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ㅣ 반포1동=이철영·서민지 기자] 어딜 그렇게 다녔는지 참 궁금합니다. 강원도 강릉에도 갔었고, 부산에도 갔었습니다. 심지어 제주도까지 가려고 했습니다. 어딜 그렇게 다니셨나요? 그런데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우병우(49) 전 민정수석이란 당신을 만나는 순간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당신이 모습을 감춘 건 지난달 27일 국회 '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 특별위원회가 증인출석 요구서를 강남 자택으로 송달한 그날부터였습니다. 그렇게 홀연히 집을 떠난 당신을 찾기 위해 <더팩트> 취재진도 19일 오후 모습을 보기까지 22일이 걸렸습니다. 물론 당신도 종적을 감춘 지 22일 만에 카메라 앞에 모습을 드러냈고 말입니다.
출석요구서도 받지 못할 만큼 뭐가 그리 급했습니까. 설마 법률 전문가라는 점을 이용해 출석통보서를 받지 않으면 출석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이용한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그래도 민정수석으로 국민의 세금을 받았는데 그렇게 무책임한 처신을 했다고 생각하고 싶진 않습니다. 설마 아니겠죠? 검찰 앞에서도 그렇게 당당했는데 설마 청문회에 나가는 것이 겁이 났을 리 없다고 생각하겠습니다. 국민의 비난을 받으면서도 어딘가로 가야 할 이유가 있었겠죠.
지난 7일에도 취재진은 당신을 혹시 만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청문회에 불출석해서 김성태 국조특위 위원장이 동행명령장을 발부했기 때문입니다. 국회 경위들은 당신의 장모인 김장자 삼남개발 회장의 논현동 자택으로 동행명령장을 들고 찾아갔지만 그는 또 없었습니다. 그래서 누리꾼들이 나섰죠. 당신의 자동차를 추적하고 나선 것입니다. 당신도 보도를 통해 잘 알고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국가 사정기관인 검찰의 인사를 사실상 좌지우지한다는 청와대 민정수석까지 지낸 당신의 현상수배 전단까지 등장했고, 현상금만 2000만 원 가까이 걸렸습니다. 이후 곳곳에서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강릉도 가고 부산도 갔습니다. 그런데 없더라고요.
국민을 상대로 숨바꼭질하고 있다는 비난이 쏟아져서였을까요. 그래서 심정에 변화라도 느꼈던 것일까요. 지난 13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5차 청문회에 출석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강릉, 부산, 서울 곳곳으로 당신을 찾으러 다닌 취재진으로서는 기운 빠지는 소식이었습니다. 혹시 이런 기분 아시나요? 허탈함이라고. 그런데 지금 당신도 이 허탈감을 느끼지 않을까 싶습니다. 22일이나 아무도 모르게 다녔는데 취재진에게 모습이 딱 걸렸으니 말입니다. 검사 출신인데 말이죠.
지금에서야 말하지만, 취재진도 당신을 찾기 위해 정말 마음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안갯속으로 사라진 행방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 티끌만 한 정보라도 얻기 위해 온갖 고생을 다 했습니다. 그런데 검사 시절 수사에 탁월했다는 소문처럼 어쩜 그렇게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사라지나요. 그 실력에 놀랐습니다.
한동안 허탈감으로 행방 찾기에 손을 놓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렇게 나타나면 어떡합니까. '코너링'이 탁월해 운전병으로 보직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이 있는 아들과 함께 말입니다. 그렇게 찾아다녔는데 결국, 취재진이 처음으로 갔었던 그곳에서 다시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반갑기도 하고 취재 기간 느꼈던 짜증도 밀려왔습니다. 당신도 이런 기분을 알 것으로 생각합니다.
물론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워낙 경비가 삼엄한 탓에 혹시나 들켜 우 전 수석을 눈 앞에서 놓칠까 걱정이 앞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첩보영화도 한 편 찍었습니다.
"경비가 삼엄하다"는 선배의 말을 들었기에, 건물에 들어서는 순간 내내 긴장했습니다. 곳곳에 설치된 CC(폐쇄회로)TV를 의식하며, 목에 걸고 있던 '국회 출입기자증'도 가방에 넣었습니다. 최대한 자연스러운 발걸음으로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답니다. 동시에 선배에게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네, 아니요로만 대답해. 5층에서 엘리베이터가 내려갔어. 우 전 수석이 너랑 같이 엘리베이터를 탈 수도 있거든? 같이 있니?"
"아니요."
슬쩍 옆을 돌아봤습니다. 일단 당신은 아니었고, 검은 모자에 검은 점퍼를 입은 키 큰 젊은이가 타고 있었습니다. 당시는 몰랐지만, 당신의 아들이었습니다. 얼마나 긴장했으면 당신의 아들이라는 것도 뒤늦게 알았을까요. 그땐 그랬습니다.
사실 이에 앞서 인턴 딱지를 갓 뗀 <더팩트> 사진기자는 엘리베이터에서 당신을 딱 마주치고 숨이 멎을 듯한 충격을 받기도 했습니다. 카메라 장비를 놔두고 무심코 지하 2층 주차창에서 3층 주차장으로 내려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지하 3층에서 대기하고 있던 당신과 정면으로 얼굴이 마주쳤기 때문이죠. 그 놀라운 레이저 눈빛에 정면으로 노출됐으니 움찔 한 것이죠. 놀라기는 했지만 그래서 당신의 사무실 내 존재를 확실히 확인할 수 있었고, 10시간의 뻗치기도 기쁜 마음으로 감내할 수 있었습니다.
또, 10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당신이 왜, 이곳 서울 강남 한복판에 있는지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지하 3층 주차장에서 당신을 취재하기 위해 대기하는 동안 경비원을 무려 13번 마주쳤습니다. 저녁 시간을 제외하고, 30분 단위로 경비원은 '철저한 임무 수행'을 감행했고, 그래서 '숨고, 또 숨어'야했습니다.
경비원의 '삼엄한 경비'는 특히 당신의 '제네시스' 차량이 있는 지하 3층에서 돋보였습니다. 당신의 아들이 다시 올라가자마자 경비원은 바로 내려와 제네시스 차량 주변을 점검했습니다. 급기야 일일이 주차된 차량을 확인하는 것은 물론, 혹시 의심 가는 차량은 문을 두드리거나 내부를 살펴봤습니다.
주기적으로 내려와 서 있는 차량을 감시했고, 수상해 보이면 곧바로 집요하게 문을 두드리며 "나가달라"고 했습니다. 당신이 왔다는 것을 알았으니 당연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경비원의 직업정신 때문에 2시간 이상 차문 한 번 못 열고 숨죽여야 했습니다. 나중엔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 "1층 골프용품 판매장을 둘러보러 왔다" "2층 필라테스 강습을 받으려 한다" "친구가 장판을 보러왔다" 등의 말을 둘러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늦은 밤 당신의 모습을 마침내 카메라로 볼 수 있었습니다. 블라인드가 내려진 창 너머에서 마치 청문회를 대비한 연습을 하는 모습으로 보였습니다. 민정수석으로 누구보다 법률적으로 잘 아는 우 전 수석이 청문회 예행연습하는 모습을 보니 예전같지 않구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12월 늦은 밤 차가운 낮 공기와 밤공기를 한껏 마셨지만, 당신을 보았다는 것에 충분한 위로가 됐습니다. 부산 해운대의 마린시티와 눈 덮인 강릉의 아파트에서도 담지 못한 당신의 모습은 이날 '첩보영화'를 찍은 덕분에 20일 오전 10시 28분 '[단독]우병우, 잠적 22일 만에 서울 심야회의 포착...'코너링' 아들과 대책 숙의' 란 타이틀로 기사화됐습니다. 그동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갖고 있던 국내 대부분의 매체가 더팩트 기사를 인용보도했습니다.
이제 청문회까지 하루 남았습니다. 지난번 검찰 출석 당시처럼 기자들 무섭게 쳐다보지 마시고요. 준비했던 예상 답변도 잘하시길 바랍니다. 아, 그리고 청문회에선 위원들이 공손하게 손 모으거나 그렇지는 않습니다.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생방송으로 국민이 지켜보고 있으니 겸손한 자세로 사실대로 증언하길 바랍니다. 참, 한가지 더 확인한 사실이 있는데요. 당신 아들의 운전 실력은 정말 좋았습니다. 정말 코너링이 좋더군요. 웬만한 차량 추적에는 전문가를 자처하는 우리 취재진도 당신 아들이 운전하는 차를 따라가다가 몇 번 놓치기도 했으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