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디 '배후'는 얼굴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지난 18일 불거진 새누리당 내 친박(친박근혜)계의 '4·13 공천 개입 의혹'과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의 '진경준 게이트 연루 의혹' 등을 두고 정치권에선 '배후론'이 제기됐습니다. '누가, 왜, 지금 이 같은 의혹을 제기했나?'라는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습니다. <더팩트> 정치팀은 여의도 정가를 취재한 기자들의 '방담'을 통해 한 주간 이슈를 둘러싼 뒷이야기와 정치권의 속마음을 다루는 [TF주간 정담(政談)]코너를 진행합니다. 국회에 출입하고 있는 이철영·임영무·오경희·신진환·서민지 기자가 참석했고, 명재곤 부국장과 박종권 편집위원이 사회를 맡았습니다. [TF주간 정담(政談)]은 현장에서 발품을 파는 취재 기자들이 전하는 생생한 가십 모음입니다.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편집자 주>
[더팩트 | 정리=오경희 기자] 정부·여당이 최근 연이은 악재로 곤란한 처지에 놓였습니다. 지난 총선 과정에서 '친박 핵심' 최경환·윤상현 의원에 이어 현기환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친박 맏형' 서청원 의원의 지역구인 경기 화성갑 출마를 선언한 김성회 전 의원의 지역구 변경을 종용한 녹취록이 공개됐기 때문입니다. 또, 현 정부의 비선 실세로 꼽히는 우병우 민정수석의 비위 의혹이 한날 동시에 터졌습니다.
이번 녹취록 파문을 놓고 '배후'에 의혹이 일고 있습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는 저절로 나지 않으니까요. 그뿐만 아니라 여의도 국회에서 여야는 지난 19~20일 이틀간 '뜨거운 감자'인 사드 관련 긴급현안질문을 했지만, 공전만 거듭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전국을 떠들썩하게 한 그 현장을 되짚어 보겠습니다.
◆ '녹취록 파문' 與 '암투 후 휴전?'
-새누리당은 친박계의 공천 개입 의혹이 대대적으로 보도된 이후 연일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의혹 당사자인 최경환·윤상현 의원은 어떤 대응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논란의 중심에 선 서청원 의원은 '배후설'을 제기하는 듯한 발언을 했는데요.
-애초 친박계에서 오는 8·9 전당대회 당권 주자로 서 의원을 내세우려 했습니다. 분명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던 서 의원은 문제의 녹취록이 공개되자마자 불출마를 선언했습니다. 며칠 뒤엔 "음습한 공작정치 냄새가 난다"며 강경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공작정치'. 배후론을 정면 제기한 것으로 해석됐는데요. 그렇다면 지금 단순하게 드러난 구도로만 보면, 서 의원이 겨냥한 배후는 누가 있을까요? '비박(비박근혜)'계 좌장격인 김무성 전 대표로 추측되고 있습니다만, 김 전 대표 측에선 펄쩍 뛸 소리겠죠? 어찌 됐든 김 전 대표는 지금 당내 혼돈을 뒤로하고 8월 한 달간 민심을 경청하고자 전국 배낭여행에 나설 예정입니다.
-배후가 김 전 대표가 맞든 아니든, 주목할 점은 서 의원을 공격한 쪽은 성공(불출마)했다는 것이고, 여당 자체적으로 이 논란에 불씨를 더 지피지 않는 것은 암묵적인 휴전이나 냉전 상태로 들어간 것 아닌가 하는 관측도 있습니다. 전대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서 의원의 불출마 선언이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해 굳이 당내 계파 갈등을 노골화할 필요가 있겠냐 하는 계산이 깔린 거죠.
-그냥 하는 얘기지만, 녹취록을 보면 3선의 윤상현 의원이 "대통령의 뜻"이라고 하는데 정말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박근혜 대통령을 "누나"라고 부를 정도로 친분이 깊은 건지, 공격하는 쪽의 주장처럼 '대통령 팔이'를 하는 것인지 의문이네요.
◆ '靑 실세' 우병우의 선택은?
-녹취록 파문도 여권을 강타했지만, 우병우 민정수석의 '진경준 게이트 연루 의혹'도 못지않습니다. 대통령의 뜻이 잘 통하지 않는 임기 말의 상황, 즉 조기 레임덕이라고 봐야 할까요?
-우 수석이 넥슨으로부터 비(非)상장주 1만 주를 뇌물로 받아 126억 원의 대박을 친 혐의로 구속된 진경준 검사장에 대한 '봐주기 검증' 의혹이 제기됐는데요. 이 과정에서 상속세를 내지 못해 수십억의 가산세를 물어야 했던 우 수석 처가의 보유 부동산을 넥슨이 고가에 사줬다는 의혹, 부인 등 처가 식구들이 보유한 땅이 농지법을 위반한 의혹 등 고구마 줄기처럼 줄줄 터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지난 21일 "의로운 일에는 비난을 피해가지 말고, 고난을 벗 삼아 당당히 소신을 지켜 가길 바란다"며 우 수석을 감싸는 듯한 발언을 했습니다. 우 수석이 실세라는 것을 드러낸 것이란 분석이 뒤따랐습니다.
-'우병우 사태'의 초점은 아직 살아있는 권력인 대통령의 민정라인을 보수언론(세력)이 건드린 이유에도 관심이 가는 대목입니다. 앞서 말한 레임덕을 감지했기 때문에 선제로 선 긋기에 나선 것인지, 또 다른 세력의 암투인지는 두고 볼 일인 것 같습니다. 일반 사람들의 입장에선 누가 이길까, 누가 진실일까가 궁금한 거죠.
-결국, 키는 우 수석이 쥐고 있습니다. 꼬리를 말 것이냐, 꼬리를 세울 것이냐. 우 수석을 향한 사퇴 압박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정치권은 이번 주말이 우 수석의 거취를 가를 고비로 보고 있습니다. 제2의 전선이 형성될지, 청와대의 결정과 레임덕, 여당의 전대 등이 어떤 상관관계로 흐름을 이룰지 하한 정국의 중요 포인트 같습니다.
◆ 여야, 사드 '공전'…정치인式 유머
-야심 차게 시작한 사드 관련 국회 긴급현안질문에서 여야는 평행선만 달렸습니다. 입장차를 좁히지 못한 채 동상이몽만 반복했습니다. 실제 지난 19~20일 이틀간 현장에서 지켜본 결과, 기존의 사드 찬반론과 군사적 효용성 및 외교 마찰 우려 등 논의의 범주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의원들의 같은 질문에 같은 대답을 반복했고, 취재진의 귀에도 '돌림노래'처럼 들릴 정도로 '한 방'도 없고, 그렇다고 '진전'도 없는 하나 마나 한 긴급현안질문이었습니다.
-사드 배치 예정지인 경북 성주 군민들이 국회를 직접 찾아 본회의장에서 의원들의 긴급현안질문을 지켜봤는데요. 한 군민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성주 너희가 독박써라'하는 흐름으로 가는 듯하고, 경북 성주가 지역구인 이완영 새누리당 의원 역시 당 차원에선 사드 배치 찬성인데 지역민을 생각하면 대놓고 찬성할 수도 없고, 참 답이 없는 문제인 것 같습니다.
-여담이지만, 지난 18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개헌'을 주제로 한 의원대담에선 민병두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유머'가 눈에 띄었습니다. 김종인 더민주 대표와 평소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진 같은 당 소속 박영선 의원은 개헌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김 대표께선 26년 전에 헌법에 '경제민주화'란 단어 하나를 넣으셔서 지금 당 대표까지 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민 의원은 "김 대표님처럼 저도 지금 이 순간 어떤 말을 해야 26년 후에…"라며 우스갯소리를 했습니다.
-또, 개헌의 방향성으로 '의원내각제'를 제시했던 김부겸 의원이 박 의원에게 조용히 쪽지를 건네자, 민 의원은 "김 의원이 차기 대권 주자라서 그런지 '분권형 대통령제'로 정리를 한다고 하시네요. 하하"라며 농담을 건네기도 했습니다.
-정치인의 유머는 때로 전술이 되기도 하죠.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고, 친숙한 이미지를 만들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요즘 정국을 보면, 정치인도 웃고 국민도 함께 웃을 수 있는 '솔로몬의 지혜'를 풀어내는 게 만만치 않은 것 같습니다. 웃어야 복이 온다는데, 다음 주엔 속 시원하게 웃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