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권의 술자리 인문학] '내 일'이 있어야 '내일'이 있다

여야와 진보와 보수, 개혁과 수구가 헷갈리는 선거 판이다. 국민의당 안철수 상임공동대표와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왼쪽부터)가 지난달 10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정치인생을 담은 김종필 증언록 출판 기념회에 참석해 나란히 서 있다./이새롬 기자

[더팩트ㅣ박종권 편집위원]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신다.” 맞춤법을 배울 때 등장하는 유명한(?) 문장이다. ‘아버지가 방에~’와 ‘아버지 가방에~’ 사이에는 반 글자 크기 공백의 위치만 다를 뿐이다.

그 무렵이었다. 유토피아(Utopia)란 단어를 처음 접하게 됐다. 마침 손바닥 절반만한 중학생용 영영사전이 있어서 찾아봤다. 딱 한 단어, ‘nowhere’였다. 이 세상 아무 곳에도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필자는 이 단어를 몰랐다. 자세히 보니 아는 단어의 연결이었다. 바로 ‘now’와 ‘here’다. ‘지금’과 ‘여기’ 말이다.

그 때부터 필자에게 유토피아는 ‘지금, 여기’로 인식됐다. 이 세상에 없는 이상향(理想鄕)이 아니라, 내가 지금 숨 쉬고, 발을 딛고 살고 있는 바로 ‘지금 여기’가 유토피아이다. 자연스럽게 “인생은 고해(苦海)”라는 종교관보다는 ‘내가 생각을 바꾸면(metanoia) 바로 여기가 천국’이라는 믿음에 이끌리게 됐다. 세월이 흘러 엉터리 ‘띄어 읽기’한 것을 알았지만, 그럼에도 유토피아가 ‘이 세상에 없는 곳’이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란 생각을 고치고 싶지 않았다.

띄어쓰기와 붙여쓰기로 말장난 하던 시절에 회문(回文)도 유행했다. 영어로는 팰린드롬(palindrom)인데, 앞뒤로 읽어도 똑 같은 글자나 숫자를 뜻한다. 예컨대 ‘기러기’ ‘토마토’나 ‘소주 만 병만 주소’ ‘여보 안경 안 보여’ 같은 식이다. 지난 2014년 월드컵 때 현대자동차가 수박과 박수를 섞어 ‘수박수박수박수~’ 하는 광고를 선보였는데, 이는 회문이라기보다 재치쯤이겠다.

띄어쓰기도 그렇지만, 점 하나에 뜻이 완전히 달라지기도 한다. ‘도로 남’이란 노래가 대표적이다.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만 찍으면 도로 남’이라는 가사로 인기를 끌었다. 사실 ‘님’이라는 글자에 밖에 점을 찍어 ‘남’이 되지만, 안에 찍으면 ‘넘’이 된다. ‘넘’은 사투리로 ‘남’이니 안이나 밖이나 점만 찍으면 ‘굿~바이’다.

‘남’과 ‘넘’에서 미음을 떼어내면 ‘나’와 ‘너’가 된다. ‘여(與)’와 ‘야(野)’도 마찬가지다. 유승민 의원이 20대 총선 후보자 등록일을 하루 앞둔 지난 23일 저녁 대구 동구 용계동 지역구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새누리당 탈당과 함께 무소속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배정한 기자

그런데 ‘남’과 ‘넘’에서 미음을 떼어내면 ‘나’와 ‘너’가 된다. 점의 위치가 안이냐 밖이냐에 따라 한 쌍의 상대가 되는 것이다. ‘여(與)’와 ‘야(野)’도 마찬가지다. 두 점의 위치에 따라 상대가 된다. 좌우가 대칭으로 짝을 이루듯, 단어도 대칭 하는 점에 쌍을 이루는 것 같다.

밤이 없이 낮이 없고, 흑과 백이 짝을 이루듯 너와 나도, 여야도 상대가 존재함으로써 비로소 존재하는 것 아닌가. 밤이 두려워, 검정이 싫어 이들을 모두 없앤다고 해서 낮과 하양만이 존재할 수는 없지 않은가. 캄캄한 밤이 있었기에 낮이 환하게 빛나고, 타오르는 태양이 있기에 밤 하늘 별들이 초롱초롱 빛나는 것 아니겠나.

그런 것이다. 나도 너에게는 너이고, 너도 너에게는 나이다. 밤은 여명으로 물러가지만, 석양으로 돌아온다. 낮은 샛별에 깨어나지만, 개밥바라기에 잠드는 것이다. 당당한 야는 결국 여가 되고, 오만한 여는 필경 야가 되는 것이다.

점 이야기를 좀 더 해 보자. ‘밋밋하다’는 말이 있다. 생긴 모양 따위가 특징이 없이 평범하다는 뜻이다. 이 ‘밋’이란 글자의 밖에 점을 찍으면 ‘맛’이요, 안에 찍으면 ‘멋’이다. 결국 맛도 없고 멋도 없는 것이 ‘밋밋하다’는 본디 뜻이 아닐까. 매우 중요한 사람을 VIP라고 한다. 이를 ‘브이아이피’, 혹은 조금 세련되게 ‘비아이피’로 읽지만, 요즘 젊은 세대는 패밀리식당 이름을 따 장난스럽게 그냥 ‘빕’이라고도 한다. 헌데 이 ‘빕’의 안팎에 각각 점을 찍으면 ‘법’과 ‘밥’이 된다. 법은 ‘사회적 동물’이 살아가는데, 밥은 ‘생리적 인간’이 생존하는데 필수적인 요소이다. 법이 없고, 밥이 없으면 절대 ‘빕(VIP)’이 될 수가 없다.

수구에 맞서 개혁을 이야기하다 쫓겨난 보수, 개혁에 맞서 기득권을 노리고 뛰쳐나온 진보, 새(新)정치인지, 새(鳥)정치인지 모를 후보들까지 뒤섞여 어지럽기 짝이 없다. 지난 21일 국민의당 당사에서 공천 탈락한 후보들의 반발로 지지자들과 당직자 등이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더팩트DB

그런데 ‘빕(VIP)’이 국민인가, 정치인인가. 아마도 ‘법’위에 군림하는 정치인이 스스로 ‘빕’이라 여길지 모르겠다. 하루하루 ‘밥’을 해결해야 하는 국민은 글쎄다. 그럼에도 선거철이 되면 정치인들이 유권자 국민을 ‘빕(VIP)’이라 떠받든다. 우쭐한 국민들도 문득 자신이 매우 중요한 인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는 무엇보다 ‘한 표’를 행사하느냐 ‘헌 표’를 찍어 넣느냐에 따라 다르다. ‘한 표’는 ‘매우 크고 넓고 정확하며 유일무이한 표’를 의미한다. ‘헌 표’는 예부터 그래왔듯이 습관적으로 찍는 ‘낡은 표’이다.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알지도 못하고 그냥 1번이면 1번, 2번이면 2번을 찍는 것이다. ‘한 표’를 행사하는 국민은 민주국가에서 주권자이자 권력자이며 VIP이다. 반면 ‘헌 표’를 찍어 바치는 국민은 주권자이자 권력자인 정치인들의 ‘헤진 고무신’쯤이다.

여야와 진보와 보수, 개혁과 수구가 헷갈리는 선거 판이다. 엊그제까지 빨강 잠바를 입고 진두에 섰던 인사들이 파랑 옷을 입고 깃발을 흔든다. 파랑 옷을 내던지고 빨강 옷으로 갈아 입은 정치인도 있다. 수구에 맞서 개혁을 이야기하다 쫓겨난 보수, 개혁에 맞서 기득권을 노리고 뛰쳐나온 진보, 새(新)정치인지, 새(鳥)정치인지 모를 후보들까지 뒤섞여 어지럽기 짝이 없다.


그래도 구호는 ‘경제’로 집약되는 것 같다. ‘경제 발목’과 ‘경제 파탄’ 심판으로 과녁은 다르지만 말이다. 헌데 ‘경제’라고 하면 너무 방대해 초점이 불분명하다. 초점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바로 실업이다. 청년실업, 중년실업, 노년실업이 문제이자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이다.

다시 띄어쓰기이다. ‘내 일’이 없으면 ‘내일’이 없다. 나와 너, 사회와 나라의 내일이 ‘내 일’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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