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서민지 기자] "나는 아이 걱정만 한다. 경찰이 내 아이와 머물게 해주면 언제든지 한국에 가겠다."
그 내막을 알기는 힘들지만 겉으로 드러난 걸 보면 '자식 걱정'을 먼저 하는 건 국정농단 '비선실세' 최순실 씨나 그의 딸 정유라 씨나 '판박이'었습니다. 긴 도주생활 끝에 덴마크에서 붙잡혀 구금된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는 2일(현지시각) "자진귀국도 할 수 있다"며 '불구속 수사'를 해달라고 읍소했습니다. 자진귀국과 불구속 수사의 가운데에는 어린 아기가 있습니다.
정유라 씨는 국내에 들어와 체포될 경우 구치소 등 교정시설에서는 아이를 키울 수 없는 상황인 점을 이유로 들었습니다. 교정시설 내 양육은 생후 18개월까지만, 허용 가능한 데 정유라 씨의 아들은 19개월이라는 걸 영리하게 이용한 것 같습니다. 순수한 모정의 영역도 있겠지만 최순실 씨 모녀의 그동안 도피행각이나 최순실 씨의 행태를 볼 때 충분히 가능한 관측입니다. 일각에서는 정유라 씨가 결국은 체포될 것에 대비해 '아기'발언도 미리 준비한 멘트일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기까지 합니다.
정유라 씨는 이날 덴마크 북부 도시 올보르 지방법원에서 열린 심리 현장에서 아들 이야기가 나오자 눈물을 쏟고 울음을 참지 못하는 등 격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는 "사회기관이든, 보육원이든, 병원이든 아이와 함께 있게 해주면 내일이라도, 언제든 귀국하겠다. 내가 한국에 가서 체포되면 19개월 된 아들을 돌봐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 엄마와 아빠가 이혼했고, 나도 이혼했다. 엄마도 한국에서 체포됐다. 나는 세상에서 혼자다"고 말했습니다.
즉 정유라 씨는 이점을 감안해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아들을 거처에서 돌볼 수 있도록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를 보장해달라는 '조건'을 걸고, 자진 귀국 의사를 밝힌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정유라 씨는 자신을 둘러싼 '이화여대 입학 특혜' '삼성그룹 승마 지원 혜택' 등 각종 의혹에 대해서 부인하며, 시종일관 "엄마가 다 했다" "나는 모른다" 등으로 어머니인 최순실 씨에게 책임을 돌렸습니다.
"나는 모른다" "엄마가 다 했다"며 의혹을 전면 부인하면서도 아들을 향한 애정을 드러낸 정유라 씨의 '읍소'는 최순실 씨를 떠올리게 합니다.
최순실 씨는 지난달 26일 서울구치소 수감동에서 열린 국회 국정조사특위 비공개 청문회에서 위원들의 질문에 거듭해 짜증으로 일관했지만, 손혜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딸이 더 걱정되느냐, 대통령이 더 걱정되느냐"고 묻자, 얼굴을 손으로 감싸고 오열했다고 합니다. 박 대통령 안위보다는 딸인 정 씨 걱정이 우선이었다는 게 특위위원들 전언입니다. 최 씨의 눈물이 악어눈물인지는 차후 따져봐야겠지만 일단 눈물샘을 자극한 것은 딸 때문이라는 게 공통된 지적입니다.
특위 위원들에 따르면 윤소하 정의당 의원이 정유라 씨의 이화여대 부정 입학 의혹에 대해 질문하자, 최순실 씨는 그동안 떨궜던 고개를 똑바로 들고 "그게 왜 부정 입학이냐. 우리 딸은 정당하게 (대학에) 들어갔다"는 식으로 도리어 발끈했습니다. 정유라 씨는 "나는 모른다. 엄마가 다 시켜서 했다"고 했는데 말이죠.
또한 이경재 변호사는 3일 취재진과 만나 정유라 씨의 체포에 대한 최순실 씨의 심경에 대해 "딸을 둔 어미 심정이 어떤지 생각해보라. 굳이 말로 표현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반문했습니다.
이경재 변호사는 "단지 정유라 씨가 입국하면 제일 걱정이 되는 게 어디 있을 곳이 없다는 것이 현실적인 고민"이라면서 "변호사를 통해 불구속 수사가 되도록 조율하고 있다는 것은 전혀 아니다. 마치 (특검과) 거래를 하는 것같이 악의적으로 보도되고 있다"고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습니다.
일단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정유라 씨의 불구속 보장 요구에 관해 "정 씨의 주장은 말도 안 되는 얘기로 (범죄 혐의자와) 협상이 어디 있느냐"고 일축하면서, 중대 사건 수사에서 특정인을 위한 특혜나 편의를 제공할 수 없다는 '원칙론'을 고수했습니다.
그러면서 특검팀은 범죄인 인도 청구 과정에 길게는 수년이 걸쳐 진행돼 정유라 씨가 장기간 구금상태로 있어야 하는 만큼, 아이를 생각해 자진 귀국 가능성이 큰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이규철 특검보는 3일 오후 브리핑에서 "(정유라 씨의 구속 여부는)송환 후 체포영장을 집행해서 범죄 혐의를 조사한 다음에 결정될 것"이라면서 "아기를 데리고 있는 상태라 본인 입장에서도 (덴마크에서) 상황(구금)이 오래 지속될 경우 힘들 것이다. 이 같은 점 등을 고려하면 결국 범죄인인도청구에 계속 대응하기보다는 자진 귀국을 택하지 않겠나"라고 언급했습니다.
정유라 씨가 아이를 생각해 '자진 귀국'을 하게 되면, 특검 수사는 급물살을 타게 될 전망입니다. 입을 꾹 닫아버린 최순실 씨의 변화를 불러올 수 있는 건 결국 그가 애지중지하는 정유라 씨뿐이라는 관측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검찰과 특검 수사에서 비협조적 태도로 일관해오던 최순실 씨가 정유라 씨가 특검에 소환돼 강도높은 수사를 받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혐의 시인 등 진술 태도에 변화가 있을지 모른다는 이야기입니다.
두 모녀의 눈물 겨운 모성애는 결국 그들의 '아킬레스건'으로 돌아온 셈입니다. 두 사람은 지금처럼 혐의를 부인하느냐, 모성애를 지키느냐를 두고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과연 정유라 씨의 '귀국'으로 최순실 씨의 입은 열릴까요. 어린 아기를 염두에 둔 정 씨는 또한 진실을 밝힐까요. 두 모녀의 지극한(?) '자식 사랑'이 왜곡된 모성애는 아닐지, 무엇이 '진정한 모성애'일지 두 모녀는 깊은 고민에 빠져 있을 것 같습니다.
자식을 위해 진실을 말하는 어머니, 자식을 위한다는 가면을 쓰고 진실을 호도하는 어머니. 최씨 모녀는 어떤 선택을 할지 '촛불 민심'은 지켜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