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인터뷰] 박주민 "개인 영달보다 역사를 바꾸기 위해 살자" <하>

박주민(44, 은평구 갑)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앞으로 삶의 계획을 이야기하며 웃고 있다. /국회=문병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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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팩트ㅣ국회=이철영 기자] "선거기간 어머니와 장인의 칠순이었다. 당선되면 다 같이 제주도라도 다녀와야지 했는데, 여전히 바쁘네요."

박주민(44, 은평구 갑)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지역구 국회의원에게 주어진 넘치는 일정 소화만으로도 힘든 하루를 보낼 정도다. "성원을 보내준 분들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어떨까 부담된다"며 웃는 것도 그렇다고 심각한 것도 아닌 묘한 표정을 짓는다.

지난달 30일 20대 국회 임기가 시작하면서 박 의원은 국회의원이 된 걸 실감하고 있다. <더팩트>는 지난 2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5층에서 박 의원을 만났다. 그와의 인터뷰는 1시간 넘게 진행됐다. 정치 시작과 그로 인해 달라진 일상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박 의원은 시민들의 목소리가 정치권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것 같다며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문병희 기자

◆'거리의 변호사' 한계 느껴 정치 결심

박주민 변호사가 아닌 박주민 국회의원은 여전히 어색했다. '거리의 변호사'는 약자의 편에 서면서 자신의 한계를 느꼈다. 20대 총선이 다가오며 여의도 정가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들은 그가 정치를 하기로 하는 큰 계기가 됐다.

그는 "제주 강정, 밀양, 세월호 등 제가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한계를 많이 느꼈다. 스스로 열심히 했다고는 평가하지만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며 "그렇다고 직접 정치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200석을 차지할 것이란 이야기가 나왔다. 제가 해왔던, 일을 도왔던 분들이 어려운 상황에 부닥치게 되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고 정치를 시작한 이유를 밝혔다.

박 의원은 우리 정치의 가장 큰 문제를 밖에서부터 느꼈다. 그는 거리의 변호사로 활동할 당시 문제와 갈등이 정치권에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목소리들이 (정치권에) 솔직하게 전달이 안 되는 것 같다. 또, 문제 해결 과정에서 상호과정을 하지 못한다"고 정치권을 지적했다.

그는 국회의원이 되기 전 인권변호사로 활동했다. 대원외국어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나와 사법고시에 합격한 그다. 누가 봐도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하지만 그는 개인의 영달이 아닌 공동체 혹은 함께 사는 사회에 눈을 돌렸다.

변호사를 한 것도 공익적인 일을 하고 싶어서였다. 그는 유독 약자에게 시선이 갔다고 한다. 거리의 변호사가 된 이유다. 부모라면 공부 잘하고 서울대 법대를 나온 아들의 행동에 울화가 치밀지 않았을까 궁금했다.

그는 잠시 생각했다. 잠시 후 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제 부모님이 특이한지 제가 하는 일에 반대한 기억이 없다"고 웃으며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부모님께 들은 말은 '검사나 판사 하루만 하고 나와라'였고, 로펌을 그만둘 때는 '1년 만 더 벌고 나와라'였다. 그런데 항상 응원해 줬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자신의 결정에 부모님이 반대하지 않은 이유로 "학창시절 항상 알아서 공부를 열심히 했기 때문"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박 의원이 피곤한 듯 머리를 움켜지고 있다. /문병희 기자

◆석 달째 소득이 없다...세비반납은 보여주기가 아닌가요

국회의원에게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체력이다. 박 의원의 과거 이력을 볼 때 체력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아 보였다. 길거리에서 다져진 체력이지만 그는 국회의원 생활로 체력이 고갈되기 일보 직전이다.

박 의원은 "여유가 없어요"라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원래 등산과 달리기나 걷기 같은 유산소 운동을 좋아한다. 그런데 선거 치르면서 운동을 못 했다"면서 "최근 의원회관 지하에 있는 체력 단련실에서 하루 1시간씩 운동을 시작했다. 이렇게라도 개인 시간을 쓰니까 좋다. 또, 운동이 활기를 찾아주기도 하고"라며 즐거운 표정을 보였다.

여유가 없을 만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원 구성 문제로 개원이 늦어지자 국민의당이 세비를 반납하겠다고 선언했다. 박 의원 입장에서는 이렇게 바쁜데 일하지 않는다는 국민의당 논리를 선뜻 수긍하기 어렵다고 했다. 물론, 여기엔 개인적인 사정도 있었다.

그는 "세비 반납을 하겠다고 하는데 이에 대해선 진지한 고민이 우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지한 고민 후에 세비 반납에 의미가 있다면 모를까. 의원들 열심히 일하고 있다"며 "저는 지금 석 달째 소득이 없다.(웃음) 세비 반납은 보여주기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왜, 일을 안 하고 있다고 하는지"라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박 의원이 대학, 군대 등에서 사람들에게 본의 아니게 상처를 준 것, 제 욕심을 차리거나 주위에 상처를 준 것들이 후회된다며 생각에 잠겨 있다. /문병희 기자

◆ 나이 50쯤 되면 시골에서 농사 짓지 않을까?

박 의원은 초선 의원이지만 잘 알려진 사람이다. 그만큼 유명하다. 그가 국회에서 어떤 일을 할지 어느 정도 예상도 가능하다. 질문과 답이 오가던 중 박 의원의 사소한 것들이 궁금했다. 어떤 음악과 영화를 좋아하고 어떤 책을 읽었는지 등등 말이다.

늘 약자 옆에서 힘이 되어준 그도 살아오면서 잘못한 것은 없었을까도 궁금해졌다.

그는 "음악을 가끔 듣는다. 주로 가요다. 좀 올드한 노래를 좋아한다. 그렇다고 아주 옛날 노래는 아니다"고 강조했다. 박 의원은 평소 생각이 많아서 인지 영화는 눈으로 즐길 수 있는 혹은 남자들이 주로 보는 마블의 히어로 물을 본다고 한다. 그는 "생각 없이 보기 좋다"고 했다.

박 의원은 살아오면서 자신이 가장 잘한 일은 "인권 변호사가 된 것"과 아내를 만난 것이라며 활짝 웃었다. 하지만 그는 살아오면서 자신의 잘못으로 "대학, 군대 등에서 사람들에게 본의 아니게 상처를 준 것, 제 욕심을 차리거나 주위에 상처를 준 것들이 후회된다"고 말했다.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그는 예상했던 것보다 더 인간적이었다. 그가 인권 변호사로 거리에서 그리고 세월호 유족 옆에 있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의 좌우명도 그렇다.

그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1cm라도 돌리고 죽자'가 좌우명이라면 좌우명이다. 개인의 영달보다 역사를 바꾸기 위해 살자, 빛이 안 나더라도 꾸준하게 살아가고 싶다"며 멋쩍은 모습을 보였다.

인터뷰 말미 정치인 박주민의 앞으로가 궁금했다. 정치를 계속할 수도 있고, 다시 거리로 나갈 수도 있다. 그는 앞으로 삶을 어떻게 계획하고 있을까.

박 의원은 "50살쯤 되면 어딘가에서 농사를 짓고 있지 않을까? 저나 아내나 이런 생각이다. 피곤한 삶을 살아온 생활, 50이 넘어서는 계획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고 말하며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cuba20@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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