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탐방-사하을] "'배신자'에 본때!" vs "미워도 다시 한번"

낙동강 벨트의 핵심축으로 야성을 12년간 지켜왔던 부산 사하을은 최근 조경태 의원이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해 새누리당으로 당적을 바꾸면서 4·13 총선의 핵으로 부상했다. 사하을 예비후보로 등록한 새누리당 조경태 의원, 이호열 고려대 교수, 석동현 변호사(왼쪽부터)./배정한·문병희 기자, 석동현 블로그

[더팩트 | 사하을=서민지 기자] '조경태의 4선이냐, 정치 신인의 물갈이냐.'

'낙동강 벨트'의 핵심축으로 '야성'을 12년간 지켜왔던 부산 사하을이 4·13 총선의 핵으로 부상했다. 최근 조경태 의원이 더불어민주당에서 새누리당으로 당적을 바꾸면서 공천 경쟁에 불이 붙었다. 조 의원을 비롯해 이호열(54) 고려대 교수, 석동현(55) 변호사, 김영수(52) 군산대 교수, 이용원(38) 사회안전방송 대표이사, 이기태(78) 건축사, 배관구(28) 씨 등 모두 7명이 등록한 상태다.

취재진은 지난 19일 지역 민심이 모이는 부산 장림골목시장과 감천초등학교 인근 노인정을 찾았다. 지역 주민들은 선거 얘기를 꺼내자 '조경태 의원의 탈당' 얘기를 입에 올렸다. 외지 사람 비율이 높고 노동자들이 많은 사하을은 여당 텃밭인 부산에서 유일하게 야당을 3번이나 밀어줬다. 지난 12년 동안 새누리당에는 '난공불락', 야당에는 '텃밭'으로 불렸다.

하지만 총선을 50여 일 앞둔 민심은 출렁인다. 탈당한 조 의원을 두고 '미워도 다시 한번'이라는 정서와 '변화'를 원하는 움직임이 강하게 충돌하면서 갈팡질팡했다.

연합뉴스와 KBS가 코리아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16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 의원은 새누리당 후보 적합도에서도 당내 다른 경쟁 예비후보들을 크게 앞질렀지만, 이날 만나본 유권자들은 '결전의 날'까지 수성과 변화의 선택을 놓고 계속해서 '저울질'할 것으로 보인다.

◆ "인자는 함 바꿔야제…지역일꾼 밀어줄 것"

부산 장림시장과 감천초등학교 인근 주민들이 조 의원을 바라보는 시각은 엇갈렸다. 일부 새누리당 지지자들은 워낙 낙후된 지역이라 개발이 많이 필요한데 지하철도 세워주고 조 의원이 그동안 진행해 놓은게 있으니까 뽑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부산 사하을=배정한, 서민지 기자

12년간 자리를 지킨 조 의원을 바라보는 시각은 엇갈렸다.

사하을 가운데서도 대표적인 '재개발지역'으로 꼽히는 감천. "살기가 이래 팍팍해서 되겠나, 아이고"라는 소리가 흘러나오는 건강원 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총선 이야기를 꺼냈다. 34년 동안 거주한 임 모(60대·여) 씨는 "하도 후보가 많아 놓은께 누가 누군지 잘 모르겠다"면서 "그동안 조경태 씨가 일 잘 해왔다. 누굴 세워도 다 거기서 거기기 때문에 우리는 지역 잘 알고 일 잘하는 조 의원을 밀어줄 것"이라고 말했다.

새누리당 지지자들 가운데선 조 의원의 당적 변경을 환영하기도 했다. 도시철도 건설, 다대포해수욕장 정비 사업 등으로 조 의원에 대한 지역민의 충성도가 높은 데다가 "대놓고 도와줄 수 있다"는 기대감을 내비쳤다. 임 씨와 동업하고 있는 김 모(50대) 씨는 "저는 새누리당 지지자다. 워낙 낙후된 지역이라 개발이 많이 필요한데 지하철도 세워주고 조 의원이 그동안 진행해 놓은 게 있으니까 뽑을 가능성이 크지. 주변에서도 그런 소리를 많이 하더라"고 밝혔다.

반면 상당수 주민은 긴 시간에 대한 피로감을 나타내며 '새 인물'에 대한 갈망을 나타내기도 했다.

장림시장에서 만난 김 모 씨는 "3선까지 했으면 많이 한 거 아입니까. 이제 다른 사람들한테 기회를 좀 줘야 된다"면서 "12년 줬어도 지역 개발 못 했는데 새누리당 왔다고 되겠냐고요. 그런 궤변이 어딨습니까. 인자는 다른 사람 함 뽑아 볼랍니더"라고 강조했다.

개발이 정체된 사하을 전경. 상당수 주민은 긴 시간에 대한 피로감을 나타내며 새 인물에 대한 갈망을 나타내기도 했다. 장림시장에서 만난 김 모 씨는 12년 줬어도 지역 개발 못 했는데 새누리당 왔다고 되겠냐고요. 그런 궤변이 어딨습니까라고 반문했다./사하을=서민지 기자

특히 조 의원의 공고한 지지기반 층이었던 호남향우회나 더불어민주당 지지자 등은 조 의원을 "배신자"라고 지칭하며 '심판론'을 내세웠다.

호남향우회 회원 김 모 씨는 "우리는 낙선운동을 하고 있다. 사하을 15만 7000명 가운데 20~30%가 호남 지지자들이고, 12년 동안 조경태를 물심양면으로 밀어왔다. 그런데 우리와 일말의 상의도 없이 새누리당으로 옮겼다. '본때를 보여줘야겠다'는 게 호남향우회원들의 생각일 만큼 배신감이 엄청나다. 요즘에는 길거리에서 우리를 보면 그냥 지나가 버린다. 낮에는 이제 선거운동하지도 못하지"라고 주장했다.

또 다른 호남 출신 지지자(50·다대포)는 "문재인과 싸웠을 때 우린 좋아했다. 소신이 있고, 그만큼 강단이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 지역 국회의원이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하는 사람이니까 좋았다. 당을 바꾸지 않고 가만있으면 될 텐데. 믿었던 만큼 배신감도 크다. 우리가 등을 돌리면 조경태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동조했다.

◆ 변수는 '경선방식'…"지켜봐야 알 일"

익명을 요구한 다대포에 거주하고 있는 새누리당 당원이 경선룰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하고 있다./부산 사하을=배정한 기자

사하을 새누리당 경선이 일반 경선방식(책임당원 30%, 일반 국민 70%)을 따르면 이호열·석동현 예비후보 등은 해 볼 만한 승부가 될 것이라고 벼르고 있다. 이 후보나 석 후보 측은 조 의원의 입당이 '외부 영입'이 아니라고 보고, 외부 영입인사에게 적용하는 100% 여론조사 방식이 아니라 일반 경선방식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석 후보는 조 의원에게 지난 17일 성명서를 내고 '3(당원) 대 7(국민)' 경선 룰을 공개 제안했다. 이날 일부 사하을 당원들은 서울 여의도 당사 앞에서 삭발을 감행하고 '새누리당 사하을 당협 3대 7 경선 촉구 궐기대회' 행사를 열어 반발하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다대포에 거주하고 있는 새누리당 당원은 "조경태 씨는 12년 동안 국회의원을 했는데 단순히 당을 옮겼다고 해서 신인이 아니죠. 우리가 당원으로서 당비를 냈고, 실질적으로 권한을 행사하지 못하는 것도 억울한데 갑자기 당을 옮긴 사람한테 100% 상향식이 말이 돼요? 그러려면 당원이 왜 필요하나"라고 발끈했다.

이처럼 잡음이 끊이지 않는 당내 상황을 보고 "좀 더 지켜보겠다"는 의견도 있었다.

감천초등학교 인근 노인정에서 만난 차 할머니는(80대) "안죽 공기를 몰라. 내랑 맞는 사람이 새누리당 후보로 나올란지 몰라. 다른 선거 때랑은 달라"라면서 "아직은 흑백이 안 가리 지지. 전에는 명함도 많이 돌리고, 얼굴도 많이 비추고 하디만은 요번에는 그런기 없더만요. 그라믄 알겠지요? 빨간 후보들이 너무 많아 논께 갈피를 못 잡는다고. 더 지켜볼끼라요"라고 말했다.

mj79@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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