이제는 아이 핑계를 대며 버티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 씨는 부정하게 대학을 갔다. 대학을 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겪어보지 못한 게 참 안타깝다"면서 "저는 한국에 가면 엄마랑 행복하게 살 것이다. 정유라도 엄마가 있는 한국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정유라는 엄마가 있는 구치소에서 함께 지냈으면 좋겠다. 지은 죄를 달게 받고 살았으면 한다"고 정 씨의 태도를 지적했다.
코펜하겐에서 워킹홀리데이 중인 임혜리(25) 씨는 정 씨를 향해 "이번 사건을 통해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를 느끼게 해줬다"면서 "왜, 부끄러움은 내 몫이니. 덴마크 친구들이 이번 사건을 물어올 때마다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사태가 언제 끝날지 모르겠지만, 정유라에게 하고 싶은 말은 '너는 이미 끝났다'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또 다른 교민은 "비록 스웨덴에 살지만, 대한민국에 정의가 있는 나라였으면 좋겠다"면서 "모든 국민이 법 앞에 평등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교민들은 '정유라, 국내 송환! 구속 수사!'를 외쳤다. 비록 광화문광장의 100만 촛불에 비할 규모는 아니다. 그런데도 취재진은 20여 명에 불과한 교민들의 촛불이 광화문광장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느꼈다. 머나먼 타국에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최순실게이트'를 대하는 교민들의 자세는 특정 정당이나 이념에 치우친 게 아니었다. 대한민국이 오롯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좀 더 공정하고 정의로운 나라가 됐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다.
교민들은 또, 덴마크 현지로 취재 온 취재진에게 머리를 숙여 인사했다. 교민들은 취재진을 향해 "이렇게 멀리까지 와서 고생하시는 취재진 여러분 감사드립니다"라고 고개를 숙였다. 취재진도 교민들에게 답례했다.
교민들은 정 씨가 들을 수 있도록 구치소를 돌며 국내 송환을 촉구했다. 정 씨는 분명히 구금소 안에서 교민들의 목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그는 과연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올보르 지방법원에서 뻔뻔하게 거짓말했던 정 씨다. 자신의 잘못도 부끄러움도 모르는 정 씨다. 그런데 정 씨와 관련한 소식에 북유럽 교민들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부끄럽다고 했다. 교민들 대부분의 마음이 그렇다.
정 씨가 국내 송환이 부당하다며 법적 분쟁을 이어간다면, 교민들은 또다시 촛불을 들 것이다. 정 씨가 국내로 송환되는 그 날까지.
취재진은 구금된 정 씨와 조력자들을 현장에서 2주 동안 취재했다. 아쉽게도 정 씨의 모습을 보진 못했다. 또, 조력자들의 모습은 실루엣으로 본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취재진은 현지에서 켜진 촛불에서 우리 국민의 위대함을 느꼈다. 또, 덴마크 법이 인권을 최우선으로 하지만, 정 씨가 버틸 수 있는 기간이 길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다. 버틴다고 될 문제가 아니다. 지금 정 씨의 행동은 '최후의 발악'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