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박종권 편집위원]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어릴 때 형성된 성격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는 속담이다. 이런 말도 있다. "제 버릇 개 못 준다." 한번 몸에 붙은 습성은 버리기 어렵다는 뜻이다. 올바른 조기교육이 필요하다는 '경험칙'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러한 '경험칙'이 실제로 검증돼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더니든 종단연구(Dunedin Longitudinal Studies)'를 통해서다. 뉴질랜드 더니든의 퀸 메리 산부인과에서 1972년 4월 1일부터 1973년 3월 31일 사이 태어난 1037명(남 535명, 여 503명, 쌍둥이 24명)을 대상으로 평생 추적 조사하는 연구이다. 최근(2010~2012년)에는 38세 상황에 대한 연구결과가 나왔고, 2017년 4월 1일부터 45세에 대한 연구가 시작된다. 인간의 생애주기에 따라 진행되는 초(超)장기 프로젝트이다.
연구 결과 어릴 때 형성된 5가지 유형의 성격이 장성해서도 변하지 않더라는 것이다. 조사 그룹이 3세 때 '적응형(well-adjusted)' 40%, '자신만만형(confident)' 28%, '내향형(reserved)' 15%, '통제결함형(undercontrolled)' 10%, '억제형(inhibited)' 7%로 분류했는데, 38세가 되어서도 변화가 없었다는 것이다. 특히 통제결함형은 알코올중독이나 흡연, 범죄에도 쉽게 젖어 들었다. 조금은 섬뜩하기도 하다.
TV 시청과 건강의 상관관계(2004)도 있다. 5세에서 15세까지 주말에 평균 2시간 이상 TV를 시청한 경우 26세가 되자 과체중과 흡연율이 평균보다 각각 17% 많았다. 콜레스테롤과 비만 역시 평균을 각각 15% 상회했다.
TV시청은 사회진출과 학업에도 영향을 미쳤다. 대학졸업장을 획득하는데 33% 정도의 상관관계를 보인 것이다. 이는 그다지 놀랍지 않다. '카우치 포테이토'란 비아냥도 있지 않은가. 소파에 파묻혀 TV를 보면 '감자칩'만 먹는데, 뚱뚱해지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장시간 TV를 시청하면 집중력도 떨어져 자연히 공부에 전념하기 어렵지 않겠나.
그런가 하면 유년기 성격을 통해 인생에서의 성공 여부를 가늠할 수 있다고도 한다. 유명한 '마시멜로 테스트'이다. 아이들에게 마시멜로 1개를 접시에 담아 주고는 "지금 먹으면 1개뿐이지만, 15분을 참으면 2개를 먹을 수 있다"고 알려준다. 테스트 주관자가 방을 나간 뒤 아이들의 행태를 관찰한다. 일부는 조금도 기다리지 않고 날름 먹어버린다. 일부는 침을 흘리고 몸을 배배 비틀며 참다가 결국 먹어버린다. 일부는 일부러 주의를 딴 곳으로 돌리면서 15분을 참는다.
그런데 15분을 참은 아이들이 나중에 학업에서도, 사회적으로도 성공하더라는 것이다. 연구진은 아이들의 IQ와 부모의 재력 등과도 상관관계를 조사했지만, 이보다는 '자기절제력(self-control)'이 사회적 성공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열쇠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사실 그렇지 않은가. 아이들은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다. 틈나면 놀고 싶다. 책상 앞에 쭈그리고 앉아 공부하고 싶은 아이들이 얼마나 되겠나. 이 유혹을 물리치고 엉덩이를 붙이는 아이들이 결국 성공하는 것 아닌가.
최근 미국에서는 이 같은 연구결과를 토대로 초등학교에서 '절제력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2000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시카고 대학의 제임스 헤크먼(James Heckman)이 미국 정부에 강력히 권고하고 있다. "어릴 때 자기절제 교육이 사회적 비용을 줄이고, 나아가 경제발전에 기여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글쎄~" 싶은 연구도 있다. 최근 발표된 것인데, 어릴 때 엄지손가락을 빨거나 손톱을 물어뜯는 아이들이 나중에 각종 알레르기로 고생할 확률이 적다는 것이다. 조사 결과 손가락을 빨거나 손톱을 물어뜯는 습관을 보인 아이들의 31%만이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고, 이 가운데 한 가지 습성을 보인 아이들은 41%의 반영률을 보였다는 것이다.
일찍 이런저런 세균에 노출되면 그에 대항하는 갖가지 항체가 형성된다는 이론이다.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 식으로 해석하면 아이가 손가락을 빠는 행위는 엄마 젖꼭지에 대한 집착, 손톱을 물어뜯는 것은 욕구불만을 드러내는 행태인데 말이다.
여하튼 사람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자신의 깜냥, 좁디좁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옳다고 여긴다. 아마도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자기합리화, 자아방어기제의 발동 때문일 것이다.
구두수선공은 구두만 보면 그 사람의 성격부터 사회적 지위까지 알 수 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세탁소 주인은 맡긴 세탁물을 통해 그 사람됨을 가늠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럴 것이다. 어디에서든 그 사람의 성격과 습관이 배어있는 것이다. 미용사가 머리만 보고 아는 것이나, 정비업소 주인이 차를 보고 아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이를 국정으로 치환해도 통할 듯싶다. 경제부처 출신은 모든 것을 경제의 관점으로 바라본다. 외교부 출신은 국제관계적 관점, 국방부 출신은 안보적 관점으로 바라볼 것이다. 이를 탓할 수는 없다. 각각 그런 환경에 적응하며 성장하지 않았나.
문제는 이를 통할하며 결정하는 위치다. 그가 좌우를 살피는 소통과 통합의 관점인가, 그저 일방통행의 지배적 관점인가에 따라 국정의 미래가 좌우된다. 지금 우리의 리더십은 과연 어떠한가.
'똑부(똑똑하며 부지런한)'와 '똑게(똑똑하며 게으른)'와 '멍부(멍청하며 부지런한)'와 '멍게(멍청하며 게으른)' 가운데 최고가 '똑게'라고 한다. 흐름을 꿰고 있으면서도 짐짓 권한을 위임하는 리더 유형이다. 여기에는 독선으로 흐르지 않는 '자기절제'가 필요하다. 그 반대는 '멍부'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능력도 없으면서 만기친람(萬機親覽)하는 유형이다. 우리는 과연 어느 쪽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