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오경희 기자] 대통령도, 제1야당 대표도 '여성'인, 헌정 사상 첫 '조합'이 탄생했다. 추미애(57)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27일 제1야당의 사령탑에 오르면서 박근혜(64) 대통령과 어떤 '케미(chemistry, 궁합)'를 이룰지 눈길을 끈다.
대한민국 정치사에 굵직한 기록을 남긴 두 사람은 어린시절부터 다른 삶을 살았고, 정치적 노선도 대척점에 섰다. 극과 극인 조합이지만 '여성'이란 공통 분모로 민심을 따뜻하게 품을 수 있을까.
◆ '세탁소집 딸' vs '영애'
여야 '영수'인 박 대통령과 추 대표는 공교롭게도 여당의 텃밭인 대구에서 자랐다. 그러나 한 사람은 '세탁소 집 딸'로, 다른 한 사람은 대통령의 딸로 태어났다.
1958년 10월 23일 대구 세탁소집 둘째 딸로 태어난 추 대표는 부모님 곁을 떠나 홀로 외가에서 지냈다. 어느 날 세탁소에 도둑이 들었고, 부모님은 손님들의 옷값을 전부 물어주느라 빈털터리가 됐다.
박 대통령은 1952년 2월 2일 경북 대구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로 태어났다. 당시 아버지 박 전 대통령은 육군본부 정보국 제1정보과장이었고, 어머니 육영수 여사는 옥천의 대부호 '육종관'의 딸이었다.
◆ 'DJ 키즈' vs '퍼스트레이디'
이들의 운명은 대학 졸업 후 청년기부터 극명하게 갈린다.
추 대표는 고등학교 졸업 후 "후회없는 삶을 살겠다"며 법대에 진학했다. 이후 1982년 24회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10년 간 판사로 재직하던 그는 "법의 양심을 심어 보겠다"며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권유로 1995년 정치에 입문했다.
박 대통령은 1974년 서강대 전자공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교수라는 꿈을 안은 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하지만 어머니 육 여사가 그해 8월15일 저격범 문세광의 총에 맞아 숨을 거뒀고, 22살이던 그는 육 여사를 대신해 퍼스트레이디가 됐다. 그는 5년 여간 퍼스트레이디 역을 수행했다.
그러나 1979년 10·26 사태로 아버지 박 전 대통령마저 잃었고, 1980년 청와대 생활을 청산한 뒤 신당동 옛집에서 18년의 정치적 은둔기를 보냈다.
◆ '추다르크' vs '선거의 여왕'
국회에 먼저 발을 들인 사람은 추 대표다. 그는 1996년 치러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 광진을 지역구 의원으로 당선됐다.
이듬해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 캠프 선거유세단장을 맡으며 '추다르크'란 별칭을 얻었다. 야권의 불모지인 대구에서 유세 활동을 펼쳤고, 당시 지역감정과 싸운다해서 '잔다르크 유세단'이라 불렸다. 이후 16대, 18~20대 내리 5선을 지냈다. 특히 지난 4·13 총선 승리로 '여성 첫 지역구 5선'이란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박 대통령은 1997년 12월 10일 새누리당 경북 구미지구당에 입당계를 제출했고, 다음해 4·2 재보궐 선거 대구 달성지역에 출마해 이른바 '달성대첩'을 거두며 15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정치인 박근혜'를 국민들에게 각인시킨 계기는 2004년 3월 당 대표를 맡고 나서다. 불법대선자금과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역풍으로 당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하자 '천막당사'로 배수진을 치고 붕괴 직전의 당을 구해냈다. 그해 4·15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의 싹쓸이 예상을 뒤엎고 121석을 확보했다. '선거의 여왕'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 것도 이때부터다.
◆ '위기' 딛고 영예…'미래'는?
두 사람에게 위기도 있었다.
추 대표는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 사태 때 중심에 섰었다. 추 대표 스스로도 '과오'로 평가한다. 그는 2003년 노 전 대통령이 김대중 정부 당시 대북송금사건에 대한 특검을 수용하면서 등을 돌렸고, 탄핵이 부결되자 삼보일배로 속죄했다. 이 여파로 17대 총선에서 낙선했다.
하지만 13년여 흐른 지난 27일 당 대표에 도전하며 "노무현 대통령에게 진 빚을 갚겠다"는 그의 약속은 통했다. 추 대표는 전대에서 총 득표율 54.03%를 얻어 과반 득표로 민주당 60년 정당사에서 'TK 출신 첫 여성 당수'란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선거의 여왕'으로 불리는 박 대통령도 2007년 대선 때 뼈아픈 패배를 맛봤다. 당내 경선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1.5%p의 근소한 차이로 밀려 대선 출마의 꿈이 좌절됐다. 이후 5년의 기다림 끝에 2012년 과반 득표로 '헌정 사상 첫 여성 대통령 탄생'이란 영광의 순간을 맞이했다.
최고의 자리에 올랐으나, 현 시점에서 두 사람의 관계엔 '먹구름'이 드리웠다. 추 대표는 전대 이전부터 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 중립을 위한 새누리당 탈당을 촉구했고, 당선 일성으로 "대통령이 국민이 가라는 길을 외면하면 단호히 맞서겠다"고 못 박았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는 이렇다 할 반응을 나타내지 않고 있다. 과연 '화합'의 손은 '누가' 먼저 내밀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