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마포을=서민지 기자] '무주공산(無主空山·주인 없이 비어 있는 산)' 서울 마포을을 두고 한 명의 여당 주자와 다섯 명의 야당 주자가 전쟁을 치른다. 마포을은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천 배제되면서 임자가 없는 상태다. 과연 누가 산정상에 올라 깃발을 꽂을까.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19대 패배를 설욕하러 온 김성동 전 새누리당 의원이 "정청래 의원의 눈물을 닦아 주겠다"고 온 손혜원 더민주 홍보위원장보다 조금 앞서고 있다. 지난 4일 조선일보가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김 후보(29.9%)와 손 후보(22.9%)의 지지도 차이는 오차 범위 내인 7.0%P였다. 그 뒤로 김철 국민의당 후보(10.3%), 정명수 무소속 후보(6.8%), 배준호 정의당 후보(3.9%), 하윤정 노동당 후보(2.2%) 등으로 야권 지지율이 갈렸다.(이밖에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관위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
4일 오후 <더팩트>가 마포을(서강, 서교, 합정, 망원1·2, 연남, 성산1·2, 상암) 일대를 돌아본 결과도 여론조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민심의 방향은 총선을 일주일 앞두고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야권표가 분산된 데다가 오차범위 내 접전을 벌이고 있는 만큼 단기간 내 누가 더 인지도를 끌어올리는가와 더불어 '전략적 투표'와 같이 승패를 가를 '막판 변수'가 크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 "2번은 처음 봐…이번엔 바닥 민심 훑는 1번"
오후 4시 망원시장 인근에서 만난 마포 주민들은 정 의원을 대신해 출마한 손 후보에 대해 아직 신뢰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지역 주민들은 손 후보를 두고 홍익대학교 출신에 홍익대 교수를 했다는 이력이 있지만, 늦게 선거판에 들어온 만큼 지역 연고가 약하다는 점을 약점으로 꼽았다. 여기에 정 의원이 '막말 파동'으로 컷오프된 데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작용하면서, 상대적으로 19대부터 꾸준히 문을 두드려온 김 후보에게 마음을 여는 주민들이 많았다.
망원시장에서 '쌀장사'를 하는 이 모(59) 씨는 "8년 동안 새누리당이 집권하면서 한 것이 없지 않나. 그래서 이번엔 1번을 뽑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사람만 놓고 보면 김성동 씨가 정말 괜찮더라. 이분이 18대 때 비례대표를 하고 19대 때 출마한 이후로 동네 사람들 유대 관계를 아주 잘 만들어놨다. 정청래 씨가 빠지고 나서 손혜원 씨가 오셨는데, 솔직히 그분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망원시장 인근 부동산에서 만난 80대 할아버지는 "여론조사가 좋았으면 정청래가 무소속이라도 나왔을 것"이라면서 "여론이 워낙 안 좋아서 나와봤자 떨어질 것 같으니 못 나온 거나 다름없다. '막말 스타' 아니냐"면서 부정적인 인식을 강하게 드러냈다. 손 후보 이야기를 꺼내자 손사래를 치며 "너무 늦어 안 된다"고 단언했다.
하지만 마포을은 홍대·상수·합정·망원 등 문화 예술의 중심지로 젊은층이 많이 사는 데다가, 지난 19대 총선과 18대 대선, 6회 지방선거 등에서 모두 야당 후보에게 표를 몰아줬을 만큼 야당세가 강한 지역이다. '야권 분열'이 호재로 작용할 수도 있지만, 분열을 허용하지 않는 야당 지지층이 '전략적 선택'으로 한 정당에 집중 투표할 수 있어 김 후보 측은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다"고 밝혔다.
김 후보 측 선거캠프 관계자는 "선거 당일에도 바뀔 수 있는 게 오차범위기 때문에 큰 의미가 없다. 지지율을 확보하기 위해 끝까지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면서 "특히 김 후보는 하루에 3시간씩 자면서 아침부터 밤 12시, 1시까지 계속 유세를 돌고 있다. 동마다 지역 현안 관련 공약을 지역주민들한테 주로 어필한다"고 밝혔다.
◆ "그래도 2번…마포을 최적화된 사람"
지난 19대 총선 때 뽑았던 정 의원을 믿고, 손 후보를 지지한다는 사람도 많았다. 손 후보와 정 의원이 동반 유세에 나서면서 낮았던 인지도도 꽤 높아진 듯했다. 또한, 광고업계 미다스 손으로 통하는 손 후보의 '디자인' 관련 이력이 문화·예술 도시 마포을과 만나 시너지 효과를 이룰 것이란 관측도 있었다.
상수동에서 커피숍과 디자인 관련 회사를 동반 운영하는 최 모(33) 씨는 "나는 정청래의 화끈한 면모에 손뼉 치던 한 사람"이라면서 "손 후보가 정 의원을 대신할 수 있는 말발과 정치적 자산을 가진지는 모르겠지만, 솔직히 마포을에선 정청래보다 더 잘 어울릴 것으로 생각한다. 기존에 예술을 하던 사람들이 상권에 밀려서 많이 이동하고 있는데, 손 대표라면 문화예술을 키우는 방향으로 더 발전시킬 수 있을 것 같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정 의원 지지자 표심이 곧바로 손 후보로 향할지는 미지수다. 정 의원은 자신만의 뚜렷한 팬층을 지닌 정치인 중 한 명이다. 이런 분위기를 감지한 손 후보 측은 '정청래 표심' 공략에 힘을 쏟고 있다.
손 후보 측 캠프 관계자는 "손 후보가 온 지 얼마 안 됐기 때문에 최대한 주민들과 스킨십을 가지려고 한다"면서 "우선 정 의원의 컷오프 때문에 실망한 주민들께 더 다가서서 그분들의 마음을 돌리는 게 목표고, 두 번째는 마포가 문화 예술 쪽으로 굉장히 조예가 깊은 곳이지 않나. 손 후보가 홍익대를 나온 만큼 공예·문화·예술 분야에서 아시는 분들 진짜 많다. 정 의원이 가지지 못한 포인트까지 살리려고 노력 중"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일여다야 구도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2번에 투표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망원사거리에서 만난 임 모(31) 씨는 "더는 새누리당에 나라를 맡길 수 없다. 야당 후보가 너무 많아서 어부지리로 새누리당이 이길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당을 보고 손혜원 후보를 뽑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임 씨의 아내 김 모(29) 씨도 "야당 중에 지지율이 가장 높은 더민주를 밀어줘야 새누리당 승리를 저지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 "1번·2번 다 싫고 '안철수당' 지지"
구민 중에는 19대 국회와 이번 공천 과정에서 정치권의 다툼을 보고 피로감을 느낀 지지자들은 3번을 뽑거나, 무소속 후보를 뽑겠다는 이들도 상당했다. 정 의원을 지지했던 이탈자들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부동층으로 자리 잡기도 했다. 특히 국민의당의 경우 후보 인지도가 낮아도 안철수 상임공동대표를 보고 지지하겠다는 견해도 있었다.
합정역 사거리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한 모(42) 씨는 "더민주를 지지했었지만, 요즘은 더민주만의 특색이 사라진 것 같다. 특히 문재인 대표가 데려온 김종인 대표는 그만큼 했으면 그만해야 되는데, 낡은 정치를 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면서 "그래서 이번엔 국민의당을 뽑으려고 한다. '문제는 정치야' 슬로건도 마음에 들었고, 당세는 약하지만 안철수 대표가 자기 신념을 지니고 하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망원동에서 교회 봉사 모임을 다녀온 임 모(63) 씨는 "제가 30년을 살았지만, 이 동네는 어떤 인물이건 간에 2번을 뽑더라. 오죽하면 멀리 출장을 갔다가도 2번을 뽑기 위해서 투표하러 오는 곳"이라면서 "그러나 정 의원이 컷오프되고 나서 2번을 많이 떠났다. 그래서 뭔가 바꾸고 싶은 사람은 3번을 뽑는 것 같다. 또 우리 교회 남자 집사님들은 안철수 때문에 3번을 뽑겠다는 사람이 있더라. 김철 후보를 좋아하진 않지만 당만 보고 뽑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현상에 대해 김철 후보 캠프 관계자는 "젊은 사람들보다 오래도록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해왔던 분들 상당수가 찾아왔다. 정 의원 컷오프에 반발해 이탈자가 생긴 탓도 있겠지만, 더민주 원로 분이나 지역 호남 출신 유권자들이 더 많다. 호응이 점점 좋아지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마포을은 나름대로 중앙당에서 (지지율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보는 전략 지역 다섯 군데 중 한 군데다. 그래서 김 후보가 정치개혁 특별위원회 특별위원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총선 전에 안 대표 곧 찾아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