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서민지 기자] "블랙리스트는 제 책임이 아니다. 관여하지도 않았고 몰랐으므로 장관직을 부끄럽지 않게 수행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직원이…직원이…직원이…"
9일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마지막 청문회에 참석한 조 장관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의혹'으로 위원들의 십자포화를 맞았다. 책임지고 장관에서 물러나라는 압박도 받았으며, 이용주 국민의당 의원에게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알고 있느냐"는 같은 질문을 5분 동안 16번 받기도 했다.
결국 조 장관은 이 자리에서 처음으로 "예술인의 지원을 배제한 명단이 있었던 것으로 판단이 된다"고 사실상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인정했다. 또 "문화예술 정책 주무 장관으로서 그간 논란이 됐던 블랙리스트 문제로 문화 예술인들은 물론 국민들께 고통과 실망을 야기한 점에 대해 사과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부처의 책임을 언급하면서도 자신이 블랙리스트 작성 전달에 관여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여전히 '모른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저는 블랙리스트를 본 적도 없고, 작성에도 관여하지 않았다"며 책임을 피했으며, 당당하게 "블랙리스트는 제 책임이 아니다"고 밝혔다. 특히 궁지에 몰릴 때마다 조 장관의 입에선 '직원이'라는 말이 자주 나왔다.
▲장제원 의원 = "특정 예술인에게 불이익을 준 명단은 있었다는 것은 언제부터 인정할 수 있었습니까."
▲조윤선 장관 = "음. 직원이, 직원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작성했는지의 여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장제원 의원= "그걸 묻는 게 아니고 자신이 언제쯤부터 이게 맞구나, 있구나라고 얘기를 할 수 있는 상황이 됐냐고요."
▲조윤선 장관 = "그런 문건을 그 직원이 확정적으로 만들어서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정적으로 제가 보고를 받은 것은 제 기억으로는 그 직원이 작성했었다는…"
▲장제원 의원 = "아니, 그러니까 언제냐고요."
▲조윤선 장관 = "보고는 올 초에 확정적으로 직원한테 받았고."
▲장제원 의원 = "올 초 언제입니까? 누구한테 언제 보고받았어요? 누구로부터 언제 보고받았냐고요."
▲조윤선 장관 = "저는 저희 담당국장으로부터 그 직원이 확정적으로 작성을 했다. 그리고 그것이 여러 가지 업무 협의의 결과, 축적된 결과였다는 말씀은 들었습니다."
장 의원의 질의 과정에서 조 장관은 문장마다 '직원이'라는 표현을 반복했다. 본인은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본 적도, 지시한 적도 없어 몰랐지만→직원이 확정적으로 만들어 가지고 있었고 나는 그걸 올해 초에야 알게 됐다'는 게 요지다.
정 의원의 '블랙리스트 파기 의혹'을 불러일으킨 하드디스크 교체 관련 질문에 대해서도, "그 이유를 모르겠다. 직원이 하드디스크를 교체했다가 다시 집어넣고 OS를 다시 깔았다고 했다. 저는 이것도 지난 교문위(회의)에서 처음 보고를 받았다"고 말했다.
김경진 국민의당 의원의 질의에서도 같은 이유로 '직원이'라는 단어가 여러 차례 나왔다. 김 의원은 장 의원처럼 '블랙리스트를 알게 된 시기'에 대해 따져 물었고, 조 장관은 또 '직원이'라는 말을 반복하면서 자신은 블랙리스트와 관련이 없다는 점만 강조했다. 동문서답에 화가난 김 의원은 "누가 만들었냐는 작성 책임을 묻는게 아니라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어떻게 파악하고 어느 시점에 직원들 상대로 물어봤냐는 거다. 말 돌리지 말고 시점을 물어보면 시점을 답하라"고 호통쳤다.
그러나 문체부 직원들은 특검에서 조 장관과 상반된 진술을 했다고 한다. 박영선 민주당 의원은 문체부 직원의 증언을 공개했다. 문체부 직원이 블랙리스트와 관련된 보고를 두 차례했고, 블랙리스트의 실체를 인정하자고 했지만 조 장관은 이를 거절했는 내용이다. 즉, 블랙리스트의 진실을 알고도 모른 채 했다는 것이다. 박 의원은 "문체부 직원들도 너무 기가 막히고 화가 나서 특검에 가서 다 진술을 했다고 한다"고 밝혔다. 물론 조 장관은 "사실이 아니다"고 전면 부인했다.
설사 조 장관이 그의 말대로 블랙리스트를 정무수석 당시 주도적으로 작성, 문체부 장관으로 임명돼 집행·파기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장관으로서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리더는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리기도 하지만 결과나 과정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자리다. '나는 몰랐고, 직원이 했다'는 식의 책임 회피성 발언은 장관직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조 장관의 발언들을 보면서, 문득 그가 의원시절 썼던 '문화가 답이다'라는 책이 떠올랐다. 2008년 한나라당 비례대표 의원을 하며 당시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담아 쓴 책이다. 정치·외교·경제·삶 등 전분야를 본인의 경험과 문화를 통해 풀어나간다.
특히 한 나라의 국격과 국력이 어떻게 문화를 통해 투영되는지 고찰한 '문화는 정치다'라는 섹션 가운데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취임식을 참관했던 이야기를 담았다. 조 장관은 문화부 장관으로서 위기 속에 책임지는 리더란 어떤 것인지 스스로 알고 있었다.
"오바마는 (취임식날) 변했다. 그는 많이 웃지 않았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대중을 선동할 수 있는 웅변의 달인인 그의 연설이 그날은 뜨겁지 않았다. 전대미문의 위기를 이겨내야 하는 막중한 책임감 때문인지 그의 그날 연설은 차갑고 냉정했다. 그는 이렇게만 말하고 떠났다. '우리는 내일부터 미국을 바꿀 것입니다.'"
조 장관은 취임식을 '오바마는 위기 극복이란 막중한 책임감에 뜨거운 연설을 버렸다'고 회상했다. 책내용은 조 장관이 생각하는 문화, 그리고 오늘날 문화계 블랙리스트와 그의 연관성에 대한 배신감, 복잡한 생각은 뒤로 하더라도 지금 우리 사회의 리더들과 조 장관에게 꼭 필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만일 조 장관이 블랙리스트 의혹이 불거져 나올 당시부터 '차갑고 냉정하게' 대처했다면? 마지막 청문회 증언대에서 수차례 '직원'을 언급하며 '나 혼자 살기 위한' 장황한 발언을 늘어 놓기보다 간결하게 '제가 책임지겠다'고 했으면 어땠을까. 여러모로 '문화가 답이다'라는 책을 다시 펼쳐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