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명재곤 기자] 눈빛이 모든 걸 말해 주는 것일까요. 법정에서 표독스럽게 쏘아보는 눈빛을 보면 지금 최순실(60)씨가 어떤 심리상태에서 '촛불 민심'에 맞서고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세상이 무슨 말을 하고 어떤 증거를 제시하든지 간에 나는 죄가 없다'라는 극렬한 자기 항변의 섬뜩한 시선을 그는 주저 없이 드러냈습니다.
'죽을 죄를 지었다'라며 흐느끼며 반성의 기미를 보였던 독일 귀국 후 검찰 소환 때의 모습은 어느 한 곳 찾아볼 수 없고 '너희들이 나를 어쩔 건데. 내가 최순실이야'라는 태도로 비선실세 존재감을 오히려 과시하는 듯 했습니다.
최 씨 측은 국정농단 혐의를 전면 부인 했습니다. 무얼 믿고 고개를 뻣뻣이 들고 눈을 치켜뜨는지 그 뻔뻔함에 어쩔 때는 소름이 돋기조차 한다는 이야기를 주변에서 종종 합니다.
"독일에서 왔을 때는 어떤 벌이든 달게 받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제 정확한 걸 밝혀야 할 것 같다"며 최 씨는 지난 19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국정농단사건 공판준비기일에서 살기어린 '레이저' 눈빛을 쏴댔습니다.
그 장면을 본 이들은 최 씨의 후안무치한 작태를 지적하기에 표현의 부족함을 느낀다고 할 정도입니다. 입에 담기 힘든 거친 육두문자를 내지른 다음에야 가슴 한편이 조금이라도 위안을 받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국정농단 사건 주범격인 최 씨가 공판준비기일에 법정에 나서겠다고 했을 때 사실 의아했습니다. 공판준비기일은 검찰과 변호인이 쟁점사항을 짚어보면서 공판이 효율적으로 진행되도록 하는 준비절차입니다.
피고인인 최 씨가 출석하지 않아도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데 나온다는 그 자체가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겁니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수석과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은 나오지 않았는데 말이죠.
그런데 최 씨는 자신에게 쏠린 세상의 온갖 날 선 시선에도 아랑곳없이 수의차림으로 버젓이 등장했고 아니나 다를까 레이저 눈빛으로 안하무인격 본색을 드러냈습니다.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에는 공황장애 등을 이유로 출석을 완강히 거부했던 그가 형사재판에는 나왔습니다, 자신의 운명과 직결되는 재판은 외면할 수 없었나 봅니다. 동아일보에 따르면 최 씨가 며칠 간 고민 끝에 ‘내 재판의 큰 그림을 보겠다’며 출석을 결심했다고 합니다. 변호인의 조언을 받아들였다는 것인데, 검사와 피고인 변호인간 재판 쟁점 공방을 보면서 나름 자기 방어논리를 그려보겠다는 심산이었을 것 같다는 해석입니다.
여기서 누구는 이렇게도 추측합니다. '자기 사람들'에게 모종의 메시지를 전달하기위해 나왔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최 씨 측은 이날 미르·K스포츠 재단 774억 원 강제모금 등 박근혜 대통령과 안 전 수석이 개입한 혐의의 전제가 되는 '공모'를 한 일 이 없다고 잡아뗐습니다.
또한 국정 간여 의혹 증거물이 담겨있는 태블릿PC 감정신청을 하는 등 어찌 보면 검찰 기소 자체를 깡그리 무시했습니다. 박 대통령이 헌법 위반 5건· 법률위반 8건의 탄핵사유를 모두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최 씨도 자신의 모든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최 씨는 정말 공판준비기일에 무엇을 얻기 위해 나왔을까요. 혹시 구치소 밖 자기 세력들에게,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누군가에게 몇 마디 말과 행동을 통해 일종의 '작전 지시'를 내리기 위해 나온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귀국 직전 한 매체와의 인터뷰가 그런 의혹을 낳는 것처럼 말입니다.
'태블릿 PC를 훔친 것으로 몰아가라'등의 내용이 담긴 최 씨의 몇몇 녹취록을 감안할 때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농간세력으로 여겨지기에 이런 기우가 결코 기우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마저 듭니다. 국조 청문회 위증 교사 및 공모 의혹까지 불거진 마당에 최 씨 측의 움직임은 일반의 상상을 넘어 선지 오래입니다.
핵심 증거인 태블릿PC를 '장물'로 덧칠하려는 의도는 뻔합니다. 태블릿PC가 증거로 채택되지 않으면 최순실을 비롯한 박 대통령 등의 국정농단은 상당부분 혐의를 벗어날 수 있습니다.
언젠가는 곪아 터질 사달이었지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JTBC가 입수한 태블릿PC에서 촉발됐습니다. 청문회에서 이완영 새누리당 특위위원을 둘러싼 위증 교사 및 공모 논란이 이는 것은 이런 연유에서 입니다.
위증교사 의혹의 중심에 있는 정동춘 K스포츠재단 이사장의 청문회 전후 행태도 많은 의구심을 품게 합니다. 청문회 출석 요구에 응하기 사흘 전인 4일에 이완영 의원을 만나고 다시 9일에 이 의원과 역시 새누리당 특위위원 이만희 최교일 의원 3명을 함께 만난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정 이사장은 직원들에게 국조대응 방안 문건을 만들어 나눠주기도 합니다.
가관인 것은 "제3지대가 지금 반기문 유엔 총장을 옹립해 새로운 당을 만드는데 이사장으로서 할 수 있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그가 말했다는 것입니다. 의욕과잉 실언인지, 아니면 속내를 은연 중에 드러낸 발언인지는 모르겠으나 최순실의 K스포츠 재단 이사장이 '반기문 총장'을 운운하는 걸 어떻게 풀이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최순실 일당이 설마 차기 정권 창출을 획책하고 있다는 말은 아니겠지요.
민주당 특위위원인 손혜원 의원은 이런 최 씨측 움직임을 두고 "누군가 친박 국회의원들과 증인들을 조종하면서 국정농단 주범들을 적극 감싸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국정 농단세력을 지금도 옹호하고 비호하는 '설계자' '기획자'가 있을 것이라는 세간의 합리적 의심은 이렇게 새록새록 쌓입니다. 최 씨의 재판 출석도 기획대응의 일환일 수 있다는 겁니다.
22일 열린 국조특위 5차 청문회에 최순실은 "평소의 지병으로 심신이 '회폐'해 있음을 양해해 달라"며 출석을 거부했습니다. 최 씨는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 청문회를 의미풀이가 불가한 말로 여전히 농락하고 있습니다.
국정을 '농단'하고, 국회를 '농락'하고, 국민에게 '농간'을 부리는 최 씨 일당은 아직도 '사설 대통령'과 '사설 청와대' 미몽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리고 남자 레이저 눈빛 우병우 전 민정수석은 이런 최순실 일당을 모른다고 강하게 부인하고 있습니다. 눈은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창이라고 하는데, 진실규명에 레이저보다 더 강렬한 눈빛이 필요한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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