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오경희·신진환 기자] "유세차에 확 불 질러 버릴까 보다".
최근 정 모 씨(55)의 신경은 날카롭게 곤두섰다. 4·13 총선을 일주일 앞둔 6일, 그는 며칠 째 귓가에 울리는 후보 유세 차량의 확성기 소음에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다고 분노했다. "오죽하면 내가 112에 신고까지 했겠느냐"며 하소연했다.
정 씨 뿐만 아니다. 한 표라도 더 얻어야 하는 후보들이 거리 유세에 열기를 더하면서 지역 주민들과 유권자들은 유세차량의 음악과 확성기 등 소음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하루 일정을 기준으로, 오전 7시께 출근길 유권자의 표심을 잡고자 후보의 유세차량에선 선거 로고송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해가 진후에도 마찬가지다.
40대 전모 씨는 "이른 아침이나 해가 지면 상식적으로 볼륨을 크게 틀면 주민들이 화낼 거 뻔히 알면서 유세하는 걸 보면 괜히 정치인이 아니다. 정말 몰염치하고 뻔뻔하다"면서 "요즘은 층간소음보다 선거차 소리가 더 짜증난다"고 토로했다.
서울을 벗어나 지난 1일 전주에서 만난 김 모 씨(40)도 "선거고 뭐고 하기도 전에 지칠대로 지쳤다"면서 "후보에 대해 좋게 생각했었는데, 민원을 제기해도 고칠 생각을 하지 않는다. 투표 자체를 하고 싶지 않다"고 발끈했다.
유세 차량의 '불법 주차' 문제를 지적하는 유권자들도 상당수다.
5일 저녁 이 모 씨(33)는 동네 인근 상가를 찾았다 혀를 내둘렀다. 모 후보자의 유세 차량이 버젓이 인도 위에 주차돼 있었다. 이 씨는 "시민의 본보기가 되어야 할 국회의원 후보가 보행통로에 불법주차를 하면 되겠냐"면서 "정말이지 꼴불견"이라고 꼬집었다.
박 모(46) 씨도 "기본 법규도 앞다퉈서 안 지키는 사람들이 무슨 국회의원을 하겠다고 난리들인지. 싹 다 경찰에 집어 넣어야 한다"며 격분했다.
문제는 유세차량의 '불법'을 법적으로 단속하거나 규제할 규정이 없다는 점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이 같은 민원 발생 시 "선거법상 제한하는 규정이 없기 때문에 이를 선관위에서 제재할 수는 없다"고 안내하고 있다.
공직선거법 제79조에 따르면 야간 연설 등의 제한 규정에 따라 차량용 확성 장치는 오전 7시부터 밤 9시까지, 이동용 확성 장치는 오전 6시부터 오후 11시까지만 사용해야 한다. 다만, 소음 데시벨(dB) 기준이 없어 민원을 제기하더라도 제재할 방법이 없다.
또한 현행 도로교통법에는 교차로와 횡단보도, 차도와 보도가 구분된 도로의 보도 또는 건널목과 교차로의 가장자리를 포함해 도로 모퉁이로부터 5m 이내의 곳에서는 차량의 주정차를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후보의 캠프는 불법주차 문제와 관련해 민원이 제기되면 공직선거법을 근거로 들고 있다.
공직선거관리법 제72조 2에 따르면 공원과 운동장을 포함해 주차장·대합실 등 누구나 오갈 수 있는 공개된 장소를 후보자의 홍보가 가능한 곳으로 규정되면서, 유세차량의 활동 범위를 두고 출마 당사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재해석되고 있는 것이다.
신고한다 하더라도 '선거기간동안 유세차와 후보자의 차량 한 대씩은 장소 구분 없이 가능하다'는 답변까지 일부 관할관청에서 나오고 있어 선거 때마다 민원을 제기하는 유권자와 후보 간 실랑이가 반복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