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청년팔이'였나. 20대 총선에서도 '청년 마케팅'은 홍수를 이뤘다. 당마다 갖은 공약을 쏟아냈고, 기득권 정당은 청년 후보를 앞다퉈 내세웠다. 하지만 청년들은 말한다. "진짜 청년 정치는 없다"고 말이다. 실제 20대 총선에서 2030유권자는 1500만 명으로 전체(4210만 명)의 35.7%를 차지했으나, 당선자 중 20대 국회의원은 단 한 명도 없고, 30대에서 3명만 국회에 입성했다. 2030세대를 대변할 청년 정치인은 사실상 없다. 청년들이 '헬조선(열정페이, 취업난, 삼포세대로 대변되는 청년층이 한국을 자조적으로 일컫는 말)'의 원인으로 '헬정치'를 지목하는 이유다. 그래도 희망은 어둠 속에서 시작된다. <더팩트>는 '헬로? 청년정치'를 기획해 청년 정치의 현주소와 '내일'을 들여다 본다. 모두 다섯 차례에 걸쳐 ▲청년 정치의 장벽 ▲청년 공약 길거리 투표 ▲ 20대 청년 정당대표 도전기 ▲ 2030 '깨톡' 토론 ▲ 전문가에 듣는다 주제로 싣는다. <편집자 주>
[더팩트 | 신진환·서민지 기자] 정치 이야기를 꺼내면 "정치에 'ㅈ'도 모른다"던 2030 청년들이 "모든 문제는 정치"라고 열변을 토했다. 특히 일자리 문제를 첫손에 꼽았다. 또한, 청년 정치의 장벽이 높다는 데 공감을 하면서도, 청년 의원들이 기성 정치의 '꼭두각시 노릇을 그만했으면 좋겠다'는 쓴소리도 나왔다.
4·13 총선이 끝난 지 37일째, <더팩트>는 지난 11일 오후 20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2030세대 청년 12명을 '단체 카카오톡방(이하 단톡방)'에 초대해 그들의 진솔한 얘기를 들었다. 단톡방 인원들은 대학에 갓 입학한 스물한 살 새내기 대학생부터 취업준비생(취준생), 인턴 및 회사원 1~5년 차(영업사원·제약회사·조선소·IT·소셜커머스 MD 등) 등 우리 사회의 평범한 2030 청년들로 구성됐다.
단톡방에서 청년들의 고민과 그들이 본 정치권의 문제점, 20대 국회에 입성한 청년 의원의 한계점 등을 들어보고, '희망사항'도 넌지시 두드려봤다. 처음엔 또래끼리 모이다 보니 장난스러운 분위기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대화는 사뭇 진지해졌다. 특히 '청년 일자리' 문제가 화두로 떠오르자 참여도가 떨어졌던 청년들까지 대화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대학생, 취준생, 회사원까지 불안한 자신의 현 위치에 대해 솔직한 심경을 쏟아냈다. 이들의 표현은 생동감을 살릴 수 있도록 가급적 '날 것' 그대로 실었다.
초대자 : 요즘 뭐가 그렇게 걱정이야.
람(26·경기북부): 취업하고 나니까 이제 월급 걱정이다. 서울살이하니까 가뜩이나 집세, 생활비 등으로 돈은 줄줄 나가는데 월급은 왜 이렇게 쥐꼬리만 한지.
영(27·경남): 그러니까. 왜 내 월급만 빼고 다 물가상승이냐고. 요즘 나는 조선해운업 망해서 죽겠다 죽겠어. 구조조정 당하는 거 아니야? 으악 결혼은 할 수 있을려나.
옥(28·충북): 너희는 지금 월급이라도 받으면서 말하지. 나는 인턴만 두 번째야. 도대체 취업은 언제 되는 거냐.
초대자 : 소득이나 청년일자리가 가장 문제네. (각 정당의 청년일자리 공약을 단톡방에 띄워주며) 이 결과, 어떻게 생각해. 이렇게 하면 좀 바뀔 것 같아?(더팩트'는 지난 9일 신촌 대학가에서 정의당(1),새누리당(2),국민의당(4),더불어민주당(3)의 청년 일자리 공약 블라인드 테스트를 진행했다)
지(25·경기남부): 헐! 나는 4번(국민의당) 공약 같은 건 이해를 잘못하겠어. 취준(취업준비)하면서 힘들게 직장 다니는데 왜 백수한테 내 돈을 줘야 해? 세금이나 내렸으면 좋겠어. 나 이번 달 세금 폭탄으로 90만 원이나 떼갔어. 1년 치 한꺼번에 떼간 거야. 4월이 원래 그런 달이래. 내놔 내 돈.
람: 있는 사람이 좀 더 내야지 뭔소리야. 나는 4번이 괜찮은데. 일자리를 주는 게 아니라 일자리를 구하는 과정의 환경을 좋게 해주는 게 근본적인 해결책 같거든. 내가 취준생 때 '개거지(빈털터리)'였어서. 정말 서럽더라.
신(25·경기남부): 나는 3번(더민주)이 좋은데. 공무원 만세! 회사 다니니까 너무 경쟁체제라 힘들다 진짜. 언제 잘릴지도 모르고. 지금이라도 교육대학원을 갈까 진지하게 고민 중임. 차라리 지금보단 임용고시생 하는 게 낫겠어.
이구동성: 진짜 공무원이 최고야. 근데 들어가기가….
옥: 그러네. 3번 공약이 실현만 된다면 좋겠지만 가능하냐? 70만 개가. 쳇 근데 2번(새누리당)은 뭐냐. 진짜 아카데미 같은 건 완전 쓰잘데기(쓸데) 없어. 저런 거 이미 넘치잖아.
현(28·서울): 그러니까. 2번 아카데미 백날 다녀봐야 일자리가 없는데 뭔 소용. 그리고 그 밑에 벤처 취업연계도 완전 어이없다. 솔직히 내 주위 이과생들 요즘 벤처 안 가려고 하는데 무슨 연계 타령이야.
초대자 : 역시 일자리 문제에 민감하네. 고른 정당을 지지하는 건 맞아? 단순히 정책만 본 거?
현: 나는 정의당이 좋다고 생각했는데, 나 비례대표 정의당 뽑았음. 내 성향을 이제야 알았네.
람: 으악! 나 안철수·천정배 별로 안 좋아하는데. 나는 국민의당 좋고, 더민주 싫다고 했어. 맞아 사실 새누리랑 더민주가 별로여서 국민의당이 낫단 생각이 들 때가 있어. 낑깡(금귤) 싫고 귤이 좋은 느낌? 다들 비슷한데 쬐(조)금 맛이 다른 거지. 이번에 잘하는지 한 번 봐야지.
지: 나는 뭐야. 나 더민주 완전 안 좋아하는데 이번 총선에도 더민주 뽑았다. 누가 보면 팬인 줄 알겠어. 그런데 너희들은 안철수 대표가 대통령 될 것 같아?
현: 갑자기 뜬금포. 안철수가 대통령 됐으면 좋겠어?
람: 절대 안 돼. 소통이 안 되잖아. 불통이라 고통 주는 스타일. 특히 안철수 같은 높으신 분이 우리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겠어? 그럼 벌써 바뀌었겠지. 우리 팀장님이 안 대표 같은 사람이라 우리 팀 똥망(완전 망함) 중이라 잘 알거든. '잘 듣는다'고 하고선 자기 욕심만 가득하니까 지금 회사가 춘추전국시대야. 정말 혼란스러워서 일을 못 하겠어. 내 마음을 콩밭에 가게 만드심.
초대자 : 아, 활발한 정치토크 좋다. 너네 이번 총선에서 누구 뽑았어. 결과 만족해?
지: 야, 난 정치에 '정'도 몰라. 근데 새누리당 될까 봐 후보보고 더민주 뽑았다. 나 더민주 빠순이(열성 소녀 팬) 아님!
옥: 나는 국민의당. 새누리, 더민주 다 별로. 그런데 웃긴 건 나도 정치에 'ㅈ'도 몰라.
청년들은 30분간 줄기차게 정치권을 비판하는 이야기를 쏟아냈다.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보단 기존 정부·여당과 야당에 대한 '심판론'을 내놓았다. 특히 출신 지역이 경상도부터 전라도까지 다양한 청년들이었지만, '새누리당'을 뽑았다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이들은 정치권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서도, "정치에 관심이 없다"고 손사래를 쳤다.
초대자 : 왜 관심이 없어? 너희가 말한 게 다 정치가 해결해 줄 문제잖아.
람: 먹고살기 바쁘잖아. 당장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데 정치만 바라보고 있다 날 새지.
현: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창구도 없어. 어디에다 대고 말해? 온라인에 댓글을 달아야 해? 아니면 길거리 시위? 청와대 앞에서 삭발해?
지: 게다가 대통령이나 정치권이 듣는다 한들, 선거 기간에만 써먹지 사실상 실현이 돼? 전혀 안 될 거라 생각함.
초대자 : 그래도 이번에 청년 투표율 완전 높았잖아. 좀 달라지지 않으려나.
현: 글쎄. 신뢰가 워낙 바닥이라. 내 세금 아까워. 그래도 막 이준석 (31·전 새누리당 서울 노원병 후보) 같은 애들이 들어갔으면 청년 위해서 뭔가 대변하고 목소리도 좀 내고 했을 텐데?
지: 이준석 그 하버드? 뇌섹남(뇌가 섹시한 남자).
초대자 : 아, 이번에 청년들 국회에 3명이야. 새누리, 더민주, 국민의당 각 1명씩. 바라는 점 좀 이야기해봐.
현: 무슨 말을 해야되나. 하면 들어주긴 하는거야? 그냥 정치만 쭉 하신 분들인가.
옥: 검색결과 변호사, 허니버터칩 디자이너, 청년시민운동가 출신이네. 경제가 일단 좋아져야지. 먹고살기 좋게.
지: 맞아. 지금 내 회사 동기 갑자기 지방 발령 나서 군소리 없이 내려갔는데, 지난주에 해고당했어. 그리고 이제 우리 회사에 여자 나밖에 안 남았어. 무서워.
영: 야! 우리 조선소만 하냐? 구조조정 바람이….
김(21·경기인천): 청년 국회의원들 가운데 기성 정치인들의 벽에 막혀 낙담한 사람들도 있겠지. 근데 굳이 '내가 청년을 대표하겠다'라는 근시안적인 태도를 보이지는 않았으면 하는데.
옥: 그렇지. 나는 솔직히 인터뷰 같은 것 보면 청년 당선인이 (대표해서) 정치를 할 만한 인물인지 의문이 들더라. 잘하진 못하더라도 노력하고 발전하는 청년 당선인이 됐으면 좋겠어.
영: 맞아, 꼭두각시 노릇만 하지 말고 진짜 '정치'를 하길.
람: 정치 이야기 답답해. 머리 아프다. 우리 돈 모아서 여행이나 가자. 오사카? 홍콩? 대만?
한 시간 여 동안 '단톡방 토론'을 진행한 청년들은 결국 "정치 이야기는 머리 아프다"는 데 의견을 모았고, 다시 일상 주제로 돌아왔다.
청년들이 '정치 혐오증'을 느끼며, 관심을 두려 하지 않는 현상에 대해 조성주 미래정치센터 소장은 "정치권에서 청년들의 생활을 변화시키는 실질적인 정책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조 소장은 "정치권이 청년들과 소통을 하지 않는 게 문제라기보다 오히려 현재 청년들이 겪는 문제를 해결해서 조금이라도 나아지고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 그런 것 없이 소통 방법을 동원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면서 "정치권이 먼저 결과를 내놓고, 보여주고 나서야 청년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