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철영 기자] '역사는 반복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리고 틀린 말도 아닌 것 같습니다. 요즘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실세 의혹을 받는 최순실(60·구속 기소) 씨의 국정 농단으로 나라가 떠들썩합니다.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시민들은 매일매일 차가운 거리에 앉아 촛불을 켜고 정치권은 박 대통령 탄핵에 박차를 가하며 사실상 카운트다운에 돌입했습니다. 현재 분위기로 보면 탄핵 소추안 발의는 기정사실인 것 같습니다. 정치권이 탄핵을 놓고 시끄러운 가운데 가장 많이 들리는 단어가 '제3지대'인 것 같습니다.
제3지대라? 생각해보면 정치권에서는 새로울 것 없는 단어입니다. 이미 26년 전 우리는 '3당 합당'이라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26년 전 3당 합당이나 현재 정치권의 제3지대 주장은 상당히 유사합니다. '평행이론'일까요.
서두에 역사는 반복한다고 했습니다. 26년 전 3당 합당을 주도한 세력이 누굴까요? 바로 여당이었습니다. 지금의 새누리당 전신인 민주정의당(민정당)이었습니다. 당시 민정당 총재는 노태우 대통령이었습니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민정당은 야권에 의석수를 내주며 과반 확보에 실패합니다. 지금의 여소야대 국회라고 보면 됩니다.
의회를 야권에 빼앗긴 노태우는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보수대연합'을 비밀리에 추진, 1990년 내각제 개헌 밀약을 조건으로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 김종필 신민주공화당과 합당합니다. 국내 민주주의 세력으로부터 '민주세력을 분열시켰다'라는 비판을 받는 '3당 합당'입니다. 당시 이들은 '구국의 결단'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거대 여당 '민주자유당'을 탄생시켰습니다.
지난 4월 13일 20대 국회의원 총선거 결과가 어땠습니까. 26년 여당이 야권에 패하며 만들어졌던 '여소야대'입니다. 그리고 지금 여당은 박 대통령과 함께 '최순실 게이트'로 침몰하고 있습니다. 현재 여당으로는 정권 재창출은 사실 불가능한 상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를 모를리 없는 여당 내 잔뼈가 굵은 정치인들은 박 대통령과 결별하고 국민적 염원인 탄핵의 깃발을 세우는 명분 쌓기 작전에 나서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여기에 지난 총선 전 만들어진 국민의당은 박 대통령과 결별한 비박계에게는 더없이 좋은 합류지가 아닐 수 없습니다. 특히 국민의당은 진보, 합리적 보수, 중도 등으로 외연을 확장하는 정당을 표명하고 있으니 비박계와 손을 잡지 않을 이유도 없습니다.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나 안철수 전 대표도 이들의 합류를 부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사실상 현재가 대선 정국이니 비박계와 국민의당 그리고 이재오 전 의원이 창당한 늘푸른한국당은 26년 전 3당 합당과 비슷한 흐름을 보일 것이란 전망이 나옵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귀국 후 3지대에 머물다 비박계나 개헌론을 주장하는 정치세력과 손을 잡을 가능성이 상당합니다. 1987년 6월 29일 노태우 대통령이 직선제 개헌을 선언했습니다. 지금 정치권에서는 87년 개헌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점과 박 대통령으로 드러난 대통령제의 문제가 개헌 추진 동력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는 대선 출마 포기를 선언하면서 "개헌"을 말했습니다. 따라서 이들이 합당한다면 개헌으로 헤쳐모여가 될 가능성이 상당히 농후하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6·29 선언과 3당 합당의 시발점은 1987년 6·10 항쟁입니다. 6·10항쟁은 전두환 정권 시절인 1987년 4월 13일 일체의 개헌논의를 금지하는 호헌조치를 발표합니다. 이런 가운데 서울대학생 박종철 군이 경찰의 고문으로 사망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정권을 향한 국민의 분노가 폭발합니다.
6월 10일 전국 18개 도시에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가 주최하는 대규모 가두집회가 열리고, 학생과 시민들의 시위가 연일 계속되다, 26일 전국 37개 도시에서 사상최대 인원인 100여만 명이 격렬한 시위를 벌였습니다. 그 결과가 바로 6·29 선언입니다.
최순실 국정 농단으로 시작된 박 대통령 퇴진 촛불집회도 어느덧 100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전두환·노태우 군사정권도 결국 100만 시민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박 대통령도 국민을 이길 수는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26년 3당 합당이 박 대통령 퇴진과 함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합류로 가시화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는 상황입니다.
26년 전 3당 합당과 26년 후의 제3지대, 내년 대권에서도 과거의 시나리오가 평행이론처럼 쓰여질지 귀추가 추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