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권의 술자리 인문학] 말더듬이 연설이 심금을 울린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3일 취임 이후 다섯 번째로 대국민 담화와 기자회견을 했다. 박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에서 북한 핵 문제와 경제활성화법의 조속한 국회 통과를 주문했다. /청와대 제공

[더팩트ㅣ박종권 편집위원] 침묵은 금, 웅변은 은이란 말이 있다. 그렇다. 경우에 따라서는 입을 꾹 다무는 것이 오히려 진한 감동을 주기도 한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 일이다. 2011년1월 미국 애리조나 투싼의 정치집회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벌어져 6명이 숨지고 14명이 부상했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비행기로 날아가 추모연설을 한다. 오바마 대통령이야말로 능변(能辯)에 달변(達辯)이 아닌가. 그런데 연설 도중 문득 51초간 침묵했다.

가장 어린 희생자 크리스티나를 언급한 이후였다. 방송 용어에 ‘마가 뜬다’는 표현이 있다. 무엇과 무엇 사이를 뜻하는 일본어 ‘마(間)’이다. 생방송에서 5초간 소리가 나오지 않으면 1차 ‘방송사고’로 본다. 그런데 51초 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청중은 잠시 술렁이다 조용해졌다. 차츰 어린 생명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괴감과 슬픔에 군중과 시청자가 하나가 됐다.

바로 직전까지 매스컴을 뜨겁게 달궜던 “총기규제가 느슨한 탓이다,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경찰 탓이다, 정부 탓이다”는 논란이 잦아들었다. 바로 “네 탓이다”하는 공방이 멎은 것이다. 그러면서 총기 문제는 ‘모두의 일’이 됐다. 51초간의 침묵은 사전에 계산된 것이라는 분석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도 어느 정도 총기 규제가 필요하다는데 ‘국론통일’을 이뤘다. 능변과 달변이 아니라 침묵으로 ‘소통’한 것이다.

신언서판(身言書判)이란 말이 있다. 잘 쓰고 바르게 판단하는 것에 앞서 말을 제대로 잘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역사에는 못생기고 말솜씨도 형편없는 위인들이 제법 많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5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신원조회를 강화하는 총기규제 행정명령에 관한 기자회견을 했다. /백안관 누리집 갈무리

성경에서 하늘의 음성을 세상에 전하도록 선택된 자는 말더듬이였다. 바로 출애굽기의 주인공 모세다. 그는 스스로를 “본래 말에 능하지 못한 자이며,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출애굽기 4:10)”라고 했다. 그러나 신(神)이 사자(使者)로 선택한 자는 달변(達辯)의 아론이 아닌 눌변(訥辯)의 모세였다. 신학자 마틴 부버는 이를 ‘타고난 계시의 비극’이라 했다. 모세는 파라오에게 더듬거리는 말로 이스라엘인들의 해방을 요구한다. 요새 식으로 표현하면 “ㄴㄴ내 ㅂㅂ백성을 ㄱㄱ가게 하라”고 했던 것이다.

그리스가 낳은 불세출의 웅변가 데모스테네스도 처음엔 말더듬이였다. 발음도 부정확했고, 호흡도 짧아 긴 음절은 한꺼번에 발음할 수가 없었다. 그는 입 안에 작은 돌멩이를 넣고 발음을 연습했으며, 가파른 언덕을 뛰어오르며 발성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를 웅변의 달인으로 만든 것은 엄청난 양의 독서였다. 드러나는 말보다 갈무리된 생각이 중요한 것이다. 소크라테스, 플라톤과 더불어 그리스 철학을 대표하는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심각한 말더듬이였다. 청산유수와 같은 말솜씨보다 ‘무슨 말을 하느냐’가 더욱 중요한 것이다.

춘추전국시대 ‘합종연횡(合從連橫)’의 주인공 소진(蘇秦)과 장의(張儀)는 ‘세치의 혀’로 천하를 주물렀다. 반면 진(秦)나라에 법치의 기반을 놓은 한비(韓非)는 심한 말더듬이였다. 그는 혀 대신 붓으로 말했다. 대표작이 ‘세난(說難)’이다. 변덕스런 임금에게 유세하기 어려움을 역설한 내용인데, 여기에서 ‘역린(逆鱗)’이란 말이 나왔다. 그런데 제목 ‘세난(說難)’에서 유세의 어려움과 말더듬이 한비의 어눌함이 묘하게 오버랩 된다.

그런가 하면 영국의 수상 윈스턴 처칠 역시 말더듬이였다. ‘에스(S)’를 제대로 발음하지 못했다. ‘쌀’이 아니라 ‘살’이라고 발음하는 것과 비슷했던 모양이다. 그리하여 동료 의원들로부터 “술에 취했기 때문”이라는 비아냥도 들었다. 그러나 2차대전이 발발하자 하원에서 “나는 피, 수고, 눈물과 땀밖에 드릴 것이 없다”는 연설로 국민의 마음을 움직인다.

국왕 조지 6세도 심한 말더듬이였다. 현 엘리자베스 2세의 부친이다. 조지 6세는 심한 말더듬이였지만, 라디오 연설을 통해 독일에 선전포고 연설을 하며 공감의 힘을 보여줬다. /영화 킹스 스피치 스틸 컷

동시대의 국왕 조지 6세도 심한 말더듬이였다. 현 엘리자베스 2세의 부친이다. 그의 형 에드워드 8세가 심프슨 부인과 ‘세기의 스캔들’로 하야하면서 얼떨결에 왕위를 계승한다. 오스트레일리아 출신 언어치료사의 도움으로 말더듬증(症)을 고치고, 훗날 라디오를 통해 독일에 선전포고 연설을 한다. 대중연설의 달인 히틀러와는 달리 조지 6세는 ‘공감의 힘’으로 설득한다. 이에 국민은 감동하고, 끝까지 영국을 지켜 마침내 승리한다. 이 과정을 그린 영화가 콜린 퍼스 주연의 ‘킹스 스피치(King’s Speech)’이다.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을 받았다.

박근혜 대통령의 연두 기자회견에 대한 이런저런 말이 이어지고 있다. 사전 각본설도 어처구니없지만, ‘월남 패망’ 발언도 구설에 오르고 있다. 물론 현재의 월남을 부정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역사 속에 수많은 국가들의 부침(浮沈)과 그 과정에서 나타난 지식인과 국민과 정치인의 행태를 짚고 싶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결과적으로 부적절한 표현임에는 틀림이 없다. 아마도 외교 차원에서 오해가 없도록 베트남 측에 설명과 함께 양해를 구했으리라 본다.

많은 질문을 기억해 물 흐르듯 연설하는 것만이 좋은 것은 아니다. 공자님도 논어에서 ‘부질언(不疾言)’을 강조했다. 말을 서두르지 말라는 것이다. 본인도 민중들과 있을 때는 말을 못하는 ‘불능언자(不能言者)’로 행세했다고 한다. 또 ‘능언앵무(能言鸚鵡)’라 했는데, 바로 “말은 앵무새도 한다”는 뜻이다.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다. 너도나도 한마디씩 앞세우는데, 한번 뱉은 말은 주워담기가 어렵다. 남아일언(男兒一言)이 중천금(男兒一言重千金)이라고 하지만 지도자의 한마디는 ‘중억만금(重億萬金)’이다. 자신이 없다면 ‘침묵’을 배울 일이다. 웅변의 달인 오바마 대통령의 ‘51초 침묵’은 청산유수 말솜씨보다 때론 ‘여백의 힘’이 더욱 강렬하다는 것을 보여주지 않았나.

궤변과 아집, 내주장만 늘어놓는 우리의 정치지도자들에게 가슴을 울리는 ‘스피치’를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일까. 소통은 ‘공감(共感)에서 나오고,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설득화법’일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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