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취재기] '비박'과 '진박', 물과 기름인가요?

26일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에서 대구·경북 지역의 4·13 총선 예비후보 공천 면접 심사가 열린 가운데 비박계 유승민(왼쪽) 전 원내대표가 벽에 머리를 기대고 있다. 반면 진박으로 분류되는 이재만 전 대구 동구청장은 이 전 원내대표와 반대로 상체를 앞으로 숙이고 있다. /여의도=신진환 기자

[더팩트ㅣ여의도=신진환 기자] 26일 오전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로 정가의 이목이 쏠렸다. 새누리의 텃밭인 대구·경북 지역의 4·13 총선 예비후보들의 면접날로 '진박(진실한 친박)'과 '비박(비박근혜)'의 정면 대결이 예고됐기 때문이다.

대구는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이자 그의 견고한 지지층이 있는 곳이다. 또, 여당의 텃밭이기도 하다.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누가 뭐래도 비박계 유승민 전 원내대표와 진박으로 분류되는 이재만 전 대구 동구청장의 격돌이었다. 그중에서도 '배신의 정치'로 낙인 찍히며 이른바 '짤박(잘린 친박근혜계)'으로 분리된 유 전 원내대표에게 관심이 집중했다.

예정대로라면 대구 동구을 예비후보의 면접은 10시 40분에 시작하지만, 유 전 원내대표는 10시 55분께 모습을 드러냈다. 앞 조의 면접이 지연된 것을 알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와 반대로 이 전 구청장은 예정 시간보다 20분 앞서 도착해 다른 지역구 후보들과 인사를 나눴다.

면접장 앞 대기석에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은 인사 후 대화나 덕담도 없었다. 어색한 침묵에 분위기는 싸늘했고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유 전 원내대표는 지그시 눈을 감고 벽에 머리를 기대기도 했다. 반대로 이 전 구청장은 상체를 앞으로 숙였다. 당사자들은 의미 없는 동작이었겠지만, 유 전 원내대표는 긴장한 듯했고 이 전 구청장은 나름 여유 있어 보였다.

또, 유 전 원내대표가 회색계열 넥타이를 맨 것과 달리 이 전 구청장은 당을 상징하는 붉은색 계열의 넥타이를 맸다.

유승민 전 원내대표가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에서 열린 대구·경북 지역 공천 심사 면접장에 들어서면서 명찰을 달고 있다./여의도=신진환 기자

두 예비후보의 면접도 이례적으로 상당히 오래 진행됐다. 이 과정에서 이한구 공관위원장이 "대구 현역의원 12명 중 6명만 날리겠느냐"고 농담이지만 뼈 있는 발언을 했던 터라 다양한 해석들이 나왔다. 대기실에서는 친박 성향이 강한 이 공관위원장이 유 전 원내대표를 취조(?)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유 전 원내대표와 이 전 구청장 면접은 12시께 끝났다. 두 예비후보 면접은 통상 15분~20분 정도 진행되는 것에 비해 두 배 정도 오래 걸렸다.

유 전 원내대표는 자격심사소위원장인 김회선 의원 등으로부터 지난해 4월 교섭단체 대표연설에 대한 질문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유 전 원내대표는 면접을 마친 뒤 "제가 했던 대표연설은 정강·정책에 위배되는 게 전혀 없다. 거듭 몇 번이고 읽어 보면서 확인했다고 말씀드렸다"고 밝히고 자리를 떠났다.

이 전 구청장은 "10년 전 처음 구청장을 할 때 우리 지역 국회의원 두 분이 전략공천으로 몰고 갔는데, 제가 거기에 투쟁해서 중앙당 공천을 받았다"며 "그때부터 유승민 의원이 저한테 지금까지 안 좋게 해오고 있다"고 감정을 드러냈다. 또 "나는 박근혜 대표에게 공천을 받았고, 그때부터 박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고 '진박'임을 면접장 밖에서도 거듭 강조했다.

이재만 전 대구 동구청장이 26일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에서 열린 대구·경북 지역 공천 심사 면접장 대기실에서 조명희(대구 중구·남구) 예비후보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여의도=신진환 기자

세상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고 했다. 유 전 원내대표는 현재 비박계로 분류되고 있다. 사실 유 전 원내대표는 지난해 1월 원내대표 출마를 선언하면서 "원래부터 친박이었다"고 공언했다. 그러다 지난해 교섭단체 연설에서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고 박근혜 정부의 대표 공약인 '증세 없는 복지'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면접을 본 대구·경북 예비후보자들을 겨냥해 "모두가 친박(親박근혜)이라는데, 수상하게 여겨지는 사람이 있다"고 정체성을 의심하기도 했다. 특정 후보를 거론하지 않았지만, 유 전 원내대표를 겨냥한 발언이라는 얘기도 있다. 면접 질문에서 교섭단체 연설을 쏟아냈다는 게 그 이유다.

'따뜻한 보수'를 꿈꾸며 '친박'의 옷을 벗어버린 유 전 원내대표와 '진박' 이 전 구청장. 이날(26일) 본 두 사람은 섞일 수 없는 물과 기름 같았다. 최근 다시 경선 룰을 두고 당내에서 불거지고 있는 비박계와 친박계의 갈등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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