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권의 술자리 인문학] 정치는 '허업(虛業)'이라는데, 반기문 총장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28일 오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삼엄한 경호 속에 차량에 오르고 있다. /이새롬 기자

[더팩트 | 박종권 편집위원] "잘 살아 보세, 잘 살아 보세, 우리도 한번 잘 살아 보세."

대한민국의 40대 이상이면 귀에 못이 박혔을 것이다. 학교에서도, 거리에서도, 시골길 논두렁에서도 매일 울려 퍼졌다. 싫어도, 자신도 모르게 따라 불렀다. "새벽 종이 울렸네~"와 짝을 이루어 1970년대의 '백그라운드 뮤직(BGM)'이 됐다.

그런데 그 가사를 제대로 아는 이는 없는 듯하다. 제법 긴 데다, 3절로 구성돼 있다. 지난해 말 라오스를 방문한 황교안 국무총리가 새마을운동 보고회에서 이 노래를 불렀다는 기사가 보도됐었다. 애국가도 4절까지 제대로 불러야 한다고 일갈했던 그이지만, 과연 1절이라도 제대로 알았을지 의문이다.

그래도 흉을 볼 수는 없다. 그와 동년배인 필자도 사실 '잘 살아 보세~'라고 반복적으로 되풀이되는 후렴구만 흥얼거릴 뿐이다. 문제는 잘 살아보자고 노래만 불렀지,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산다는 얘기인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찾아봤다. 잘 산다는 것의 정의는 딱 이랬다. "금수강산 어여쁜 나라 한마음으로 가꿔가며, 알뜰한 살림 재미도 절로, 부귀영화 우리 것이다." 쉽게 설명하면 '새마을 운동에 근검절약 더하면 부자가 된다'는 것이다. 구구절절 좋은 말이지만 목에 가시처럼 걸리는 대목이 있다. '한마음'과 '부귀영화'이다.

'한마음' 그 자체로는 숭고하다. 하지만 이를 강요하면 자칫 전체주의 또는 국가우선주의로 흐를 수 있다. 민주주의는 다양한 사고와 신념과 주장이 바탕이 아닌가. 공교로운 건 박 대통령이 '영애'시절 총재를 맡았던 '구국여성봉사단'의 후신이 바로 '한마음봉사단'이다. '잘 살아 보세' 노래의 핵심가치 중 하나가 이름에 붙었다. 그가 정치적 야망을 품은 2000년대 중반 이후 각 분야에 우후죽순처럼 생겨나 그의 지지기반이 됐던 조직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영애시절 총재를 맡았던 구국여성봉사단의 후신이 바로 한마음봉사단이다. 잘 살아 보세 노래의 핵심가치 중 하나가 이름에 붙었다. 그가 정치적 야망을 품은 2000년대 중반 이후 각 분야에 우후죽순처럼 생겨나 그의 지지기반이 됐던 조직이다. /청와대 제공

'부귀영화' 역시 뭇 사람들이 추구하는 바이다. '부귀(富貴)'는 글자 그대로 '재산이 많고 지위가 높다'는 뜻이다. 사회적으로 성공했다는 의미이다. 어쩌면 작금의 40대 이상 기성세대들이 '돈'과 '지위'만 좇아 허겁지겁 살아온 것이 바로 이 '잘 살아 보세' 노래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일종의 세뇌작용이다.

하지만 꼭 재산이 많고 지위가 높아야만 '잘 사는' 것인가. 부유하지는 않아도 착취하지 않고 베푸는 삶, 지위가 높지 않아도 국민을 섬기는 삶이 '잘 사는' 것 아닌가. 돈 없고 출세하지 않아도 존경 받는 이들이 있었다. 이들은 어른이었고, 마을의 장로였다. 진실되고 성실하면 그것만으로도 자부심을 가질 수 있었다. '국가지정 곡'이 국민 계몽을 위해서라면, 이렇게 이끌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재산과 고위직 타령만 하다 보니 지금처럼 이기주의적 천박한 자본주의에 매몰된 것 아닌가.

돈이든 지위든 모두가 자신의 이익을 좇으면 나라가 망한다고 했다. 맹자 말씀이다. "이해타산으로 만사를 처리하면 당장은 이익을 보지만, 그것이 일반화되어 사람들이 모두 이익을 밝히게 되면 화합하지 못하고 서로 다투게 된다. 그러면 사회가 불안해지고 나라가 망한다." 우리도 혹시 베풂과 나눔보다 서로서로 이익만을 밝히는 것은 아닌가.

예수님이 '부자가 하늘나라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 귀 지나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했다. 또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통해 '베풀고 나누지 않는 부(富)'에 대해 엄중히 경고했다. 재산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라는 것이고, 이 수단은 자신만이 아니라 이웃에게도 향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그것이 '사랑'이다.

요즘 부쩍 '잘 살아 보세~'가 요란하다. '새마을 식당'에서 마케팅 음악으로 틀어대는 바람에 유신 이후 젊은 세대도 얼마간 익숙해졌을 법하다. 그런 의미에서 백종원 씨는 음식뿐만 아니라 사업 확장의 시기와 기회도 잘 택하고 잡았다. 박 대통령은 연신 '새마을 세일즈' 외교에 열심이고, 국무총리도 '잘 살아 보세' 노래 부르며 박자를 맞추는 형국이다.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지난 28일 오전 서울 신당동 자택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의 면담을 마친 뒤, 외출을 하기 위해 자택을 나서고 있다. /이새롬 기자

반기문 유엔사무총장도 '새마을'과 코드를 맞추고 있는 듯하다. 최근 경주에서 열린 유엔 NGO컨퍼런스에서 새마을 운동 세계화를 치하했다. "새마을 운동이 산불처럼 번지고 있다"며 유엔을 찾은 박 대통령에게 화답했던 그답다. 그 역시 박정희 유신시대에 '잘 살아 보세~'를 부르며 성장한 관료여서인가.

그가 부쩍 광폭 대권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에 외교관답게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다. 교묘한 화법으로 '기름 바른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때 충청권의 맹주로 불렸던 JP도 만났다. JP야말로 "정치는 허업(虛業)"이라고 말한 장본인인데, 반 사무총장에게 뭐라고 조언했을지 궁금하다.

고난을 겪지 않고 출세가도를 미끄러지듯 달려온 이가 큰 지도자가 되기는 어렵다. 다른 사람들의 어려움을 헤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맹자 말씀이다. "하늘이 장차 큰일을 맡기려고 하면 반드시 먼저 그의 마음과 뜻을 괴롭히고, 근육과 뼈를 깎는 고통을 주며, 배를 굶주리게 하고, 생활을 곤궁하게 하며, 하고자 하는 일마다 어렵게 만든다. 이는 그 마음을 흔들어 참을성을 기르게 하려는 것이며, 지금까지 못 했던 일을 할 수 있게 하려 함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 28일 오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어머니와 함께 차량에 올라 손을 흔들고 있다. /이새롬 기자

사람은 늘 허물이 있은 후에야 고치는 법이다. 그래서 실패는 좌절과 단절이 아니라 성공으로 가는 절차인 것이다. 큰 지도자들은 그랬다. 우리의 현대사에서 뚜렷하게 족적을 남긴 지도자는 모두 간난신고(艱難辛苦)를 겪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그러했고, 김대중 전 대통령도 그러했다. '바보' 노무현 전 대통령은 '수적천석(水滴穿石)', 끝내 물방울로 바위를 뚫었다.

설탕을 넣고 참기름만 치면 맛있는 음식이 되는 게 아니다. 쓴 맛과 신 맛과 짠 맛이 함께 어우러졌을 때 비로소 제대로 음식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사회도 사람도 마찬가지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이다.

실패해 보지 않은 지도자는 그래서 위험하다. 밑져봐야 본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더욱 위험하다. 스스로 수양(修養)하기보다 상대를 계도(啓導)하려는 사람 역시 그 자신부터 위험하긴 마찬가지이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임기는 올해 말까지이다. 2017년 1월 1일자로 대한민국 국민으로 돌아온다. 별별 추측이 나돌지만 본인의 마음은 이미 '반반'이 아닐 것이다. '결심'이야 그의 자유이겠다. 하지만 그 결심이 바다로 가서 크게 성장한 물고기가 개울이나 우물 안으로 돌아오는 것은 아니길 바란다.

이미 명예를 얻었다면, 그 명예를 더욱 밝고 환하게 닦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권력을 탐하면 몸을 망치고, 돈을 탐하면 이름을 망치는 법이다. 특히 '큰 어른'이 사라진 우리 시대에 그나마 비슷한 반열에 오른 반기문 사무총장이 허업(虛業)에 정신이 팔린다면,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큰 바위 얼굴이 모래처럼 부스러질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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