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지의 폴리뷰] '국회 참 재밌다?', 힘 빠지는 '비정상 국감' 취재

국회는 지난 4일부터 국정감사를 정상적으로 운영했다. 하지만 상임위 곳곳에선 미르·K스포츠 재단 블랙홀에 빠지거나, 아니면 말고식 의혹제기, 무조건적인 정부 옹호 등 비정상적인 국감이 진행되고 있다./문병희 기자

[더팩트 | 서민지 기자] 'ㅋㅋㅋㅋㅋ'

7일 오전 안전행정위원회 국정감사 현장을 한창 취재하고 있는데, 카카오톡 메시지가 울렸다. 오랜만에 연락온 타매체 산업부 출입기자였다. 화면에는 웃음을 뜻하는 'ㅋㅋㅋ'가 가득 차 있었고, 그는 "와, 국회 참 재밌다"고 말했다.

"8월 폭염→9월 지진→10월 태풍에 이어 이제 고사를 지내야 하는 거냐"며 국민안전처를 상대로 심각한 질의응답이 오가는 상황인데, '재밌는' 상황이 도대체 뭘까 고민하며 카톡창을 열었다.

'10/6 교문위 국감 중. 이은재 새누리당 의원 : 서울시교육청, 학교에 컴퓨터 구입하면서 왜 MS오피스는 공개입찰 안 하고 한국 마이크로소프트 것만 쓰느냐 담합 아님?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 …MS오피스 제조사가 마이크로소프트인데 그럼 어디 걸 써야 합니까.'

지난 6일 오후 11시 국정감사에서 이 의원이 마이크로소프트(MS)사의 'MS 오피스' 프로그램 구매와 관련해 "서울시 교육청이 공정거래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한데 대한 조 교육감의 반박을 재구성한 내용이었다. 민망한 상황에 뭐라고 답변해야 할지 몰라 'ㅋㅋㅋ'를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다.

오후엔 각종 포털사이트 검색어 1위에 '이은재'라는 이름 석자가 올랐다. 20대 국회 첫 국감 이래 가장 폭발적인 관심이었다. 태풍 '차바'의 피해로 갈곳 잃은 시민들의 대책 마련을 논의한 국민안전처 국감은 묻히기 딱 좋았다.

사진은 지난 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서울고등검찰청에 대한 국정감사 당시./배정한 기자

"아니, 오늘 또 뭐라고 했어?"

같은 날 오전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은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이 연일 인신공격을 퍼붓는데'라는 취재진의 질문에 되물었다. 그는 "내가 일일이 답변하면 안 되지. 기차는 그냥 달리면 되는 것"이라면서도 내심 신경이 쓰이는 눈치다.

그래서인지 이날 오후 또 '한판' 붙었다. 이번엔 연예인 김제동 씨 문제로 갑론을박을 벌였다. 박 위원장은 군사법원을 상대로 한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 "(김제동 씨의 영창 논란이) 사실이든 아니든 인권 차원에서 중요한 문제 제기"라고 했다.

하지만 김 의원은 "당사자 김제동 씨는 최근 보도에서 '웃자고 한 소리'라고 했다. 미안하지만 본인 혼자 웃긴지 몰라도, 하나도 안 웃기다. 자학개그인가. 가지도 않은 영창 갔다고 하면서 멀쩡한 군은 왜 걸고 넘어지냐"고 맞받아쳤다.

지난 5일 박 위원장이 국정원의 박 대통령 사저개입 의혹을 제기했을 당시 김 의원이 "후안무치" "거짓 선동" 등 원색적인 비난에 비해 '막말 수위'는 양호한 편이다. 그러나 군인의 인권을 감사해야할 군사법원 국감에서 때 지난 연예인의 농담을 꼭 짚고넘어가야 했는지는 의문이다. 국방위원회 국감에서도 마찬가지다. 나라의 안위가 달린 북한의 핵실험, 미사일 도발, 국내 사드 배치 문제 등 산적해 있는 현안을 뒤로하고 국민의 눈을 김제동이라는 이름으로 돌렸다.

태풍 차바로 순직한 소방관에 대한 묵념으로 시작하는 안행위 국정감사./임영무 기자

국감의 3분의 1은 '김재수 농림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 블랙홀'로 날리더니, 가까스로 정상화된 국감에선 '엉뚱한 의혹제기'와 '막말 핑퐁게임'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이런 '맹탕 국감'은 비단 이 의원과 법사위 상황만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대부분의 상임위는 '박근혜 정부 비선 실세들이 깊숙히 관여해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미르·K스포츠 재단' 블랙홀에 빠졌다. 야당은 의혹 파헤치기에 몰두해 있고 여당은 막아서기에 급급하다.

일각에선 '비정상 국감'이 된 이유를 내년 대선으로 꼽았다. 정권교체를 꿈꾸는 야당은 '아니면 말고'식 각종 의혹제기로 임기 후반인 정부여당을 흔들고, 정권 재창출을 목표로 한 여당은 야당에 혹여 주도권을 빼앗길까 청와대를 필사적으로 감싸고 돌면서 국감장을 차기 권력을 위한 권력투쟁의 장으로 변질시키고 있는 셈이다.

박근혜 정부는 '비정상의 정상화'를 국정 목표로 강조했다. 지금은 입법부가 박근혜 정부를 공식적으로 견제·감시를 할 수 있는 기간이며, 국회는 국민의 대표로서 그 권한을 실행해야 한다. 이에 비춰 보면 지금까지 진행된 20대 국회 첫 국감은 비정상이 분명하다. 정상은 상식이 통하는 '제대로인 상태'이며, 비정상은 '혼돈과 갈등 상태'다. 국회는 혼돈과 갈등의 상태에서 벗어나 상식이 통하는 국감을 진행해야 할 것이다.

mj79@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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