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경희의 P-STORY] 최순실 파문, '밤의 여인'은 어디에

최근 야권은 박근혜 정부를 둘러싼 권력형 비리 의혹인 미르·K스포츠 재단과 관련해 최순실 씨의 개입설을 제기하며 국정감사 증인 채택을 요구했지만, 여당인 새누리당은 이를 거부했다./JTBC 방송 화면 갈무리

[더팩트 | 오경희 기자]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가 '음담패설 녹음파일' 논란에 휩싸이며 곤란한 상황에 놓였다. 같은 당내 일각에서도 그에 대한 지지 철회와 사퇴를 압박하고 있다. 성(性) 스캔들은 도덕성을 갖춰야 할 대선 후보로선 치명타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는 제대로 된 사과 없이 상대 후보인 민주당 후보 힐러리 클린턴의 남편 빌 클린턴의 과거 성추문을 들춰 유권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이전에도 미국의 대선 전후 성추문이 불거진 사례는 여럿 있었다. 지난 2005년 언론인 출신 셸리 로스는 저서 '대통령의 스캔들'에서 역대 미국 대통령의 3분의 1이 바람둥이였다고 분석했다.

우리나라 역시 역대 대통령 중 몇몇은 실체가 드러나지 않았지만 재임 전후 성추문이 돌았고, 일부 고위공직자 및 정치인들은 성추문으로 옷을 벗기도 했다. 다만 소나기처럼 자연스레 사건이 잊혀진 경우도 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왕조시대 구중궁궐에서도 '낮의 역사'는 밥으로, '밤의 역사'는 베갯머리에서 벌어졌다.

박근혜(64) 대통령은 어떨까. '여성 대통령'이라 '밤의 역사'에서 자유로울 것 같았지만 요즘 자주 언론에 오르내리는 의혹에 휩싸여 있다. 물론 앞서 제시한 남성 대통령과 정치인들의 '아랫도리 사정' 이야기가 아니다. 국정감사를 앞둔 지난달 말부터 현재까지 야권은 최순실(60) 씨를 비선 실세로 지목하며 "권력형 비리 의혹의 몸통"이란 의혹을 연일 제기하고 있다.

"대통령의 '밤의 여인'이 낮의 여인으로 등장했다. (그가) 재벌 대기업의 등을 쳐서 800억 원이란 목돈을 가로채 갔다. 기가 찰 노릇이다."

교문위 국정감사는 최순실 씨 등의 증인 채택을 놓고 여야가 싸우며 여전히 반쪽 국감으로 진행되고 있다. /문병희 기자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0일 서울 여의도 한 호텔에서 열린 '2016년 세계한인민주회의 대표자 워크숍' 인사말에서 최순실 씨를 '밤의 여인'이라 지칭하며 강하게 비판했다. 최 씨는 국내 10대 재벌이 수백억 원 대의 자금을 지원한 '미르·K스포츠재단'에 개입한 의혹을 받고 있다.

또,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을 지낸 조응천 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21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대통령의 브로치, 목걸이 등 액서세리도 최 씨가 구입해 전해준 것이며, 최 씨는 심야에 청와대를 드나들었다고 들었다"고 주장했다. 조 의원은 '최 씨의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등 청와대 인사 개입설'도 제기했다.

박 대통령과 최 씨의 인연은 어디서 시작됐을까. 최 씨는 박 대통령의 정치적 후견인인 고 최태민 목사의 다섯 째 딸이자, '청와대 문건 파동'으로 '비선 실세'로 떠올랐던 정윤회 씨의 전 부인이다. 정치권에선 아버지때부터 시작한 인연이 딸까지 이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2014년 말 '정윤회 게이트’가 불거졌을 당시에도 일각에선 '진짜 실세는 따로(최순실)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러나 최 씨와 관련된 모든 의혹은 '오리무중'이다. 오죽하면 정치권 인사들 사이에선 "최순실 블랙홀"이란 얘기도 나온다. 최 씨를 비롯한 관련 인사들의 이름과 의혹들이 고구마 줄기처럼 터져도 '실체를 밝힐 길'이 없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지난달 21일 박근혜 정부의 비선실세로 지목된 최순실 씨 의혹과 관련해 언급할 가치도 없다는 뜻을 밝혔다./청와대 제공

실제 지난 4일부터 시작한 국감 기간 내내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야당이 공세를 펴고 있지만, 의혹만 있을 뿐 드러난 실체가 없다. 입증 근거도 뚜렷하지 않고 당사자들의 행방도 묘연한 상태기 때문이다. 최 씨는 박 대통령과 인연 및 강남에 수백억 원대 건물을 소유한 부동산 자산가란 사실 외에 거의 알려진 게 없다. 최 씨와 관련해 청와대에선 "언급할 가치도 없다"며 일축했고, 여당인 새누리당은 최 씨 등의 증인 채택을 적극적으로 저지해 사실상 무산된 상태다.

때문에 이번 비리 의혹 역시 군불만 지피다 끝날 것을 우려하는 시각이 짙다. 그러나 차기 대선 국면을 앞둔 박근혜 정부와 여당 측에 뇌관으로 작용할 게 분명하다는 것 또한 정가의 관측이다. 이를 반영하듯 지난 4~6일 여론조사 전문업체인 리얼미터가 조사한 박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30%대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박 대통령은 취임 이후 '국민과의 소통'을 줄곧 강조해왔다. 국민들은 궁금하다. '(청와대에 따르면) 언급할 가치조차 없는, 소설 같은 일들이 사실인지' 말이다. 국민을 중심에 둔 대통령과 여당이라면 '대답'할 의무가 있지 않을까. 우리는 '밤의 여인'을 낮에(국감장에서) 보고 싶다.

ar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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