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취재기] 한밤 중 '변복'한 이정현 대표, 무엇을 감추고 싶었나요?

박근혜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는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지난달 29일 밤 서울 여의도에서 지인들과 식사를 마친 뒤, 한강 둔치 주차장으로 이동해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다. 이날은 박 대통령이 대통령직 임기 단축을 포함한 진퇴 문제를 국회 결정에 맡기겠다며 대국민담화를 발표한 날이다. /여의도=문병희·이덕인 기자

[더팩트ㅣ이철영 기자] '최순실 게이트'로 나라가 매일 혼란스럽습니다. 나라의 지도자인 대통령이 일반인 최 씨와 범행을 공모했다는 검찰의 수사 발표에 나라가 비정상입니다. 이런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3번째 대국민 담화를 통해 스스로는 물러날 수 없으니 국회에서 퇴진 방법을 알려달라고 주문했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상황입니다. 일반 국민들에겐 말입니다. 하지만 박 대통령과 최 씨의 관계를 놓고 정치권과 국민이 퇴진과 탄핵을 요구하는 상황에서도 언제나 대통령의 편에서 안쓰러워했던 정치인이 있습니다. 바로 박 대통령의 영원한 복심(腹心)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입니다.

박 대통령의 3차 대국민 담화를 들은 이 대표의 심정을 어땠을까요. 이 대표는 이날 박 대통령의 담화를 여의도 당사에서 지도부와 함께 TV를 통해 시청했습니다. 당시 모습을 보면 박 대통령을 안쓰러워하거나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은 표정이었다고 합니다. 역시 '주군' 박 대통령을 향한 해바라기 이 대표입니다.

그래서 궁금했습니다. 주군이 "물러나겠다"고 밝힌 이날 이 대표는 일정을 마치고 무엇을 할지 말입니다. 박 대통령의 담화 이후 새누리당은 긴급 의원총회를 열고 탄핵 등 퇴진 방법 등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이 대표는 이날 오후 8시께 의총을 끝내고 나와 어디론가 이동했습니다.

취재진은 '그래 대통령이 물러나겠다고 했으니 심적 고통이 상당하겠지. 소주라도 한잔 하려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 대표가 술을 마셨는지 아닌지는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의총이 끝난 2시간 30분 후 이 대표의 차량을 국회 둔치주차장에서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 대표로 보이는 한 남성이 모자와 트레이닝복을 입고 한강 변을 향해 걷기 시작했습니다. 설마 했습니다. 이 대표가 모자를 쓰고 목도리를 두른 채 밤 10시가 넘은 시각에, 그것도 혼자서 한강을 따라 걷는 게 맞나 싶었기 때문입니다. 초겨울 찬바람이 매서운 밤이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이 대표가 맞았습니다. 그는 하염없이 한강 변을 따라 걸었습니다. 목적지도 없어 보였습니다.

심란한 마음에 한강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박 대통령의 거취 문제와 자신 앞에 닥쳐온 현실에 관한 고뇌의 시간을 보내나 보다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 대표의 손에는 휴대전화기가 들려있더군요. 그리고 누군가와 계속해서 통화했습니다. 발걸음은 어느새 마포대교 가까이 다다랐습니다. '이러다 강남까지 가겠다' 싶을 정도였습니다.

이때 이 대표는 다시 발길을 돌렸습니다. 전화기를 들고 뭔가를 계속 보다 다시 통화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무언가 답답한 마음을 누군가와 대화로 풀려는 것 아닌가 싶다가도, 혹시 박 대통령과 통화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 대표는 그렇게 50분 가까이 한강 변을 걸었습니다. 강을 따라 불어오는 겨울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면서 말입니다. 그렇게 한강을 걷던 이 대표는 서강대교 근처에서 다시 올라와 한 건물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이후 그의 모습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때 시각이 자정 가까운 시각이었으니 더 기다린다고 이 대표를 만날 수 있을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날 이 대표의 모습에 취재진은 놀랐습니다. 흔히 연예인들이 자신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감추기 위해 마스크를 쓰거나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리던 모습과 이 대표의 변복이 매우 비슷했던 이유 때문입니다. 혹시라도 마주칠 사람들을 피하기 위해서였을까요. 그래서 저희 취재진도 놀라면서도 당황했습니다. 그리고 의심했습니다. '설마 이 대표일까'라고 말입니다.

이 대표는 박 대통령이 정치판에 뛰어 든 18년 중 12년을 함께 했습니다. 언제나 박 대통령 옆을 지켰습니다. 하지만 현재 정국을 휘감고 있는 '최순실 게이트' 문제에서만큼은 이 대표가 박 대통령을 지키기 힘들어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미 국민은 대통령을 촛불로 탄핵했기 때문입니다.

정치인은 표로 말합니다. 정치인의 표는 연예인의 팬클럽과 유사하다 할 수 있습니다. 정치인도 연예인처럼 팬덤(Fandom, 특정한 인물이나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박 대통령 역시 팬덤이 있었기에 대통령이 될 수 있었고, 이 대표도 서민적인 모습, 흙수저의 모습에 반한 팬덤이 있었기에 당 대표라는 자리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현재 고작 4%에 불과합니다.

연예인은 대중의 인기를 얻지 못하면 자연스럽게 은퇴로 이어지기 마련입니다. 정치인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지지자가 없는 정치인이 정치를 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박 대통령이나 이 대표 앞에 놓인 현실이 그렇습니다.

이 대표의 한밤 중 변복에 놀란 취재진은 한강 변을 걷는 모습에서 정치적 처신에 대한 논란을 떠나 인간으로서 느꼈을 감정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이 대표에게 묻고 싶은 것은 '누구를 위해 정치를 하느냐'입니다. 사람들이 볼까 변복을 하고 한강을 걷는 이 대표에게선 소탈하고 바보(?)처럼 웃던 지난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cuba20@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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