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철영 기자] 정치권의 '이종교배'가 한창이다. 이종교배는 '한 종류의 생물에서 다른 형질을 가진 개체를 상호 교배시키는 것', 혹은 '다른 종의 생물 사이에서 교배시키는 것'으로 잡종교배라 할 수 있다.
요즘 여야 그리고, 신당 추진세력의 사람 영입을 보면 이종교배가 특히 눈에 띈다. 과거 정치권은 뜻을 같이하는 사람, 혹은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사람을 중심으로 '계파'를 만들어 '정당 정치'를 펼쳤다. 정당이란 무엇인가. 바로 정치적인 주의나 주장이 같은 사람들이 정권을 잡고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하여 조직한 단체가 아닌가 말이다.
지금이야 존재감이 약해졌지만, 고 김대중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동교동계’,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상도동계’가 대표적인 계파라 할 수 있다. 이런 계파정치는 국내 정가에서 오랫동안 자리 잡아왔다. 당에서 사람을 영입할 때도 계파에 맞는 이념이 첫 번째 조건이었다. 이른바 ‘동종교배’ 정치라 할 수 있다.
혹자는 동종교배를 ‘순혈주의’라고 하기도 한다. 근래 야권의 분열이나 탈당 의원들이 하나같이 ‘친노 패권’을 이야기하는 것도 순혈주의에 대한 염증의 발로로 해석할 수 있겠다. 그런데 여야나 신당 창당 세력이나 모두 최초에는 동종교배로 시작하기 마련이다. 세를 규합하기에는 이종교배보다는 동종교배가 수월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정치권에서는 그동안 이종교배보다는 동종교배가 지배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국내 정치사를 보면 정권 창출을 놓고 이종교배가 늘 있어왔다. 대표적인 이종교배로 1990년 1월 22일 3당 합당(三黨合黨)을 꼽을 수 있다. 3당 합당은 당시 집권여당이었던 민주정의당(총재 노태우)이 제2야당 통일민주당(총재 김영삼), 제3야당 신민주공화당(총재 김종필)과 합당해 통합 민주자유당을 출범시킨 것을 말한다. 여당인 민주정의당을 중심으로 3당 합당을 추진해 보수당(새누리당)의 전신인 민주자유당을 창당했다는 의의가 있다.
이를 두고 민주세력과 진보세력 등은 군사정권과의 야합이라는 비판도 제기되기도 했다. 통일민주당과 신민주공화당은 당시 야권 세력으로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권 창출을 위해 비판을 감수하고 3당 합당을 했고, 김영삼 총재를 차기 대통령에 당선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3당 합당은 동종교배라기보다는 권력 창출을 위해 뭉친 계획적인 이종교배였다고 볼 수 있다.
이종교배의 예는 또 있다. 바로 ‘DJP(김대중, 김종필)연합’이다. DJP연합은 단순한 정치적 연합이 아닌 정치적 성향이 상반됐던 김대중(새정치국민회의)-김종필(자유민주연합) 연합이었다. 이들의 이종교배는 국민의 정부를 탄생시켰다.
그동안 국내 정치에서의 이종교배는 정권 창출 시기에 가장 활발했다. 고 노무현 대통령과 정몽준 전 의원과의 단일화도 정권 재창출을 위한 이종교배였다. 물론, 대선을 앞두고 정 전 의원이 단일화를 파기했지만, 두 사람의 단일화는 이종교배인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최근 국내 정치도 이종교배가 활발하다. 4월 13일 국회의원 총선거와 2017년 대통령 선거가 있기 때문으로 보여진다. 또 제3당 탄생을 목전에 두고 있다는 점도 이종교배가 활발한 이유다. 안철수 의원을 중심으로 한 제3당 세력이 이종교배에 열을 올릴 수밖에 없다. 우선은 다가오는 총선에서 일정 정도의 의석 확보가 첫 번째이고, 두 번째는 이를 바탕으로 한 차기 대권을 노리겠다는 의중이 깔렸다.
정치권의 이런 이종교배 정치를 두고 일각에서는 정치공학적인 이합집산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다른 면으로 보자면 정당들이 기존 프레임에서 벗어나려 한다 정도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정치권 중에서도 야권에서 이종교배가 더 활발하다. 더불어민주당은 ‘운동권, 시민사회단체, 진보’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려는 노력하고 있다. 김종인 선거대책위원장이 더 민주의 이종교배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김 위원장의 경우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의 경제민주화 공약을 만들어냈다.
그동안 야당 프레임으로만 본다면 김 위원장은 더 민주와 맞지 않는다. 그러나 더 민주는 과감히 김 위원장을 영입했다. 이는 더 민주가 경제 문제에 더욱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겠다는 것은 물론 당내 분란을 조기에 차단하는 효과를 거두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안철수 의원이 추진 중인 신당 국민의당은 이종교배가 가장 활발하다. 국민의당이 공동 창당준비위원장으로 윤여준 전 장관과 한상진 교수로 하면서 진보와 보수 그리고 중도를 아우르겠다는 것을 대외적으로 천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국민의당은 이념에 구애받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야권 세력이면서 MB 정부 인사들이 발기인에 참여한 것을 두고 외연을 확장하기 위한 것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한편으론 기존 정당이 보이지 못했던 탕평을 한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물론 새누리당도 이종교배를 했다. 조경태 전 더 민주 의원이 입당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뒷말이 무성하긴 하다. 다만, 정치권의 이런 이종교배가 의심스러운 부문도 있다. 오는 4월 13일 20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선거는 다른 게 없다. 무조건 이겨야 한다. 당마다 의석을 얼마나 가져가느냐가 최대 핵심이다.
각 당이 이종교배를 서두르는 데도 이런 이유가 있다. 이종교배가 잘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후폭풍이 거셀 수 있다. 따라서 야권에서는 이종교배의 폐해를 사전에 막고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한 방향으로 급선회할 수도 있다. 바로 ‘야권 연대’나 ‘야권 통합’이 바로 그것이다. 야권은 어떻게든 선거 직전까지 이종교배할 가능성이 크다. 안철수 의원과 천정배 의원도 현재 이종교배에 들어갔다. 세력이 부족한 야권으로선 힘을 끌어 모으기 위해 '새 인물'로 포장한 '이종교배'의 유혹에 흔들릴 수밖에 없다. 영입 발표 후 과거 오점이 드러나 취소되는 경우도 있다.
국민이 바라는 정치는 그리 어렵지 않다. 계파나 지역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당의 정강에 따라 국민의 마음을 편하게 할 수 있으면 된다. 지금 어지럽게 이합집산하고 있는 세력 키우기가 부디 선거를 위한 눈속임이 아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