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철영 기자] 얼마 전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무더위에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회포를 풀었다. 친구와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를 하던 중 그 친구가 최근 경마장에 다녀온 경험담을 풀어 놓았다.
친구는 "한 선배가 직업은 없고 경마로 돈을 벌고 있는 데 같이 하자고 해서 몇 번 갔지. 그 선배는 한 달에 수 백만 원 을 딴다고 그러더라. 그래서 나도 몇 번 했는데 돈을 따기는 커녕..."이라며 허탈하게 웃었다.
그러면서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몇 번 하다 보니 본인도 모르게 자꾸 생각나고 쓸데없는 희망을 품게 되는 것이 싫어졌다는 것이 경마를 멈춘 첫 번째 이유였다. 두 번째는 경마장에서 본 폐인이나 다름없는 사람들의 모습 때문이었다. 돈을 따고 잃는 도박의 속성이 원래 그렇다는 것을 그제야 안 것이다.
그런데 최근 새만금에 내국인 카지노 허용을 위한 관련법 개정 소식이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도박에 예민한 나라에서 내국인의 카지노 허용을 위한 법 개정에 정치권이 나선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법 개정에 나선 김관영(재선, 전북 군산, 원내수석부대표) 국민의당 의원은 10일 새만금 개발을 앞당기고 활성화하기 위해 싱가포르의 마리나베이샌즈와 같은 복합 카지노 리조트 도입이 필요하다며 관련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 김 의원은 내국인 출입이 가능하도록 새만금특별법 개정을 대표 발의할 예정이다.
김 의원은 "벤치마킹하고 있는 것이 싱가포르 마리나 베이 샌즈인데 약 9조 원을 투자해서 5년간 23만개 일자리 생겼고, 지금 6년째 운영되고 있는데, 상시 고용인원만 3만5000명에 이른다"며 "연간 2000만 명 관광객이 왔을 때 그 효과는 숙박업소나 식당 등 그 주위에도 엄청난 연관 효과를 가져온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는 전적으로 싱가포르 이야기로, 새만금도 같으리라 장담할 수는 없다.
그는 도박 중독 등 부작용 우려와 관련 "9000원인 강원랜드보다 훨씬 높은 10만 원가량의 입장료를 받고 연간·월간 출입 일수를 제한하는 등 내국인 규제를 강화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김 의원의 개정안 발의는 새만금 개발을 앞당기고 활성화를 위해 고심하던 끝에 나온 고육지책으로 이해한다. 그런데도 김 의원의 카지노 도입에 찬성할 수는 없다. 도박이 가지는 중독의 심각성과 이에 따른 사회적 비용, 외국으로 빠져나갈 국내 자금 등 카지노가 가지는 문제들 때문이다.
현재 국내 카지노 중 내국인 출입이 가능한 곳은 강원랜드 한 곳이다. 이를 두고 박지원 원내대표는 "언제까지 강원랜드가 카지노를 독점해야 하느냐는 생각이 있다"고 김 의원에게 힘을 보탰다. 한 발 양보해 자본주의 사회에서 강원랜드가 독점하는 것은 문제이다. 그렇다면 그 한 곳에서 발생하는 폐해의 심각성은 어느 정도이고, 왜 강원랜드뿐일까.
도박이 가지는 문제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다. 국무총리 산하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가 2014년 발간한 '2013 사행산업백서'에서는 도박의 폐해에 관해 '우울증, 직장에서의 생산성 저하, 범죄증가, 가정 파괴, 중독자 양산과 함께 장기적으로는 주변 산업의 고용감소와 성장잠재력 약화, 사회적 비용 증가 등의 부작용을 초래하기도 한다'고 경고했다.
백서는 또 미국 내 연구에 의하면 도박 중독자 확산에 따라 가정 파괴·자살, 도박 자금 마련을 위한 절도, 강도 등 사회 범죄가 증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히고 있다. 미국 도박영향 평가 위원회(NGISC)의 최종보고서는 도박을 한 적이 없는 사람은 7%만 투옥됐지만, 병리적 도박자의 경우 약 3배 이상(21.4%) 투옥을 경험한 바 있다고 보고했다.
도박의 부작용은 또 막대한 사회적 비용의 증가를 초래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백서는 우리나라의 경우 도박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11조 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했다.
지난해 이학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형사정책연구원에서 제출받은 '도박범죄의 사회적 비용 추계 연구'에 따르면 도박 중독으로 인한 개인적 지출 비용 및 기회비용이 30조5012억 원, 사회적 지출 비용은 3272억 원으로 나타났다. 사행산업의 순 매출로 잡히는 개인 도박 순지출액(5조3751억 원)을 빼면, 도박 중독으로 인한 사회적 총비용은 25조4532억 원에 달한다.
더 나아가 전종설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는 도박중독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연간 78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까지 보았다.
류광훈 관광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해 '내국인 카지노 이슈 점검 콘퍼런스'에서 국내의 경우 다른 나라보다 중독성이 높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당시 류 연구위원은 "한국의 전 국민 기준 도박중독유병율(CPGI)은 2014년 5.4%로 영국(1.4%, 2012년), 호주(4.3%, 2011년) 등 외국보다 1~4%포인트나 높은 수준이어서 더 심각하다"며 내국인 카지노 허용을 우려했다.
김 의원은 "카지노를 주도한 국회의원이란 낙인이 찍히고 싶지 않지만, 이 사업이 너무 절실하기 때문에, 대한민국을 위해 필요하므로 여러 비난을 감수하고 입법을 추진하는 것"이라고 당위성을 내세웠다.
경기침체, 청년실업, 저출산과 고령화 등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은 만만치 않다. 그리고 앞으로 더욱더 심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카지노를 포함하는 복합리조트가 주위에 연관 효과를 가져오는 등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면 지금 우리나라가 경기침체, 청년고용불안 등을 고민할 이유가 있을까.
이솝우화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보면 거위가 매일 황금알을 한 개씩 낳았다. 주인은 황금알을 한꺼번에 가지고 싶은 욕심에 거위의 뱃속을 갈랐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결국, 귀중한 거위만 잃고 말았다는 내용이다. 김 의원의 카지노 발상은 일확천금을 노리고 거위의 배를 가른 주인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